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한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전력·수자원 소비와 전기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의 환경 매체 히트맵 뉴스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미국 전역에서 무산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규모는 최소 850억달러(약 120조원)에 이른다. 2026년 1분기에만 417억달러(58조8800억원·3.5 규모) 상당의 사업 20개가 취소됐다. 플로리다주 포트세인트루시에서는 135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프로젝트 자비스(1 규모)'가 환경 문제로 철회됐다. 뉴욕주는 2026년 7월 캐시 호컬 주지사의 행정명령으로, 미국에선 처음으로 50㎿(메가와트) 이상의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을 1년간 중단하는 조치를 했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가를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필자는 이런 규제 조치가 가져올 전략적 손실을 경고한다. AI 핵심 인프라 구축 지연은 자칫 1970년대 석유 파동이나 1990년대 희토류 공급망 포기 사례처럼 미국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필자는 "시장은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비용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한다"며 "정부가 세제 혜택과 절차 간소화를 추진하되 전력망 공동투자 등 환경·사회적 의무를 부과하는 정교한 '조건부 민관 협력'으로 AI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6년 7월 1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데이터센터 반대 전국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2026년 7월 1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데이터센터 반대 전국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AI 인프라 투자 열풍 속에서 데이터센터로 막대한 자본이 몰리자, 미국에서는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졌다. 그 결과 지난 3년 동안 최소 85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취소됐다. 지난 7월 뉴욕주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시행한 첫 번째 주가 됐으며, 다른 주와 연방정부도 유사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초래하는 경제적·환경적 비용에 대한 우려는 매우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여전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데이터센터를 더 짓지 않는다면 미국은 무엇을 놓치게 될 것인가.

조 바이든 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관리를 지냈고 현재는 AI 분야 투자자로 활동하는 조시 조퍼는 최근 데이터센터를 “미국의 산업 기반 구축 의지를 가늠할 중대한 시험대”라고 표현했다. 데이터센터는 미래에 필요한 전략적 역량 구축을 위해 희생을 요구한다. 미국 정책 당국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탓에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기반 확충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대표적인 두 개의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세계적인 석유 파동이 발생하면서 미국은 에너지 의존이 전략적 취약성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1977년 연설에서 “안전하고 다변화된 국내 에너지 기반을 구축하려면 미국 경제가 ‘더 높은 비용’과 ‘더 큰 불편’을 감수하는 시기를 거쳐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려 했던 카터의 태도는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커리에 따르면, 카터의 후임자들은 여기서 다른 교훈을 얻었다. 이들은 희소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공급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발언으로 가격을 끌어내리고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에너지 안보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시간을 벌었을 뿐, 필요한 투자를 미뤘다.

오늘날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카터 대통령이 촉구했던 에너지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 일깨운다. 이후 개발된 막대한 셰일가스 매장량 덕분에 미국의 에너지 의존도는 카터 시대보다 낮아졌지만, 최근 휘발유 가격 상승에서 확인할 수 있듯 미국은 여전히 석유 공급 충격에 노출돼 있다.

비토리오 콰글리오네 - 보코니대 학술연구원, 이탈리아 보코니대 경제학 학사·경영학 석사, 거시금융·기술·정책 뉴스레터 'MOPS' 창립자 겸 편집장
비토리오 콰글리오네 - 보코니대 학술연구원, 이탈리아 보코니대 경제학 학사·경영학 석사, 거시금융·기술·정책 뉴스레터 'MOPS' 창립자 겸 편집장
반면 ① 중국은 수십 년에 걸쳐 전기화를 추진해 왔다. 커리는 이를 “선택 가능성을 사들이는 일”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 확보된 유연성, 커리의 표현을 빌리면 “석탄, 가스, 태양광, 풍력, 우라늄 등 어디서든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정책 방향은 중국이 현재의 에너지 위기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미국은 희토류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지 않을 기회도 놓쳤다. 20세기 후반 캘리포니아주의 ② 마운틴패스 광산은 미국 내 희토류 생산과 가공 역량의 핵심 거점으로서,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공급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환경 문제와 규제 변화,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생산 업체 등장으로 1999년에서 2000년 사이 조업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당시 미국 산업계는 희토류 수요 90% 이상을 중국 공급업체에 의존하게 됐다.

두 사례는 모두 미국의 의사 결정이 지닌 중요한 한계를 보여준다. 시장은 무언가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는 데는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는 데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투자 수익 가운데 사회 전체에 돌아가는 몫이 있는 경우 시장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안전한 에너지 공급과 희토류 공급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 전반의 투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혁신 및 공공가치 경제학 교수와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포드재단 석좌교수는 여러 시장에 걸친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도하고 조정하며 지원하는 방안으로 논문 ‘조건부 산업 정책: 분류 체계와 사례’에서 민관 협력을 제안했다. 이들은 성공을 위해서는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의사 결정이 별도의 유인이 없다면 기업이 추구하지 않을 성과를 향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런 민관 협력은 정부가 민간 기업에 대출, 세제 혜택, 신속한 인허가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두 종류의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첫째는 ‘방향성’이다. AI 하이퍼스케일 기업이 환경적·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우려를 해소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술 관련 데이터 공유, 수자원 관리 약속, 전력망 확충에 대한 투자 등이 포함된다.

둘째는 ‘위험·보상’이다. 공공 부문이 위험 일부를 부담한다면 수익 일부도 공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초과 이익 공유, 지분과 유사한 금융 수단, 연산 자원에 대한 접근권 등이 구체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정책 당국은 이미 데이터센터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세계경제 체제가 달라지면서 이 같은 인프라의 가치가 한층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공동의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통합이 목표였고 세계화는 그 수단이었다. 오늘날에는 더 분절된 세계에서 지경학이 중심 논리가 됐다. 이제 힘은 전략적 거점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에 따라 정책 당국은 전략적 투자를 여러 시장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이미 더 적극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거 에너지의 선택 가능성이나 희토류 가공의 전략적 중요성이 불분명해 보였던 것과 달리, 데이터센터의 전략적 중요성은 비교적 분명하다. ③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AI를 다섯 층의 케이크에 비유한 바 있다. 데이터센터는 그중 인프라 계층에 자리하며, 이는 데이터센터가 경제 전반에서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물론 전략산업으로 투자를 유도하는 문제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024년 유럽 경쟁력 보고서에서 획기적 혁신, 방산 역량, 국경 간 전력망을 ‘공동 대응 없이는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공공재’로 규정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은 초당적 의제가 돼야 한다. 민관 협력의 성패는 그 설계에 달려 있다. 조건이 너무 많으면 혁신이 위축될 수 있다. 반대로 조건이 너무 적으면 민간 기업이 공공 지원으로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온전히 챙기게 된다. 

Tip

중국은 2009년 ‘스청첸량(十城千輛)’ 정책을 발표하고,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육성에 착수했다. 2012년에는 ‘생태 문명’을 국가 성장 전략으로 공식화하고 세계 최대의 ‘전기 국가’로 도약을 선언했다. 초고압 송전망과 재생에너지에 집중 투자해 청정 기술 생태계를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사막에 있는 이 광산은 미국 내 유일한 대규모 희토류 광산이다. 1980년대 세계 최대였으나 중국의 저가 공세와 환경 문제로 2002년 중단 및 2015년 파산을 겪었다. 2017년 엠피머티리얼스가 인수하며 부활했다. 현재 채굴을 넘어 정제·영구 자석 제조까지 가치 사슬을 확장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2025년 10월 열린 가트너 IT 엑스포 연설에서 AI 산업을 ‘5단 케이크’에 비유했다. 황 CEO는 최하단인 에너지(1층)부터 칩(2층), 데이터센터 인프라(3층), AI 모델(4층), 최상단의 애플리케이션(5층)까지 유기적으로 결합한 생태계 모델을 제시했다.

비토리오 콰글리오네 보코니대 학술연구원

정리=박근태 선임기자, 고은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