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등장 이후 기업의 생성 AI(Generative AI) 도입 경쟁은 이미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을 단순한 업무 효율화 도구로만 바라본다면 변화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경제 예측 전문가인 제이슨 솅커(Jason Schenker) 프레스티지 이코노믹스 회장은 저서 ‘AI 이후의 미래, 어떻게 될 것인가(The Future After AI)’에서 AI를 미래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로 규정한다. AI는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고객, 시장, 국가 경쟁력을 바꾸는 새로운 운영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람 대신 AI 에이전트가 소비와 거래의 주체가 되고, AI 패권 경쟁도 반도체와 에너지, 공급망 같은 물리적 인프라가 좌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AI 시대의 승자는 기술을 가장 먼저 도입한 기업이 아니라 AI를 제대로 활용하고 관리하는 기업”이라며 기업과 국가가 준비해야 할 AI 시대의 생존 전략을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AI를 새로운 운영체제라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이제 AI는 또 다른 기술이 아니다.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최신 스마트폰,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와도 차원이 다르다. AI는 사회와 산업을 떠받치는 기반 인프라다. 전기나 인터넷처럼 거의 모든 기업과 산업 전반에 스며들 것이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AI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게 될 것이다. AI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AI를 미래 경제의 초석이자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라고 부른다. AI는 훨씬 더 강력하고 가치 있는 기술이 될 것이며, 어디에나 있는 당연한 기반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많은 기업이 이미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데, AI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진짜 변화는 AI가 기업 시스템과 업무 흐름, 의사 결정, 고객 접점 등 경영 전반에 스며들면서 시작된다. AI는 단순히 기존 업무를 더 빨리 처리하는 도구가 아니다. 기업이 일하는 방식과 사람의 역할,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까지 바꾸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제품을 검색하고 비교·평가하며 거래까지 수행하게 된다. 기업은 사람뿐 아니라 사람을 대신하는 AI와도 소통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기업 간 거래(B2B),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를 넘어 기업과 AI(B2AI), 기업과 AI 에이전트(B2A)가 공존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AI가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올 산업 분야는.
“하나의 산업만 꼽기는 어렵다. 전기가 발명됐을 당시 어떤 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지를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이다. AI는 상거래, 금융, 의료, 교육, 제조업, 국가 안보 등 사실상 모든 산업과 사회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다만 판매와 마케팅이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다. AI 에이전트가 고객을 대신해 제품을 검색하고 비교·평가하며 추천하고, 협상과 거래까지 수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핵심 고객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대신하는 AI 에이전트가 될 수도 있다. AI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찾아내지 못하는 기업은 사실상 선택지에서 제외될 수 있다. 앞으로는 최고의 제품을 가진 기업이 아니라 AI가 이해하고 신뢰하며 추천하는 기업이 승자가 될 수 있다.”
AI 시대에는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어떤 능력이 더 중요해질까.
“반복적인 절차와 표준화된 분석, 일상적인 문서 작성과 행정, 백오피스·미들오피스 업무가 가장 먼저 AI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정보를 수집하고 초안을 작성하며 표준화된 결과물을 만드는 초급 전문직은 AI 기반 ‘디지털 위임(Digital Delegation)’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AI가 이런 업무를 더 많이 맡게 되면 관련 업계의 채용은 줄고 임금 압력은 높아질 수 있다. 반면 판단력과 신뢰를 쌓는 능력, 관계 형성, 리더십, 협상력, 창의성, 인간적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고객 응대와 돌봄, 리더십처럼 사람과의 신뢰와 관계, 건전한 의사 결정이 중요한 직무는 AI 시대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다. 앞으로 전문가는 반복 업무는 AI에 맡기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AI가 ‘전문성의 착각’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의 답변은 세련되고 자신감 있어 보이지만,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어에는 ‘게펠리헤스 할프비센(gefährliches Halbwissen)’, 즉 ‘위험한 반쪽 지식’이라는 표현이 있다. 해당 분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AI의 치명적인 오류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은 AI를 전문성을 대신하는 수단이 아니라 전문가의 능력을 키워주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의사 결정이 재무·법률·운영·평판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전문가의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AI는 분석 속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최종 책임까지 대신 질 수는 없다. ‘AI가 실수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AI의 속도와 확장성에 엄격한 관리 체계와 전문성과 정확성을 더하는 조직이 가장 큰 혜택을 누릴 것이다.”
AI 패권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AI는 사람과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만, 이를 구현하려면 막대한 물리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첨단 AI 시스템은 반도체와 대규모 데이터센터,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과 통신망, 핵심광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기반으로 한다. 결국 이런 인프라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AI 경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안정적인 에너지와 첨단 반도체 역량, 충분한 자본과 인프라, 안전한 핵심광물 공급망을 갖춘 국가는 유리하다. 반대로 전력이 부족하거나 전력망이 취약하고, 기술 규제나 경쟁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뒤처질 수 있다. AI 경쟁은 더 이상 알고리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와 더불어 반도체와 에너지, 핵심광물, 공급망을 선점한 국가가 미래 국제 질서에서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
AI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기술 주도권이 경제력과 국력의 핵심이 되면서 AI는 제2차 냉전을 더 가속하고 있다. 경쟁도 반도체와 연산 능력, 에너지, 핵심광물, 데이터, 군사 활용, 사이버 역량, AI 거버넌스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반도체와 통신 시스템, 군사·민간 겸용 기술, 공급망을 둘러싸고 이른바 ‘기술의 철의 장막’이 내려오고 있다. 양국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어 완전한 디커플링은 어렵겠지만, 기술과 공급망을 중심으로 한 분리는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첨단 기술 혁신과 반도체 설계, 한국 등 동맹국과 산업 협력에서 강점이 있고, 중국은 제조 기반과 희토류, 인프라 구축 능력에서 경쟁력을 갖추 고 있다.
결국 국가의 영향력은 에너지와 반도체, 핵심광물, 기술 인재 같은 전략 자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AI는 사이버 공격과 감시, 경제적 압박의 비용까지 낮추고 있다. 앞으로는 공급망과 핵심 기술을 지키는 능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제2차 냉전 시대에는 경제 안보가 곧 국가 안보다.”
휴가에서 복귀하는 CEO에게 조언한다면.
“먼저 인력 부족 때문에 성장이나 생산성, 의사 결정에 병목이 생기는 업무가 어디인지 찾아야 한다. 이런 영역일수록 AI를 도입했을 때 효과가 가장 크다. 나는 AI를 ‘디지털 위임’으로 생각하라고 권한다. 직원에게 일을 맡길 때처럼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AI 도입을 책임질 리더를 정하고 명확한 관리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AI 도입은 조직의 ‘PAR’, 즉 준비성(preparedness), 적응력(adaptability),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AI 시대의 승자는 기술을 먼저 도입한 기업이 아니라, AI를 제대로 활용하고 관리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