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플랫폼의 경쟁력은 연속적인 서사를 자연스럽게 소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와 사용자의 신뢰를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셜미디어(SNS) 사용자는 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기보다 조금씩 자주 먹는 ‘포리저(forager)’나 ‘스내커(snacker)’ ‘그레이저(grazer)’처럼 하루 종일 짧은 간격으로 콘텐츠를 끊임없이 소비한다. 이들은 개인화 추천에는 잘 맞지만, 정서적·지적 만족감은 낮은 추천 피드를 끝없이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딜로이트는 분절된 주의력 환경에서 마이크로 시리즈(숏폼 연재물)가 연속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이용자의 몰입과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형식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몇 분 단위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마이크로 드라마는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구성과 즉각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를 앞세워 드라마박스·릴쇼츠· 숏맥스 등 전용 앱의 급성장을 이끌며 새로운 콘텐츠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딜로이트 전망에 따르면, 마이크로 시리즈 인앱 매출은 2025년 약 38억달러(약 5조5500억원)에 이르렀고, 2026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한 약 78억달러(약 11조390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는 미국이 전 세계 매출의 약 50%를 차지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수익화가 본격화면서 비중은 약 40%로 낮아질 전망이다.
콘텐츠가 이용자의 자발적인 공유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알고리즘 피드의 불확실성 때문에 이용자와 창작자가 전용 마이크로 시리즈 플랫폼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딜로이트는 정보 과잉에 피로를 느끼는 이용자에게 숏폼 기반의 연속 서사가 새로운 콘텐츠 경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청자 사로잡는 1분 내외 숏폼 시리즈
연속극 형태의 숏폼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는 이용자의 제한된 시청 시간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 드라마 앱은 60~90초 분량의 짧은 에피소드를 수백 편 제공하며, 강한 반전과 다음 회를 궁금하게 하는 미완의 결말로 이용자의 지속 시청을 유도한다. 이러한 콘텐츠는 빠르고 저렴하게 제작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개선되며, 소셜 플랫폼과 연계를 통해 이용자가 직접 검색하지 않아도 콘텐츠가 쉽게 노출되는 효과와 바이럴 효과를 얻는다.
실제로 중국 아이치이는 1만5000편 이상의 마이크로 드라마를 제공하며 시청 시간이 크게 늘었다. 2024년 기준 중국 마이크로드라마 시청자 수는 약 6억6200만 명에 달하는 등 시장 규모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하고 있으며 인도와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도 플랫폼과 기업의 진입이 빨라지고 있다. 글로벌 마이크로 드라마 앱 매출은 2024년 1분기 1억7800만달러(약 2600억원)에서 2025년 1분기 7억달러(약 1조200억원)로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관련 앱이 다운로드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등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미국 밀레니얼 세대(1981~96년생) 및 Z 세대(1997~2010년생)의 약 30%가 마이크로 시리즈를 알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이전보다 더 자주 시청한다고 답했다. 또 절반가량은 기존 VOD(주문형 비디오) 플랫폼에서도 관련 콘텐츠가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이러한 수요에 맞춰 스트리밍 서비스와 창작자는 숏폼 연재 콘텐츠와 인공지능(AI)·데이터 기반 제작을 결합하며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소셜 중심, 데이터 기반, 비용 효율적 ‘차세대 스튜디오’의 부상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숏폼 소비 확대와 프리미엄 콘텐츠의 공존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개인 창작자가 차세대 스튜디오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낮아진 제작 비용과 AI·데이터를 활용해 콘텐츠를 빠르게 제작하고 개선하며, 시청자 피드백과 참여 데이터를 바탕으로 흥행 실패 가능성을 줄이고 팬덤과 커뮤니티를 강화한다. 마이크로 시리즈 시장이 커질수록 창작자 중심 스튜디오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며, 이를 둘러싼 플랫폼 간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셜 플랫폼은 연재 콘텐츠 발견과 지속적인 소비를 지원하지 못할 경우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숏폼 콘텐츠 제작은 AI와 데이터 기반 도구를 중심으로 효율성과 확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독립 스튜디오는 생성 AI를 활용해 자동 자막, 더빙, 보이스 클로닝(AI가 특정 인물의 음성 특성을 학습해 유사한 음성으로 재현하는 기술), B롤(보조 영상) 생성 등 제작 과정을 간소화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이고 있다. 언어 장벽도 낮추면서 글로벌 시청자에게 빠르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장편 서사를 숏폼 연재물로 전환하는 기술도 발전하면서 개인이나 소규모 팀도 고품질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동시에 편집과 운영 전략 역시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한 ‘훅(콘텐츠 도입부나 핵심 구간에서 반전이나 폭로 등을 통해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장치)’과 극적인 반전, 검증된 트로프(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야기 장치와 설정, 인물 유형)를 활용해 시청 지속성을 높이고 댓글 소통과 신속한 업로드로 팬덤과 커뮤니티를 강화한다. 완주율과 구독 전환율 등 데이터 기반 핵심성과지표(KPI)를 활용한 빠른 피드백은 콘텐츠의 흥행 가능성을 키우며, 마이크로 결제·구독·광고·굿즈 등 다양한 수익 모델과도 연결된다. 이를 통해 창작자는 하나의 시리즈를 프랜차이즈로 확장하고 멀티 플랫폼 유통과 지식재산(IP) 비즈니스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사 담은 숏폼, 브레인 로트·둠스크롤링 해독제 될까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선정한 2024년 올해의 단어는 ‘브레인 로트(brain rot)’였다. 이는 SNS를 중심으로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하면서 집중력과 사고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관련 용어인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은 암울한 뉴스를 강박적으로 계속 소비해 불안과 우울을 키우는 콘텐츠 소비 형태를 의미한다.
이는 기존 SNS 소비 방식에 대한 피로감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에 따라 일부 이용자는 지나치게 파편화된 소셜 환경에서 벗어나 더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연속 서사를 담은 숏폼, 특히 마이크로 드라마는 단순 소비를 넘어 몰입과 만족을 제공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 시리즈의 부상은 소셜 플랫폼과 스트리밍 서비스, 전통 스튜디오 간 경쟁 구도를 바꾸며 미디어 권력 지형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고품질 콘텐츠를 저비용으로 제작하는 독립 스튜디오가 늘어나면서 콘텐츠 생산 중심도 대형 사업자에서 창작자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소셜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연속 서사를 이어 소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시리즈형 콘텐츠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창작자는 알고리즘 의존에서 벗어나 마이크로 드라마 앱과 스트리밍 플랫폼, 창작자 주도 플랫폼 등 새로운 유통 채널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향후 소셜 플랫폼이 ‘시리즈 인식’이나 ‘이어보기’ 같은 기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창작자와 이용자가 전용 플랫폼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스트리밍 서비스는 연재 콘텐츠에 적합한 구조를 앞세워 숏폼 연재 시장의 주요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며,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서는 새로운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