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여름, 파리 서쪽 센강 변에는 라 그르누예르라는 유명한 물놀이 휴양지가 있었다. ‘개구리 연못’이라는 뜻의 이곳은 기차를 타고 파리를 벗어난 시민들이 뱃놀이와 수영을 즐기던 근교 유원지였다. 강 위에는 수상 카페와 식당이 있었고, 선착장에는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해 여름 모네가 그린 ‘라 그르누예르’에는 중앙의 선착장과 사람, 강 위의 배들이 보인다. 짧고 굵은 붓질은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의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한다. 형태를 정교하게 묘사하기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물의 변화에 집중한 것이다. 이처럼 인상파 화가에게 자연의 빛은 회화를 바꾸어놓은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를 흔히 ‘빛의 화가’라고 부른다. 그런데 같은 인상파의 핵심 멤버였던 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달랐다. 그의 작품에는 야외의 햇빛이나 자연 풍경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자연을 바라보면 권태를 느낀다고 했고, 야외에서 풍경을 그리는 화가를 감시할 헌병대가 필요하다는 농담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인상파를 상징하던 야외 작업을 노골적으로 비튼 말이다. 이처럼 자연의 빛을 외면한 드가를 우리는 왜 인상파 화가라고 부르는 것일까.
파리 상류층의 새로운 여가, 경마장
같은 1869년 여름, 드가는 친구 폴 발팽송의 노르망디 영지에 머물며 ‘시골 경마장에서’를 그렸다. 모네가 센강에서 빛과 물결의 변화를 관찰하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당시 경마는 상류층의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철도가 도시와 교외를 연결하면서 사람들은 경마장을 찾아 경주를 관람하고 사교를 즐겼다. 1874년 제1회 인상파 전시에 출품된 이 그림을 보면, 말과 기수는 화면 오른쪽 멀리 작게 밀려나 있다. 대신 화면 앞의 마차와 사람들이 장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부석에는 발팽송과 개가 앉아 있고, 마차에는 양산을 든 그의 아내와갓난아기를 안은 유모가 보인다. 제목은 경마장이지만 드가의 관심은 경주보다 그곳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의 일상에 있었다.
구도도 파격적이다. 마차 바퀴는 화면 아래와 왼쪽에서 잘려 나가고, 인물도 안정적인 중심 구도를 벗어나 있다. 지나가다 우연히 한순간을 포착한 듯한 장면이다. 당시 확산하던 사진의 프레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는 풍경화, 풍속화, 가족 초상화가 겹쳐 있다. 그러나 드가에게 노르망디의풍경 자체는 주제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자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근대인의 여가와 일상에 있었다.
화려한 무대 뒤의 일상을 보여주는 발레 연습실
1870년 무렵부터 드가의 관심은 당시 파리 공연 문화의 중심이던 발레로 옮겨 간다. 경마장이 사람들을 교외로 불러냈다면, 오페라극장은 그들을 도심의 밤으로 끌어들였다. ‘발레 수업’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는 지팡이를 짚은 발레 교사가 서 있고, 그 주위로 무용수가 흩어져 있다. 그러나 정작 화면 한복판을 차지하는 것은 텅 빈 마룻바닥이다. 소녀들은 좌우로 밀려나 있고, 춤을 추지 않는 순간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등을 긁거나 귀고리를 만지고, 벽에 기대 쉬기도 한다. 무대 위의 완성된 춤보다 연습실에서 드러나는 무용수의 일상적인 몸짓을 포착한 것이다. 당시 파리 오페라의 어린 무용수는 상당수가 노동 계층 가정 출신이었다. 이들은 반복되는 연습과 엄격한 훈련을 견뎌야 했고, 극장을 드나드는 부유한 남성 후원자의 시선에도 노출돼 있었다. 드가가 바라본 발레는 화려한 공연만이 아니었다. 훈련·노동·휴식·피로가 교차하는 근대도시의 일상이었다.
가스등이 밝힌 근대 파리의 밤 문화, 카페 테라스
1877년, 드가의 시선은 밤의 파리로 옮겨 갔다. 시력에 이상이 생긴 그는 강한 햇빛을 불편해했고, 몽마르트르의 카페와 극장 등 밤의 공간에 관심을 두었다. ‘저녁, 카페 앞의 여인들’은 드가가 포착한 파리의 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스만의 도시 개조와 가스등 보급은 파리의 밤을 바꾸고 있었다. 상점과 카페, 극장이 늘어나면서 밤은 새로운 여가와 소비의시간이 되었다. 드가는 이 시기 새로운 표현 방식인 모노타이프에도 몰두했다. 금속판에 잉크나 유성물감을 칠해 종이에 찍은 뒤 파스텔을 덧입히는 방식이다.
그림 구도는 대담하다. 굵은 기둥이 화면을 가로지르고, 왼쪽 여성은 화면 가장자리에서 일부만 드러난다. 오른쪽 여성 역시 화면 밖으로 밀려날 듯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로 파리의 밤거리가 번져 보인다. 테라스에 앉은 여성들은 손톱을 물어뜯거나 탁자 위로 손을 뻗는다. 화려한 옷차림과 달리 표정과 몸짓에는 권태와 피로가 묻어난다.
당시 카페테라스는 여가와 소비, 유흥이 뒤섞인 근대 파리의 공간이었다. 드가의 관심은 화려한 밤거리 자체보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에 있었다.
인상파는 근대 파리의 풍속화였다
드가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열린 인상파 전시에 한 번 빼고 모두 참여한 중심인물이다. 그러나 모네처럼 자연의 빛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린 것은 경마장과 발레 연습실 같은 근대 파리의 일상이었다.
인상파를 짧은 붓질과 빛의 회화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산업혁명기의 튜브 물감은 화가를 야외로 이끌었고,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새로운 시선을 열었다. 기술의 변화가 회화의 방식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무엇을 그렸느냐였다. 당시 파리 화단의 중심인 살롱이 역사와 신화, 성서를 중시했다면, 인상파는 뱃놀이와 경마, 발레와 카페, 거리와 기차역을 그렸다. 과거의 이야기 대신 자기가 살아가는 현재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한 세기 앞선 조선 후기에도 김홍도와 신윤복은 씨름판과 서당, 남녀의 만남 같은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시대와 장소는 달랐지만, 평범한 일상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는 점은 닮아 있다. 이처럼 인상파가 그린 것은 자연의 빛만이 아니었다. 근대 파리의 평범한 하루였다. 풍경보다 근대 파리의 사람과 도시를 바라본 드가가 인상파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