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음 날 프리미어에서 그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신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매끄럽게 흐르는 셀린느의 블랙 새틴 맥시 드레스를 입었는데, 허리 아래로 은근하게 드러나는 피부와 새하얀 레이스업 힐이 만들어낸 극적인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화 속 바다의 님프 ‘칼립소’를 상징하듯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오가는 대담한 디테일이 곳곳에 등장했다.
테론은 1990년대 후반 할리우드에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레드 카펫 위에서 끊임없이 자기 스타일을 진화시켜 왔다. 초기에는타고난 미모와 몸매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글래머 스타일을 보여줬다.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선보인 오렌지빛 베라 왕 드레스, 2001년 골든글로브에서 깊게 파인 블랙 드레스 그리고 2002년 오스카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구찌 드레스까지. 당시의 테론은 풍성한 드레이핑과 강렬한 컬러, 여성적인 실루엣을 통해 젊고 매혹적인 스타의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스타일은 단순히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여배우’라는 틀에 머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드레스는 더욱 간결해졌고, 실루엣은 정교해졌다. 블랙과 화이트 같은 모노크롬 컬러를 즐겨 입고, 장식보다는 테일러링과 실루엣, 소재의 본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보그’ 같은 전통 패션 매거진이 그녀의 레드 카펫 스타일에서 주목한 점도 바로 이 미니멀리즘이었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심플한 드레스부터 지방시, 알렉산더 맥퀸, 디올 오트 쿠튀르까지, 그녀는 화려함을 덜어내면서도 오히려 더욱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무엇보다 디올은 ‘샤를리즈 테론 스타일’ 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녀와 디올의 오랜 관계는 2000년대부터 이어져 왔고, 특히 디올 향수 캠페인을 통해 그녀는 ‘모던 여신’ 이미지의 상징이 됐다. 레드 카펫에서도 디올의 유려한 실루엣과 정교한 쿠튀르는 그녀의 긴 신체 비율을 만나 레전드 룩을 만들어갔다.
그녀의 스타일 변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순간은 2019년 영화 ‘롱 샷’ 프로모션 무렵이다. 이때 테론은 헤어 컬러와 길이부터 과감하게 변화시키며 스타일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오랫동안 유지했던 베이비 블론드 헤어 대신 짙은 브라운 보브를 선보였고, 이후 마이크로 프린지(micro fringe·눈썹 위로 앞머리를 짧게 자른 초단발)까지 시도했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디올의 앰배서더다운 우아함과 함께 셀린느의 정교한 슈트, 지방시와 알렉산더 맥퀸의 다크 글래머가 어우러지며 보다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변화했다.
이 시기부터 테론의 스타일에서 특히 강하게 드러난 것이 테일러링이다. 잘 재단된 블레이저와 팬츠 슈트는 그녀의 또 다른 시그니처가 됐다. 날렵한 어깨선과 길게 떨어지는 팬츠, 최소한의 액세서리는 그녀의 조각 같은 신체를 더 돋보이게 했다. 드레스가 여성성을 강조한다면 슈트는 그녀가 가진 힘과 카리스마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두 가지 상반된 룩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테론 스타일의 핵심이 됐다.
그렇다고 테론이 언제나 미니멀리즘만을 고집해 온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정제된 미니멀리즘 속에 때때로 과감한 반전을 보여준다. 2020년 골든글로브에서는 익숙한 블랙을 벗어나 강렬한 그린 디올 드레스를 선택했고, 오스카에서는 비대칭 네크라인과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슬릿이 돋보이는 블랙 디올 드레스로 절제된 관능미의 정점을 찍었다. 테론은 과거 인터뷰에서 패션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가 좋아하고 스스로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오디세이’의 글로벌 프레스 투어는 테론의 패션 세계가 얼마나 확장됐는지를 보여주는 무대가 됐다. 영화에서 바다의 님프 칼립소를 연기한 그녀는 도시마다 완전히 다른 룩을 선보였다. 파리에서는 톰 포드의 실크 쇼츠와 셔츠, 블랙 블레이저를 매치해 여유로운 테일러링을 보여줬고, 런던에서는 지방시 바이 사라 버튼의 벨벳 드레스와 화이트 글러브로 클래식한 할리우드의 환상을 소환했다.
샤를리즈 테론 스타일은 ‘무엇이 유행하는가’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무엇을 입고 싶은가’로 정의할 수 있다. 그녀의 패션 오디세이는 지금도 무한 항해 중이다. 그리고 지난날보다 앞으로 패션 여정에서 더 많은 모험을 펼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