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리더가 생각을 외주화하면 조직 전체의 방향성을 흔들고 조직은 물론, 사회적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함께 쓴 정재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대외부총장과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석 연구위원은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두 저자는 인공지능(AI)이 알고리즘 추천과 즉각적인 답으로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이 지능의 자진 반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한국 기업이 시간과 속도에 쫓겨 과정을 생략하고,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는 현상이 AI 때문에 더 두드러진다고 짚었다. 정 대외부총장은 “좋은 리더라면 지금 나의 결정이 기술과 속도에 휩쓸린 과도한 반응은 아닐까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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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제를 개인의 인지능력으로 삼은 이유는. 

정재민 카이스트 대외부총장(이하 정재민) “디지털과 AI 시대에 미디어 생태계를 움직이는 가장 핵심적인 ‘사용자’에게 주목했다. 오늘날 미디어 사용자는 자기 주의(attention)와 반응을 통해 플랫폼의 방향과 시장의 흐름 자체를 만들어내는 주체적 참여자다. 그래서 사용자의 행동 변화를 이해하는 일은 미디어 전략 연구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지, 왜 추천 알고리즘에 끌려다니고 AI에 의존하게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미디어 경영학에 그치지 않고 심리학, 뇌과학, 정치학, 전산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이론과 실증 연구를 융합해 풀어내고자 했다.”


정보 과잉 속에서 빠른 의사 결정을 요구받는 조직 리더에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뭔가.

정재민 “리더에게 자기 판단 과정을 돌아보게 하고, 조직 구성원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생각 체계를 직관적이고 빠른 시스템 1과 느리고 신중한 시스템 2로 나눴다. 디지털과 AI 환경은 리더와 구성원 모두에게 빠른 반응과 속도를 요구하며 시스템 1의 작동을 극대화하도록 압박한다. 리더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과 빠른 결단은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리더라면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나의 결정이 기술과 속도에 휩쓸린 과도한 반응은 아닐까?’”

11가지 ‘기술의 덫’ 중, 유독 한국 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있나.

정재민 “한국 기업 조직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은 ‘시간과 속도에 쫓겨 과정이 사라지고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는 현상’이다. AI가 즉각적인 답(오답도 많지만)과 효율을 제공하면서, 조직 내에서 고민하고 검증하는 ‘생각의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젊은 구성원의 성장에 치명적인 문제를 만든다. 오직 빠른 성과 도출에만 익숙해지다 보니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성장 구조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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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소셜미디어(SNS)가 주의력을 빼앗는 방식과 생성 AI(Generative AI)가 사고력을 잠식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석 연구위원(이하 김영주) “두 현상을 일종의 원인과 결과, 혹은 서로 연결된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스마트폰과 SNS, 추천 알고리즘이 우리에게서 ‘스스로 깊이 생각할 시간과 집중력’을 먼저 빼앗았기 때문에, 우리는 집중력을 잃어버린 그 빈자리를 고민 없이 ‘생각을 대신하는 AI’로 채우게 된 것이다. 두 현상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편의성과 즉시성에 길든 인간이 생각의 주도권을 기술에 넘겨주는 하나의 연쇄적인 과정이다.”


AI가 만드는 진짜 불평등은 ‘인지적 격차’라고 봤다. 

김영주 “AI는 조만간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보편적 도구가 될 것이다. 이런 시대의 인지적 격차는 AI를 사용할 때 ‘생각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서 발생한다. 깊이 고민한 뒤 AI에 질문을 던지고, AI가 낸 답을 의심하고 검증하며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생각의 근육이 두꺼워질 것이다. 반면 AI가 내놓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생각의 근육이 퇴화할 것이다. 이것이 진짜 격차다.”

부모 세대보다 인지능력이 낮은 세대가 등장할 수 있다는 진단은 상당히 도발적인데. 

김영주 “부모 세대보다 지능지수(IQ)나 인지능력이 낮아지는 ‘역(逆)플린 효과(Reverse Flynn Effect)’는 연구가 활발한 분야다. 책에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복잡한 생각을 피하려 한다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이론을 제시한다. AI가 답을 바로 제시해 주는 환경에서는 뇌가 깊이 추론할 이유를 찾지 않게 되고, 편의성만 좇다 보니 뇌의 ‘고민하는 근육’이 퇴화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 지능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과거처럼 정보를 기억하고 계산하는 능력 대신, 생성된 결과를 평가하고 AI를 활용하는 ‘고차원적 메타인지’가 새로운 지능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메타인지’도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 없이는 형성될 수 없다.” 


역플린 효과를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기술 설계 탓만으로 볼 수는 없지 않나. 

정재민 “우리 일상의 중심에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플랫폼의 설계’가 있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끊임없는 알림은 인간 뇌가 편한 것을 좇도록 교묘하게 유도한다.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기엔 플랫폼의 구조적 영향력이 너무 강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난 3월 미국 법원이 의미 있는 판결을 했다. 유년기부터 SNS를 사용하며 우울증과 자해, 신체 이형증을 겪은 20대 원고가 구글과 메타를 상대로 승소했다. 배심원단은 이를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플랫폼의 성찰 없는 기술 설계 결함 탓으로 판단했다. 플랫폼은 거대한 사회적 영향력에 걸맞게 기술 설계를 더 투명하게 개선하고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


조직의 리더가 생각을 외주화할 때 생기는 위험은.

김영주 “조직의 리더가 생각을 외주화하면 조직 전체의 방향성을 흔들고 조직은 물론, 사회적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 리더는 조직 고유의 역사와 맥락, 집단적 경험 같은 맥락적 지혜를 체화하고 있어야 한다. 리더가 판단의 근거와 논리를 외부에 의존하면 그 결정의 허점이나 편향을 검증할 수 없게 되고, 결국 결과가 잘못됐을 때 책임의 공백이 생긴다. 최종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그만큼 무겁고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실무자에게도 빠른 성과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배우고 훈련할 수 있도록 장려하면 좋겠다.”


AI 거부가 답은 아닐 텐데. 

정재민 “AI에 내 생각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일상의 습관을 만들자는 게 이 책의 지향점이다. 실제로 매일 지키려고 노력하는 원칙은 ‘선(先)고민, 후(後)질문’이다. AI에 질문하기 전에, 단 몇 분이라도 먼저 생각하고, 몇 개의 키워드나 짧은 글로 정리한다. AI의 답을 받아본 뒤에도 그대로 쓰지 않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한 번 더 체크한다. 이 근거가 정말 맞는지, 다른 관점은 없는지, 한 번 더 의심하고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거창하거나 어려운 전략이 아니다.” 

박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