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대국’ ‘독서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문을 닫는 서점이 속출하고 있다. 서점 수는 전성기였던 1998년 2만4000여 개에서 2025년 말 기준 1만 개 수준으로 감소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지만, 기노쿠니야서점(紀伊國屋書店·이하 기노쿠니야) 실적은 고공 행진을 이어간다. 2027년이 되면 창업 100주년을 맞는 일본 대표 서점 기노쿠니야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매출과 순이익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경쟁 상대인 마루젠서점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수익 구조 개선을 우선하는 상황에서 기노쿠니야는 국내외 점포망을 확대하고, 신규 사업에 공격적이다.
비즈니스맨은 물론,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 일본 여행을 가면 한 번쯤 찾는 곳이 기노쿠니야다. 도쿄, 오사카 등 전국 29개 지역에서 103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연간 200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책을 구입한다. 서적은 물론이고 사무기기, 문구, 만화 및 애니메이션 굿즈 등 일본 문화 상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종이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매년 신기록을 경신 중인 기노쿠니야의 성공 전략을 소개한다.
매출·순이익 3년 연속 최고 경신
창업자 다나베 시게이치는 1927년 1월, 도쿄 신주쿠 본점이 있는 조그만 목조주택에 서점을 열었다. 다나베는 평소 책을 매우 좋아했고, 다수 문예 잡지를 창간한 소설가였다. 기노쿠니야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란을 견뎌내고 일본에 서점과 출판문화를 정착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국내에서 서점 100개 체제를 구축했으며, ‘기노쿠니야 신서’를 창간했고, 전문가를 초청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신주쿠 세미나’를 창설했다. 일본출판판매(주) 등과 합작회사인 ‘북셀러즈 & 컴패니’를 만들어 서점 주도의 출판·유통 개혁도 이끌고 있다.
기노쿠니야는 2025회계연도에 매출 1408억엔(약 1조2588억원·전년 比 4.1%↑), 순이익 47억엔(약 420억원·전년 比 37.4%↑)을 기록, 매출과 순이익 모두 3년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업 영역별 매출은 국내 서점 472억엔(약 4220억원), 법인 대상 판매 542억엔(약 4845억원), 해외 사업 346억엔(약 3093억원), 문구·소품 등 48억엔(약 429억원)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인터넷·소셜미디어(SNS)에 이어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보급으로 종이책이 팔리지 않는 영업 환경에서 거둔 성과다. 국내 서점보다 대학이나 도서관 등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 영업의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인수합병으로 점포망 늘려 리스크 분산
기노쿠니야의 일본 내 점포는 지난 7월 말 기준 103개다. 최근 2년 새 두 건의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매장 수를 30여 개 늘렸다. 2024년 기노쿠니야는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으로부터 ‘아사히야서점’과 ‘도쿄아사히야서점’을 인수했다.
1946년 창업한 아사히야서점은 오사카에서 오랜 기간 경쟁해 온 인기 서점이다. 도쿄와 오사카에 총 11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기노쿠니야에 인수된 후 두 개 점포는 상호를 바꿨고, 아홉 개는 기존 아사히야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기노쿠니야는 2025년 6월, 게이오전철 자회사인 ‘게이오서적판매’도 인수했다. 게이오서적판매는 전철 게이오선의 역사를 중심으로 서점 ‘게이분도’를 20개 운영했다. 전국적으로 서점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기노쿠니야는 과감한 M&A를 통해 전국 점포망을 계속 확대하는 중이다.
일본에서도 출판업이 불황인데, 기노쿠니야는 어떻게 매장을 확대하고 있는 걸까. ‘일본출판판매 2025년’에 따르면, 출판물의 판매 경로별 판매액은 서점 7371억엔(약 6조5897억원·전년 比 4.8%↓), 인터넷 판매 2737억엔(약 2조4469억원·전년 比 3.5%↓), 전자 출판물(전년 比 2.9%↑)로 조사됐다. 서점 판매가 줄어들고 있지만, 아마존 등 인터넷 판매의 세 배에 달한다. 전자책 시장은 서점 판매 규모와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전자책 시장 90%가 코믹스 출판물이다.
이는 소비자가 코믹스가 아닌 학술서와 실용서, 소설 등을 여전히 서점에서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가 서점에 가면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최근에 뭐가 화제가 되고 있는지 등 출판물 트렌드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이 서점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책을 구입하는 사례도 많다. 이용자의 흥미와 구매 이력을 토대로 책을 추천하는 인터넷 판매와 서점의 기능은 다르다. 기노쿠니야 관계자는 “서점이 갖춘 문화 인프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매장을 확대하고 있으며, 매출과 이익 증대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해외시장 공략하고 법인 대상 영업 강화
기노쿠니야는 지난 7월 말 기준 해외 11개국에서 51개 서점을 운영 중이다. 1990년대 초 일본의 버블 경제 붕괴 이후 다수 일본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했지만, 기노쿠니야는 거꾸로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2020년대 들어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해외에서 인기가 높아져 코믹스나 관련 상품, 일본 도서를 찾는 소비자가늘어난 덕분이다. 일본 국내에 이어 해외에도 100개 서점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들어 급성장하는 사업은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 간 거래(B2B) 영업이다. 전자판을 포함한 서적과 잡지, 학술 정보 상품, 문구 등을 학교, 연구 기관, 관공서, 기업 등에 판매하는 비즈니스다. 도서실이나 자료실의 신축, 개보수 때 시설과 비품을 서비스하는 업무다.
최근 40년 동안 대학을 중심으로 한 외부 도서관의 업무 위탁도 많이 늘어났다. 본사에서 외부에 파견한 직원도 1600명이 넘는다. 연구자나 학생에게 최신 정보 제공 서비스업도 한다. 2018년에 출시한 학술 일본어 전자도서 서비스 ‘키노덴’에 수록된 도서는 13만 종에 달하며, 국내외 560여 개 기관이 도입했다. 사내에 업무 위탁 직원의 채용·연수·양성을 지원하는 라이브러리 서비스 영업본부인 ‘LS업무지원센터’도 있다. 정보과학기술협회의 검색기술자검정 등 자격증 취득을 위한 강의도 제공 중이다. 서적 판매 외에 외부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B2B 서비스가 기노쿠니야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뜨고 있다.
법인 영업·개인 소비자 판매 동시 확장
기노쿠니야는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책을 파는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비즈니스에 법인 대상 판매 및 서비스를 하는 B2B 비즈니스, 일본 문화의 발신지 역할을 하는 해외 매장 확대를 통해 브랜드력과 외형을 동시에 키워가고 있다. 만성적인 출판 불황에도 독보적인 성과를 내는 기노쿠니야의 지속 성장 비결이다.
다카이 마사시 기노쿠니야 회장은 창업 100주년을 앞두고 최근 기념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도 책과 문화·학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니즈에 대응하고, 서점과 출판계를 둘러싼 여러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주가 만든 회사의 전통을 살려 미래에도 일본 곳곳에 서점이 살아 있게 하는 ‘서점 비즈니스’로 지속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Company Info
회사명 기노쿠니야서점(紀伊國屋書店)
창업 1927년 1월 22일
대표 다카이 마사시 회장
직원 수 7000여 명
서점 수 103개(일본 매장 기준)
고객 수 2000만 명 이상(연간 구매 고객 기준)
사업 내용 서적·잡지·사무기기·문방구·정보 문헌, 시청각 교재, 교육설비 판매, 출판, 영상 상품, 도서 데이터베이스(DB)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