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슬람권 유일의 핵보유국 파키스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2위 규모의 육군을 보유한 군사 강국 튀르키예가 8월 7일(이하 현지시각) ‘중동판 나토’로 불리는 집단방위 협정을 체결했다. 뉴욕타임스(NYT)와 AFP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이날 이슬람교의 최대 성지인 사우디 메카에서 만나 ‘메카 집단방위 협정’에 서명했다.
이번 협정은 이란 전쟁이 재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예멘 후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된상황에서 체결됐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로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 지역 산유국의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이 안보 결속 다지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동 지역 통제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점도 3국의 메카 집단방위 협정 체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세 나라 모두 이슬람 수니파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시아파 맹주 이란과는 불편한 관계다. 하지만 협정 체결 이틀 만에 예멘의 친(親)이란 후티 반군이 사우디를 향한 대규모 공격에 나서면서 이란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졌다. 이번 협정 관련 주요 논점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1 협정의 핵심 내용은 뭔가.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3국 모두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토록 한 나토 조약의 핵심 집단방위 조항(5조)과 거의 같다. 각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세 나라를 하나로 묶는 형제애와 이슬람 연대를 바탕으로 번영의 미래를 추구하는 협정”이라고 했다. 발동 절차, 지휘 체계, 지리적 적용 범위 등 핵심 요소를 모두 ‘미공개’로 남겨둔 것에 대해 중동 전문가인 문병준 리벨리온 중동·북아프리카 전략 고문은 “서명국이 각국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별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장하는 장치”로 해석했다.
Q2 이슬람권에서 세 나라의 상징성은.
사우디는 이슬람의 양대 성지인 메카·메디나를 모두 품은 종주국이라는 권위와 막강한 오일머니, 빈살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브로맨스 밀착’을 앞세워 중동의 맹주를 자처한다. 튀르키예는 나토에서 두 번째로 큰 육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수출액 100억달러(약 14조1300억원)를 기록할 정도로 방산 기반이 탄탄하다. 튀르키예 방산 기업 바이카르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실전에서 성능을 입증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바이락타르 TB2’ 드론 개발사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과도 협력해 왔고, 202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전쟁 때는 중재자로 나섰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권 유일의 핵보유국이다. 앙숙 인도와 군비 경쟁 과정에서 핵보유국이 됐다. 이란과 약 900㎞에 달하는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은 이란 전쟁의 휴전 협상 국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는 등 오랫동안 미·이란의 연결 통로 역할을 담당해 왔다.
Q3 메카에서 협정을 체결한 의도는.
메카는 수니파와 시아파를 아우르는 전 세계 무슬림의 최고 성지다. 각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세 나라를 하나로 묶는 형제애와 이슬람 연대를 바탕으로 번영의 미래를 추구하는 협정”이라고 했다. 체결 날짜를 이슬람력(1448년 2월 24일)으로 먼저 표기하는 등 이슬람 색채를 집중 부각했다. 협정 체결을 위해 사우디를 방문한 파키스탄의 샤리프 총리와 군부 실세 아심 무니르 육군 참모총장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메카에서 움라(Umrah·특정 기간 외에 하는 소순례)를 마쳤다. 파키스탄과 튀르키예 정부는 협정 체결 얼마 후 약속이나 한 듯 이번 협정이 특정 국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적어도 사우디로서는 ‘무슬림 최대 성지 메카의 수호자’라는 위상을 부각해 심리전에서 이란의 예봉을 꺾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Q4 이란 반응은 어땠나.
의회 차원의 비공식 반응만 나왔다. 에브라힘 레자에이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은 협정 직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튀르키예, 파키스탄과 종이 협정이 사우디에 안보를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지난 수년간의 일방적 의존이 그들에게 안보를 가져다주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Q5 세 나라가 원래 가까운 사이였나.
파키스탄은 수십 년간 사우디군에 대한 훈련과 기술 지원을 해 왔고, 튀르키예와 파키스탄은 군함과 훈련기를 교환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2023년 튀르키예산 드론 대량 구매에 합의했다. 사우디와 파키스탄은 지난해 9월 상대국에 대한 외부 공격에 공동 대응한다는 내용의 군사 협정도 체결했다. 파키스탄은 그간 외환 위기 때마다 사우디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아왔다. 1998년 핵실험에 따른 국제 제재 때는 사우디에서 하루 5만 배럴의 원유를 무상 제공받았다.
Q6 추가 가입 여지가 있을까.
또 다른 수니파 군사 강국 이집트가 메카 집단방위 협정에 추가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 이집트는 올 초 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과 함께 4자 외교·안보 협력체(R4)를 결성했다. R4 외무장관은 8월 5일 요르단 암만에서 회동한 뒤 미·이란 휴전 협상의 조속한 속개와 긴장 완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 때문에 중동 정세 격변 때마다 ‘아랍의 맏형’을 자처하며 적극 관여했던 이집트의 합류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쿠웨이트와 카타르도 가입 후보국으로 거론된다. 쿠웨이트는 파키스탄과 방위 관계를 맺고 있고, 카타르는 튀르키예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2023년에 파키스탄과 방위 협정을 체결하고, 7월에 이를 비준했다.
Q7 앞으로 지켜봐야 할 변수는.
메카 집단방위 협정이 ‘수니파 이슬람 군사 동맹’으로 팽창한다면, 이스라엘이 견제에 나설 수 있다. 또 파키스탄과 핵무기 증강 경쟁을 벌여온 인도까지 가세하면 세계 안보의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Q8 우리 방산에 미칠 영향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란 전쟁 여파로 전 세계 방산 시장은 ‘군사 협력과 무기를 묶어 파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 고문은 “무기 판매를 넘어 훈련, 정비, 기술협력, 현지 생산 더 나아가 일정 수준의 안보 협력까지 결합한 ‘안보 패키지’ 경쟁으로 시장 성격이 바뀔 가능성이 큰 만큼 앞으로 걸프 방산 시장에서 가격과 성능만으로 경쟁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며 “한국 역시 이제 ‘무엇을 팔 것인가’뿐 아니라 ‘무기를 팔면서 어떤 전략적 관계를 함께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Q9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는 불가피할까.
이번 협정과 관련해 향후 중동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 약화는 필연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의 안드레아스 크리그 교수는 “미국에 그동안 수조달러를 투자한 걸프 국가들은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우선 보호하는 모습에 충격받았다”며 “중동에서 미국 패권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Q10 중국에 도움이 될까.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1~2024년 파키스탄이 수입한 무기 80% 이상을 중국에서 들여왔다. 또, 지난해 체결한 사우디와 집단방위 협정에 따라 파키스탄은 JF-17 전투기를 비롯한 중국산 무기 체계를 사우디에 제공했다. 이 같은 상황을 근거로 미국에 본부를 둔 중동 포럼의 임란 쿠르시드는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은 파키스탄을 무기 홍보의 관문으로 삼아 이 지역 방산에 진출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방산 수출 확대를 모색할 수 있는 상황 변화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