DC코믹스의 여성 히어로인 원더우먼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성 전사 부족의 공주로 나온다. 4000년 전 이집트에 원더우먼의 실사판인 공주가 있었다. 미라의 골격을 분석했더니 손바닥뼈가 휘어질 정도로 장기간 칼과 활을 쓰는 훈련을 받았으며, 부상도 개의치 않았던 전사로 밝혀졌다.
이집트 베니수프대의 제이나브 하셰시 교수 연구진은 “고대 이집트 공주 다섯 명의 미라를 분석한 결과, 같이 매장된 칼과 활을 실제로 다룰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7월 17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환경고고학 최전선’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무덤에서 나온 활과 단검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활동적이고 강인한 삶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칼과 활 다루면서 골격도 변화
하셰시 교수 연구진은 기원전 약 1850년부터 1700년 사이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다슈르 피라미드와 무덤 단지에서 발견된 왕가 미라 6구를 조사했다. 그중 5구는 여성이었다. 무덤에서는 칼과 활, 화살, 철퇴 같은 무기도 나왔다. 애초 1890년대에 발굴됐지만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다가 2020년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서 진행된 소장품 정리 프로젝트 도중 재발견됐다.
미라 6구 중 4구는 제12왕조의 세 번째 왕이었던 아메넴헤트 2세(기원전 1929~1895년 재위)의 딸들이었다. 같은 지하 무덤에 매장돼 있었다. 이타 공주는 켄메트 공주 옆에, 이타웨렛 공주는 사타토르메리트 공주와 나란히 묻혀 있었다. 나머지 두 왕족은 13왕조의 호르 왕과 그 혈족으로 추정되는 누브-호테프 공주다. 미라에서 부드러운 조직은 이미 가루로 변한 상태였다. 두개골도 사라졌지만 나머지 뼈는 상태가 양호해 사망 당시 나이와 성별, 질병이나 부상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사망 당시 28~34세로 추정된 이타 공주의 무덤에서는 금과 라피스 라줄리로 장식된 화려한 단검이 나왔다. 라피스 라줄리는 라틴어로 ‘하늘의 돌’이란 뜻으로, 감청색 보석인 청금석이라고 불린다. 하셰시 교수는 “팔뚝에서 근육과 뼈가 연결되는 부착부가 튼튼해 철퇴나 단검 같은 무기를 습관적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생전 쓰던 칼을 죽어서도 가져갔다는 의미다.
켄메트 공주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사이의 여성으로, 뼈가 얇아지는 징후를 보였지만 인대 부착부는 매우 튼튼했다. 이타웨렛 공주(20~34세)는 아래팔뼈가 비대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는 반복적으로 활을 당기는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의 결과로 해석됐다. 이타웨렛 공주는 갈비뼈와 발 골절을 이겨낸 흔적도 나왔다. 왕족이라서 치료를 잘 받은 결과지만, 훈련 도중 부상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누브-호테프 공주(40~44세)는 화살과 함께 매장됐는데, 오른손 손바닥을 이루는 뼈 5개 중 두 번째가 휘어졌으며, 손가락 근육의 부착부가 강화된 상태였다. 연구진은 활을 잡는 궁수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하셰시 교수는 “공주라면 앉아서 지내는 장식적인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집트 공주들의 삶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며 “손뼈가 휘어진 궁수의 손 자세가 발달하려면 어릴 때부터 양궁과 무술 훈련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의 이미지 변화” vs “일반화 오류”
계급이 높은 여성의 무덤에서 무기가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고 바로 여전사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1968년 핀란드 남부의 하툴라에서도 1000년 전 바이킹 무덤이 발견됐다. 유골과 함께 장검 두 점과 칼집에 꽂힌 단검 같은 무기가 나와 당연히 남성 전사가 묻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골 주변에서 예상치 못한 부장품도 발굴됐다. 달걀 모양 브로치 같은 장신구와 양털로 짠 옷은 중세 초기 전형적 여성 복장이었다.
어떤 학자는 강력한 남성 지도자가 아내와 같이 묻혔다고 주장했고, 다른 학자는 당시 강력한 여성 전사, 또는 여성 지도자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반세기 논란은 2021년 DNA 검사로 결론이 났다. 유골 주인공은 한 사람이며,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다. 여성의 성염색체는 XX이고 남성은 XY인데, 무덤 주인은 XXY였다.
진짜 여성의 성염색체를 가진 바이킹 전사의 무덤도 나왔다. 1889년 스웨덴 비르카에서 한 바이킹 전사의 무덤이 발굴됐다. 발굴 당시 무덤 내부를 그린 그림을 보면 유골 주변에 각종 무기가 널려 있고 발 아래는 말 두 마리의 유골이 있었다. 당시 학자들은 10세기 바이킹족 남성 지휘관의 무덤이 발굴됐다고 생각했지만 2017년 DNA 검사에서 여성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덤 주인이 여전사가 아니라 전사의 가족일 가능성이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여전사라면 뼈에서 오랜 전투나 훈련의 흔적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의 무덤에서 나온 무기는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부장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번 이집트 공주는 말 그대로 뼛속까지 전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DNA 검사에서 여성으로 확인된 것은 물론이고, 뼈에도 생전 칼과 활을 쓴 흔적이 나왔다. 호주 그리피스대의 고고학자인 미셸 랭글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이집트 공주들의 삶을 확실하게 재조명했다”며 “당시 왕족 여성은 궁전에서 빈둥거리거나 남성을 따라다니기만 하지 않고, 아버지나 남자 형제가 그랬듯 무술과 사냥 기술을 훈련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번에도 여전사가 아닐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영국 사우샘프턴대의 소니아 자크제프스키 교수는 “저글링하거나 낫을 자주 써도 팔과 손뼈에 비슷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당시 낫을 썼던 여성 농민과 칼을 쓴 공주의 뼈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세바스티앙 빌로트 박사는 “같은 시대 비엘리트 계층의 유해와 비교해, 공주의 골격 특징이 왕족에 고유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