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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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서울대 경제학, 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전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2005년 5월, 부동산 투기 조사를 벌이던 국세청은 한 사례 앞에서 두 번 놀랐다. 세무서에 신고한 연 소득이 1200만원인 김 모 씨가 본인과 가족 명의로 강남 개포·대치동 아파트 36채와 상가 4채를 사들인 것이 첫 번째였고, 그 자금 상당 부분이 탈루 소득 같은 검은돈이 아니라 10개 금융기관에서 받은 134억원 상당의 담보대출이라는 것이 두 번째였다. 대출로 취득한 부동산을 다시 담보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신고 소득 기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연간 약 8억원의 이자를 부담하는 구조가 가능했다. 담보만 보고 상환 능력은 묻지 않던 시대의 풍경으로, ‘실록 부동산 정책 40년’에 기록된 일화다.

규제는 이 풍경을 뒤쫓으며 진화했다. 2002년 9월 도입된 담보인정비율(LTV)은 담보 가치만 봤으니, 김씨 같은 차주를 걸러낼 수 없었다. 2005년 6월 말 발표돼 7월부터 시행된 1단계 주택 담보대출 리스크 관리 방안은 동일 차주의 투기지역 아파트 담보대출 건수를 제한했다. 그러자 일부 차주가 소득 없는 배우자와 자녀 명의로 우회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실태 조사 결과, 강남·서초·송파와 분당·용인의 배우자·자녀 명의 우회 대출은 7개 은행에서만 2116건, 1881억원에 달했다. 그해 8월 나온 2단계 방안은 이런 우회 유형의 차주에게 소득으로 상환 능력을 따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40%를 우선 적용했다. 요컨대 DTI는 전면적인 규제가 아니라, 담보 중심 규제의 우회로를 막는 표적 장치로 출발했다. 

규제는 이렇게 우회로를 좇으며 진화했다. 2006년 투기지역 6억원 초과 아파트로 확대됐고, 2018년에는 모든 부채의 원리금을 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도입됐다. 이어 2021~2022년 차주 단위 규제를 거쳐 2025년 7월 3단계 스트레스 DSR에 이르렀다. 

다만 진화가 한 방향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시장이 얼어붙으면 규제는 풀렸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거래가 끊기자,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1월 강남 3구를 제외한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를 모두 해제했다. 침체가 길어지자, 박근혜 정부는 2014년 7월 지역과 주택 유형에 따라 제각각이던 LTV·DTI 상한을 전국 70%·60%로 통일하며 문턱을 낮췄다. 

규제가 가장 느슨해진 2016년을 전후해 돈은 즉각 반응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동산 신용은 2015년 한 해 119조9000억원, 2016년 124조2000억원씩 불어났다. 집값이 다시 급등하자, 2017년부터 규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규제 지역이 부활하고 다주택자 대출이 조여지더니, 2019년 12월에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 구입 대출이 아예 금지됐다. 그리고 금리가 오르고 시장이 식은 2022년, 규제는 다시 풀렸다.

집값이 급등하면 조이고 침체가 오면 푸는 건전성 규제가 사실상 경기 조절 수단을 겸해 온 것이다. 그 왕복으로 가계 신용 잔액은 2002년 465조원에서 올해 2분기 2019조원으로 4.3배가 됐다.

규제가 왕복한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DSR은 애초 모든 가계 대출을 포괄하는 규제가 아니다. 전세 자금 대출, 중도금·이주비 집단 대출, 디딤돌·버팀목 같은 정책 대출은 현행 DSR 체계에서 예외로 취급되거나 별도의 심사를 받는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2025년 6월)에 실린 ‘우리나라 주택 정책금융 현황과 평가’에 따르면, 가계 대출 잔액 가운데 DSR이 적용되는 비중은 45.1%에 그친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시산한 임대 보증금 611조8000억원(2025년 3월 말)은 개인 간 채무여서 아예 공식 가계 부채 통계와 건전성 규율 밖에 있다.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사무소. /사진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사무소. /사진 뉴스1

절반이 넘는 돈이 상환 능력 심사 없이 움직이는 셈인데, 이를 규제의 구멍으로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전세와 선분양이라는 한국 특유의 공급 회로가 바로 이 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돈을 조이면 임차인의 주거 이동과 주택 공급 자금줄이 함께 조여진다. 면제는 예외라기보다 구조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규제 밖의 돈은 규제 안의 돈보다 빠르게 자랐다. 은행권 전세 대출 잔액은 2015년 25조원에서 지난해 167조원으로 6.6배가 됐고,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기금의 개인 주택 관련 정책 대출은 같은 기간 121조원에서 334조원으로 늘었다. 2022년을 분기점으로 전세 대출이 정체된 자리를 정책 대출 급증이 이어받았다. 규제를 조일수록 자금 수요는 심사가 느슨한 경로로 옮겨 갔고, 그 과정에서 신용 위험의 상당 부분을 공적 보증이 떠안았다.

지난 25년간 대출 규제는 시장 국면을 따라 강화와 완화를 반복해 왔다. 침체를 견디면 완화가 뒤따른다는 기대가 시장에 자리 잡으면, 규제는 강도와 무관하게 신뢰를 잃는다. 주요국 제도에서 참고할 지점이 여기 있다. 미국은 도드-프랭크법의 상환 능력 평가 의무로, 영국은 모기지 시장 개혁의 책임 대출 규칙으로 차주 상환 가능성 확인을 대출의 상시 원칙으로 삼는다. 세부적인 수단은 시장 여건에 맞춰 조정하되 원칙 자체는 경기 국면과 무관하게 유지한다. 한국은 반대였다. LTV·DTI·DSR이 건전성 규율인 동시에 경기 조절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상환 능력 심사라는 장기 원칙보다 국면에 따른 대출 한도 조정이 더 강한 정책 신호가 됐다. 

출구는 원칙의 복원이다. 주택 가격 구간별로 대출 한도를 못 박는 정량 규제는 비상수단일 수는 있어도 상시 제도일 수는 없다. DSR 원칙은 경기 국면과 무관하게 지키고, 전세 대출, 정책 대출, 집단 대출은 위험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심사 안으로 들이며, 공급 관련 자금은 공개된 준칙에 따라 별도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전세 보증금과 선분양 대금이 맡아 온 자리를 재정과 장기 기관 자본이 점진적으로 이어받을 때 부채 축소는 긴축이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 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