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빈 - 스킬벤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미국 보든칼리지 철학,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경영연구 석사·정보기술 박사,  현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캠퍼스(UCSB)  기술경영학과 부교수 /사진 맷 빈
맷 빈 - 스킬벤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미국 보든칼리지 철학,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경영연구 석사·정보기술 박사, 현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캠퍼스(UCSB) 기술경영학과 부교수 /사진 맷 빈

인공지능(AI)이 초안을 쓰고 코드를 짜고 분석까지 대신하는 시대다. 기업에는 생산성을 높일 기회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AI가 초급 업무를 대신할수록 주니어 직원이 직접 부딪치고 실수하며 배우는 기회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당장의 생산성은 높아져도 미래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과정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맷 빈(Matt Beane) 스킬벤치(Skill-Bench)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2012년부터 AI와 로봇 등 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스킬’, 즉 ‘역량’ 습득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해 왔다. 기업의 AI 역량을 측정·개발하는 플랫폼 스킬벤치를 이끌고 있는 그는 저서 ‘스킬 코드(The Skill Code)’에서 인간이 전문성을 쌓는 핵심 조건으로 도전(challenge), 복잡성(complexity), 연결(connection)을 꼽았다. 빈은 “최근 AI는 기업에 단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지만, 미래의 도전에 대응할 조직 역량은 약화했을 수 있다”며 생산성과 인간의 스킬을 함께 높이는 방식으로 AI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업이 AI 시대에 '스킬 저하'를 시급한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의미에서 ‘품질’의 문제다. AI가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을 맡게 되면 사람은 인간의 판단이 필요한 업무에 집중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AI를 도입해도 직원에게 그런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스킬이 없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르는 능력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AI 덕분에 밀린 업무를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일을 정말 해야 하는가’가 새로운 문제가 됐다. 과거에는 소수 전문가가 업무의 우선 순위를 정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눈앞의 업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전문성이 훨씬 중요해졌다. 좋은 목표를 고르고 제대로 수행하는 스킬은 조직의 생존과 직결된다.”

스킬을 키우는 세 가지 조건으로 도전, 복잡성, 연결을 꼽았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도전, 복잡성, 연결은 스킬을 키우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이다. 도전은 자기 능력보다 조금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면서 작은 실수를 하고 이를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이다. 가능하면 곁에 전문가가 있고, 실패했을 때 다시 시도할 여유도 있어야 한다. 복잡성은 자기가 하는 일뿐 아니라 그 일이 이뤄지는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컨대 수술을 배우는 수련의라면 수술 기술뿐 아니라 간호사는 무엇을 하는지, 의료 물품은 어디에서 오는지, 이 수술은 비용 대비 효과적인지까지 살펴야 한다. 그래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다.

지금 가장 위태로운 것은 연결이다. 연결은 사람 사이의 신뢰와 존중을 뜻한다. 초보자는 전문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노력하고, 전문가는 성장하는 후배에게 더 어렵고 흥미로운 기회를 준다. 이런 관계가 성장을 가속한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비대면 업무가 확산하면서 직장 내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크게 약해졌다.”

기업은 AI로 생산성을 높이면서 직원의 학습 기회도 지킬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운 과제다. 직원과 관리자, 기업 모두 AI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을 즉시 누리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할수록 초보자가 실제 업무에 참여할 필요가 줄어들고, 일을 하면서 배우는 기회도 사라진다는 점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람 간 상호작용을 통해 스킬을 키울 수 있도록 업무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공식·비공식 도제제도나 사람에게 성장에 필요한 업무를 연결해 주는 방식은 AI가 발전하고 도입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조직과 구성원이 모두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AI를 활용해 사람의 스킬을 키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이 직원의 학습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책에 도전, 복잡성, 연결 각각을 점검할 수 있는 10개 항목의 체크리스트가 있다. 조직에서 관찰하고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 직무나 부서, 회사 전체를 평가할 수 있다. 문서와 대화 기록, 깃허브(GitHub) 등의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면 조직의 강점과 위험 요인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AI가 오히려 세 가지 조건을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미래 전문가는 어떻게 길러야 하나.

“기업은 어려서부터 AI로 문제를 해결해 온, 이른바 ‘AI 네이티브’를 원한다. 기존 세대가 AI를 나중에 익힌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채용되는 주니어만으로 대규모 조직에 필요한 전문가를 계속 길러내기는 어렵다. 실제 업무 과정에서 사람에게 적절한 일을 연결하고 성장을 돕는 자동화된 인재 육성 시스템이 필요하다.”

책에서 말하는 '그림자 학습(Shadow Learning)'은 무엇인가.

“기존의 공식적인 학습 방식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할 때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스킬을 익히는 것을 말한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정상적인 경로가 막히면 일부 사람은 규칙을 벗어난 방법을 택한다. 과거 연구에서 수술 로봇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 배우기 어려워진 일부 수련의는 선임 외과의가 수술실에 없는 상황에서 직접 수술하는 등 부적절한 방법으로 경험을 쌓았다. 충격적이지만 그들에게는 스킬을 익히기 위한 과정이었다.

내가 연구한 모든 조직과 직업에서 자동화 기술이 도입되면 이런 ‘그림자 학습자’가 나타났다. 이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르라는 게 아니다. 이들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규칙까지 어겼는지, 스킬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찾아냈는지를 연구해야 한다. 그 안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인간과 AI가 함께 배우는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실제 업무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도전, 복잡성, 연결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지속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각자에게 성장에 필요한 업무를 연결해 줘야 한다. 기존 도제제도의 속도가 아니라 AI의 속도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생산성을 높이면서 인간의 역량도 키울 수 있고, 직원과 기업에 모두 도움이 된다.”

AI를 활용하는 기업 리더에게 조언한다면.

“지난 2년여 동안 기업은 AI를 활용해 단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얻었지만, 동시에 미래의 도전에 대응할 조직 역량은 약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생산성과 인간의 역량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경쟁사보다 앞서갈 수 있다. 지금의 격변을 현명하게 헤쳐 나간 기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