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전 세계 각국이 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사용 규제에 돌입한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얼마 전 아동의 SNS 접근을 제한하는 법안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미 호주 등 5개국이 청소년 SNS 규제를 시행했고, 20여 개국이 규제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EU까지 가세하면 청소년 SNS 차단 흐름은 글로벌 표준으로 굳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7월 13일(이하 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올여름 이후 아동의 SNS 플랫폼 접근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SNS 플랫폼은 자사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며 “유럽에서는 제품을 개발한 기업이 그 안전성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SNS 운영 기업 스스로 청소년의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없앨 방안을 마련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필자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특정 연령대의 SNS 사용 금지 대신 무한 스크롤과 사용자의 반응을 극대화하도록 설정된 기본값, 끊임없는 푸시 알림 등 문제가 되는 설계 요소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9년 페이스북에 입사했을 때 나는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내세운 사명을 진심으로 믿었다. 전 세계 사람을 연결하고, 그들에게 더 큰 힘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왓츠앱의 모회사인 메타는 가능한 한 많은 반응을 사용자로부터 이끌어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 이들 플랫폼은 사용자를 중독시키고 분노하게 하며, 허위 정보를 확산하고 사회를 양극화하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내부 고발자가 되기 전까지 15년 동안 페이스북에서 일했다.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플랫폼을 사용하게 하는 기능, 이를테면 무한 스크롤과 자동 재생, 알고리즘 피드를 만들고 홍보하는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그런 장치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이윤 극대화를 다른 모든 가치 위에 두고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다행히 이제 세상은 SNS가 끼치는 해악, 특히 청소년에게 미치는 피해를 깨닫기 시작했다. 7월 초, 한 독립위원회는 EU가 온라인 공간에서 아동을 보호할 방법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 제출했다. 관련 입법안은 이번 여름이 지난 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① 몇몇 EU 회원국이 일괄적으로 특정 연령대의 SNS 사용 금지 정책을 도입하려는 상황에서 나온 이 보고서는 문제가 되는 설계 요소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학계와 일반 여론 모두가 지지하는 전략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아동을 보호하기 원한다면, 식품 회사나 자동차 제조 업체에 요구하듯 SNS 기업에도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먼저 플랫폼이 안전하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괄적인 특정 연령대의 SNS 사용 금지는 중독성이 강한 SNS의 존재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과 같은 SNS는 수년 동안 이어진 기업의 로비와 정부의 규제 회피가 만들어낸 결과다. 더구나 연령 금지는 효과도 없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 12월 16세 미만의 SNS 계정 보유를 금지하면서 세계 최초로 청소년 대상 SNS 금지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② 지난 3월 호주 온라인안전위원회가 발표한 이행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집행 과정에 커다란 허점이 있으며, 사이버 공간의 괴롭힘이나 사진·영상 등을 악용한 피해 신고도 줄지 않았다. 4월에도 12세에서 15세 사이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활성화된 SNS 계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호주 역시 아동의 건강과 삶의 질을 해치는 것으로 입증된 유해한 기능을 직접 규제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스페인·브라질·독일 정부도 플랫폼을 안전하게 설계할 책임을 기술 기업에 지워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더 많은 정부가 아동에게 피해를 주는 설계 요소를 금지하고, 기술 기업이 엄격한 안전 기준을 지키는지, 독립된 제삼자가 검증하도록 해야 한다. 170개가 넘는 단체가 이 같은 ‘안전 중심 설계’ 접근법을 요구하는 청원에 서명했고, 영국의 시민단체는 구체적인 안전 기준을 제시한 지침도 내놓았다.
여론의 지지도 폭넓다. 최근 유럽 5개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성인 응답자 4분의 3은 SNS에 안전 중심 설계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아동이 해당 플랫폼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EU 집행위원회가 메타가 무한 스크롤과 사용자의 주의를 붙잡아 두는 설계에서 발생하는 중독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위반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③ 미국에서는 네 개 주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청소년 사용자를 중독시키도록 설계됐다는 이유로 메타에 총 1조4000억달러(약 2044조원) 규모의 제재금을 요구하고 있다. 플랫폼 간 상호 운용성 제고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개혁이다. SNS 플랫폼이 데이터를 서로 연동하도록 하면, 사용자는 자기가 쌓아온 관계망을 잃지 않고도 더 안전한 대안으로 옮겨갈 수 있다. 예컨대 어떤 플랫폼이 극우 성향의 억만장자에게 인수돼 극단주의의 온상으로 변하더라도, 사용자가 그곳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 모든 개혁의 성패는 강력한 집행 장치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자율적인 약속이나,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는 호주식 법 집행을 통해 SNS를 규제하려 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기업은 그런 벌금을 그저 사업 비용의 일부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위반에 따른 제재는 미리 산정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야 한다.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의 대부분을 연령에 따른 일괄적인 SNS 사용 금지에 매진해 온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최근 방향 전환을 시사한 것은 고무적이다. 그는 독립위원회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며 “유럽의 원칙은 안전 중심 설계”라고 언급했다.
보고서는 연령에 따른 제한을 권고하면서도, 중독성이 강하고 유해한 기능이 다시 설계될 때까지만 적용되는 임시 조치로 규정한다. 또한 SNS의 안전성을 입증할 책임을 규제 기관이 아니라 기술 기업에 지운다.
EU는 이미 안전 중심 설계를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출발점에 서 있다. ④ DSA는 법적 근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이 같은 접근법이 실제로 효과를 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독립위원회는 강한 중독성을 이유로 최근 틱톡에 내려진 DSA 관련 집행 조치와 함께, 스냅챗과 X·그록, 메타를 상대로 진행 중인 법적 절차를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정치적 분위기가 달라진 지금, EU는 안전 중심 설계를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그것이 애초부터 사용자에게 미칠 피해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SNS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해법임을 인정해야 한다. 올해 말로 예정된 디지털공정법에 이 같은 원칙을 확대해 반영해야 한다. 기존 규정의 가장자리만 어설프게 손보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SNS 플랫폼에서 무한 스크롤과 사용자의 반응을 극대화하도록 설정된 기본값, 끊임없는 푸시 알림을 제거한다면 청소년이 훨씬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연령 금지는 플랫폼 자체를 그대로 둔 채, 피해가 시작되는 시점만 늦출 뿐이다. 안전 중심 설계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해로운 것이 증명된 제품에 노출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시장의 유인 구조를 바꿔 더 안전한 플랫폼이 경쟁에 뛰어들 자리도 마련해준다. EU는 역내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제품이 법적으로 안전 기준을 충족하도록 요구한다. SNS라고 해서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Tip
① 7월 20일 프랑스에서 15세 미만 아동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헌법위원회 심사를 넘으면 유럽에서는 아동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첫 나라가 된다. 그리스는 내년 1월부터 15세 미만 금지를 시행하기로 했고, 스페인·덴마크 등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영국은 만 16세 미만의 SNS 가입과 라이브 방송 사용, 낯선 사람과 연락 등을 제한하는 법안을 연내 제출해 2027년 봄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② 호주의 온라인 안전 규제 기관 e세이프티는 3월 31일 배포한 보고서에서 규제 시행 한 달 만에 주요 SNS 기업이 청소년 계정 약 500만 개를 비활성화 또는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상당수의 호주 청소년이 여전히 계정을 유지하거나 새 계정을 만들고, 플랫폼의 연령 확인 시스템을 우회 통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호주의 많은 청소년은 생년월일을 변경하고 부모 계정을 사용하거나 가상사설망(VPN)을 사용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이미 우회해서 계정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③ 메타는 7월 7일 법원에 제출한 서면 자료를 통해 캘리포니아·콜로라도·켄터키·뉴저지 등 네 개 주 정부가 총 1조4000억달러 규모의 민사 제재금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타의 시가총액(7월 27일 기준 약 1조5100억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번 소송과 별도로 미국 29개 주는 메타가 부모 동의 없이 아동 개인정보를 수집해 연방법을 위반했다며 공동소송을 제기했다. 메타뿐 아니라 스냅챗, 유튜브, 틱톡 등 주요 SNS 업체도 아동과 청소년의 사용을 중독적으로 유도해 정신건강 위기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미국 전역에서 수천 건의 소송에 직면해 있다.
④ EU는 2024년에 DSA를 시행하면서 디지털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을 법제화했다. DSA는 플랫폼 스스로가 알고리즘, 광고 시스템, 정보 유통 방식이 초래하는 사회적 위험을 평가하고 완화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플랫폼에 공적 책임을 부여하려는 시도로서, 디지털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 구현에 관한 세계적 준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