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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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건강을 자부하며 주말마다 등산을 즐기던 60대 이모 이사는 최근 들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한 호흡곤란을 겪었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져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점차 평지를 걸을 때도 숨이 차오르고 발작적인 마른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뒤늦게 병원을 찾은 이모 이사에게 내려진 진단명은 이름조차 생소한 ‘특발성 폐섬유증(IPF)’이다. 의사는 “폐가 점차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다”며 즉시 듣도 보도 못한 약물 치료를 권했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뚜렷한 원인 없이 폐 조직에 염증과 흉터가 생기는 현상이 반복돼 폐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결국 만성적으로 폐의 탄력이 떨어져 산소 교환 능력이 훼손되며, 치료하지 않으면 평균 생존 기간이 3~5년에 불과해 암보다 더 나쁜 예후를 보인다. 과거에는 특발성 폐섬유증은 매우 드문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구가 고령화하고, 고해상도 흉부 컴퓨터단층촬영(HRCT) 같은 진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환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김범택 -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현 대한골다공증 학회 부회장
김범택 -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현 아주대병원 비만클리닉 소장,현 대한골다공증 학회 부회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특발성 폐섬유증 유병률은 2011년 인구 10만 명당 7.5명에서 2019년 23.2명으로불과 8년 만에 세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발병 양상을 살펴보면, 50세 미만에서는 발병이 극히 드물고 70대 환자가 가장 많고, 남성이 여성보다 2~3배가량 높은 발병 빈도를 보인다.

질병 초기에는 증상이 매우 서서히 나타나서, 단순 노화나 운동 부족으로 인한 체력 저하로 오인하기 쉽다. 가장 흔한 증상은 서서히 진행되는 호흡곤란과 가래 없는 잦은 마른기침이다. 초기에는 계단을 오르거나 무거운 짐을 들 때만 숨이 차지만, 병이 악화하면 옷을 입거나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일상생활조차 버거워진다. 청진 시 특유의 수포음(찍찍이 소리)이 들리거나 손가락 끝이 뭉툭해지는 ‘곤봉지’ 현상이 동반된다. 가장 강력한 위험 인자인 흡연을 비롯해 위·식도 역류 질환(위산 흡인), 세포 재생이 안 되는 노화 유전자 등이 주요 발병 요인으로 지목된다. 

예전에 의학계는 특발성 폐섬유증을 단순한 만성 염증으로 보고 고용량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를 주된 치료제로 사용했다.그러나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면역억제제가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급성 악화를 유발하고 사망률을 급격히 높인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며 치료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특발성 폐섬유증의 본질은 ‘염증’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치유 과정(섬유화)’에 있음이 명백해졌다. 이에 따라 섬유화를 억제하는 표적 치료제인 ‘항섬유화제(피르페니돈· 닌테다닙)’가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 이들 약제는 이미 딱딱해진 폐를 원래대로 되돌려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폐 기능이 저하되는 속도를 절반가량으로 늦추고 생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연장해 준다. 따라서 병이 발견되면 즉시 항섬유화제 복용을 시작해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다.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호흡기 감염 등으로 호흡 부전에 빠지는 ‘급성 악화’로, 발생 시 사망률이 50%를 넘을 만큼 치명적이다. 이를 막기 위해 독감, 코로나19, 폐렴구균 등 백신 접종이 필요하고, 금연, 위산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과식이나 식후 바로 눕는 것을 피하는 등 식습관 개선이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약효를 폐에 직접 전달하는 흡입형 신약(트레프로스티닐) 개발이 임상 3상을 앞두고 있어 치료 효과 향상이 기대된다.

중장년층은 잦은 마른기침과 호흡곤란이 있다면 가볍게 여기지 말고, 즉시 병원을 찾아 HRCT를 찍는 등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폐를 건강하게 지키는 지름길이다. 

김범택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