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음악계에 조용하지만 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글렌 핸사드가 더블린 외곽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별세한 것. 향년 56세. 그는 2007년 저예산 음악영화의 한계를 깨고 국내에서도 20만 관객을 돌파한 ‘원스’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이 작품에서 실제 연인이기도 했던 체코 가수 마르케타 이르글로바와 남녀 주연을 맡으면서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실감 나는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다. 영화에 실린 ‘Falling Slowly’는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세계 음악계가 깊은 애도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국민 로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그는 언제나 훌륭한 음악가이자 좋은 친구 그리고 관대하고 우아한 사람이었다”며 애도했고, Z 세대(1997~ 2010년생) 아이콘 빌리 아일리시와 그의 오빠이자 프로듀서 피니어스도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썼다.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고전도, ‘라라랜드’ 같은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었지만 ‘원스’와 ‘Falling Slowly’가 21세기 음악계에 남긴 자취는 생각보다 깊다. 더블린 시내의 가난한 거리 악사, 체코 불법 이민자 싱글맘이 화음을 맞춰 가면서 흔들리는 세상 속을 걸어가는 스토리는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선율과 어우러지며 화려한 뮤지컬 주인공이 아닌 우리네 필부필부(匹夫匹婦), 그러니까 달콤 쌉싸래한 인생의 시간을 통과하는 생활인의 가슴팍을 삼투압처럼 투과한 것이다.
음악영화 '원스', 제작비의 150배 매출 신화
‘원스’는 저예산 음악영화의 신화다. 11만2000유로(약 1억8000만원)의 제작비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 매출 2300만달러(약 326억원)를 거둬들였다. 예산 대비 150배가 넘는 매출이다. 사운드트랙 음반도 100만 장 가까이 팔려나갔다. 아일랜드 밖에서는 철저히 무명에 가까운 두 아티스트가 이뤄낸 성과로는 입지전적이다. 할리우드 시스템의 철저한 기획과 마케팅에 기대지 않고도 스토리, 영상, 음악이 최상의 시너지를 이룩한 사례다.
최초의 유성영화는 음악영화였다. 지금으로부터 99년 전 세상에 나온 1927년작 ‘재즈 싱어’.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충격파를 던진 작품이다. 영상과 소리, 영상과 노래, 영상과 음악이 만나자 바로 불꽃이 튀었다.
‘재즈 싱어’에서 열연한 앨 졸슨은 이듬해 다른 작품 ‘싱잉 풀’에서 바로 또 역사를 만들어버린다. 이 영화에서 부른 ‘Sonny Boy’란 곡이 장장 12주간 차트 1위를 지키며 1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올린 것이다. 사운드트랙 사상 최초의 밀리언 셀러는 이렇게 일찌감치 등장했다.
그 이후 수많은 음악영화 명작이 스크린을 수놓았다. 단순한 히트를 넘어 대중문화사에 궤적을 남긴 작품이 여럿이다. 1977년 ‘토요일 밤의 열기’는 말 그대로 세계인의 매일 밤을 디스코의 열기로 달궜다. 350만달러(약 49억원)의 제작비로 2억3700만달러(약 3367억원)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올렸다. 사운드트랙 음반과 그 1, 2, 3번 수록곡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Night Fever’가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호주 그룹 비지스를 당대에 ‘비틀스만큼 거대’한 존재로 만들었다. 세계인이 노래에 맞춰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찔렀고, 역시나 하늘을 찌를 듯 영화가 폭발시킨 디스코 열풍은 급기야 불과 1, 2년 만에 거의 지긋지긋해진 이들의 백래시, ‘디스코포비아’ 현상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세계 대중문화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다. 1960~70년대에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이 이룩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장엄한 서사성에 물려버린 이들이 ‘코드 세 개짜리’ 펑크 록을 태동시켰 듯⋯.
톰 크루즈 주연 '탑건', 사운드트랙도 '대박'
사운드트랙의 경제학이 꼭 음악영화, 댄스 영화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1986년 영화 ‘탑건’은 장면 못잖게 선율로 먼저 기억된다. 빌리 아이돌, 마이클 잭슨과 협업한 걸출한 기타리스트 스티브 스티븐스가 연주한 저 유명한 ‘Top Gun Anthem’의 절대적 멜로디 말이다. 1300만달러(약 185억원)로 제작된 이 작품이 거둬들인 박스오피스 매출은 3억6000만달러(약 5124억원). 특히 영화 홍보가 뮤직비디오 채널을 만나 이뤄낸 선례다. 1981년 개국한 MTV가 마이클 잭슨, 마돈나 같은 새로운 시청각 슈퍼스타를 막 키워내던 때다. 영화사 파라마운트픽처스와 음반사 컬럼비아레코드의 ‘쿵짝’은 환상적이었다. ‘Top Gun Anthem’을 비롯해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 베를린의 ‘Take My Breath Away’는 MTV를 강타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없던 시대에 극장에 가 ‘N차 관람’을 하기 어렵던 당대의 젊은이들은 3~4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영화의 감흥을 되새겼다. 사운드트랙은 1200만 장이 팔려나갔다.
몇 년 전, 해럴드 폴터마이어와 함께 ‘탑건’ 사운드트랙의 여러 곡을 작곡한 거장 조르조 모로더를 서울에서 만난 적 있다. 그는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아직 편집도 안 끝난, 촬영장에서 바로 공수한 오토바이 장면을 보여주면서 노래부터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술회했다. 톰 크루즈와 켈리 맥길리스가 석양을 배경으로 오토바이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 뭔가에 홀린 듯 도입부의 여울지는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신의 선물처럼 떠올랐다고, 모로더는 회상했다.
‘보디가드’ ‘타이타닉’ ‘8마일’ ‘겨울왕국’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타 이즈 본’⋯. 음악이 주소재이든 아니든, 실사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스토리, 영상과 결합한 사운드트랙은 말로는 표현 못 할 감동, 상상을 초월한 매출을 가져다준다. 영화는 다시 무성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도 틀을 깨는 실험적이며 압도적인 음악이 거들지 않았다면 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수많은 영화감독이 음악감독과 작곡가와 머리 싸매고 토론하며 세계를 놀라게 할 ‘감정의 트로이 목마’를 축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