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를 따라 이사한 사람은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에서 거주자로 인정받는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를 따라 이사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다. 학교 폭력 피해로 전학한 가정은 예외로 구제되지만, 특수학교에 다니는 장애 학생을 위해 이사한 가정은 구제되지 않는다. 미취학 손자녀를 돌보려 자식 집 근처로 옮겨 간 노부부도 아예 논의 대상에도 없었다. 이것이 이번 세제개편안이 내놓은 ‘비거주 1주택예외 인정’의 실제 모습이다.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의 골자는 1주택자 종부세 기본 공제를 실거주 시 14억원, 비거주 시 9억원으로 차등 적용하는 것이었다. 불가피한 사유로 집을 비운 경우 최장 3년까지 거주로 인정해 준다는 단서를 뒀으나, 그 ‘불가피한 사유’의 목록을 만드는 순간 위와 같이 수많은 예외 상황이 쏟아지며 원성이 자자하다. 입법 예고 기간에 접수된 의견만 1만여 건, 상당수가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사실상 증세를 겨냥한 불만이었다. 여당은 8월 2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아예 “1주택자의 거주·비거주 구분을 없애자”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유예기간을 3년에서 최소 1년 이상 늘리고, 직장 발령, 자녀 진학, 돌봄, 양육, 부모 부양, 질병 치료까지 예외 사유를 넓히며, 비거주자 기본 공제도 9억원에서 12억원 수준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예외를 넓히면 문제가 풀리는가. 예외를 하나 추가할 때마다 그 예외의 경계선 바로 바깥의 사람이 새로 생긴다. 중학교를 넣으면 초등학교가 억울하고, 부모 봉양을 넣으면 형제자매 간병이 억울하다. 3년을 4년으로 늘리면 5년째 되는 해에 발령이 난 사람은 어떤가. 예외 목록은 늘어나는데 억울한 사람은 줄지 않고 전선만 넓어질 게 확실하다. 대체 이 미로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999원짜리 상품과 49층짜리 건물
답은 누진세 구조다. 최근 발표된 보유세의 세율 체계는 과세표준 3억원 이하 0.5%에서 시작해 3억~6억원 0.7%, 6억~12억원 1.3%, 12억~25억원 2%, 25억~50억원 3%, 50억~94억원 4%, 94억원 초과 5%까지 일곱 단계로 잘게 쪼개져 있다. 개편안은 여기에 초고가 구간을 더 얹어 최고세율을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구간을 나누는 순간, 그 구간의 경계선에 따라 경제주체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1000원짜리 상품이 990원에 팔리는 이유는 네 자릿수 가격이 주는 심리적 압박 때문이다. 50층으로 지을 수 있는 건물이 천편일률적으로 49층으로 지어지는 이유도 같다. 50층부터 적용되는 화재 안전 규정이라는 문턱이 있기 때문이다. 세법의 구간 경계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25억원과 50억원이라는 선이 그어지는 순간, 24억9000만원짜리 아파트와 25억1000만원짜리 아파트 사이에는 2000만원의 가치 차이에 대한 과세만 있어야 마땅하지만, 누진세율하에선 그렇지 않다. 차라리 적발을 무릅쓰고 다운계약을 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다는 기분은 우연일까.
거주·비거주 차등도 결국 같은 절벽이다. 공제액을 차별화해 갈라놓는 순간, 위장 전입을 하고, 서류를 만들고, 예외 인정을 다투는 행정 비용이 발생한다. 국세청은 누가 진짜로 그 집에 살았는지 판정하는 포청천이 돼야 하고, 납세자는 정말 추후 매각될 수도 있는 집을 위해 자기 인생을 다 사진도 찍고 기록하면서 삶의 궤적을 소명해야 한다.
지방 고사시키는 합산의 저주
애초에 대통령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공시가격 30억원짜리 단일 주택 보유자가 10억원짜리 세 채 보유자보다 세금을 덜 낸다”는 형평성 문제였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 형평성 문제는 누진세가 만들어 낸 산물이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 세율이 하나였다면 30억원 한 채와 10억원 세 채의 세 부담은 애초에 같았을 것이다. 누진세가 만든 문제를, 누진세 적용 범위를 넓혀 해결하겠다는 것이 지금의 ‘주택 수가 아닌 합산 공시가격 기준 누진세율 일원화’ 방안이다.
문제는 이 처방이 병을 부른다는 데 있다. 수도권에 한 채, 지방에 한 채를 가진 사람을 상상해 보자. 두 집의 공시가격이 합산되면서 과세 구간이 한 단계 올라갔다고 가정할 경우, 무엇이 먼저 정리될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가격 상승 기대가 낮고 유동성도 떨어지는 지방 주택이다. ‘똘똘한 한 채’를 없애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똘똘한 한 채를 향한 질주를 가속하고, 지방 부동산은 고사한다. 정부의 지방 세컨드 홈 특례고 뭐고, 두고 보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세금(A+B)=세금(A)+세금(B)
해법은 의외로 단순한 수식에 있다. 세율이 하나인 비례세라면 세금(A+B)=세금(A)+세금(B)가 언제나 성립한다. 따로 계산하든 합쳐서 계산하든 세액이 같아지므로, ‘합산이 부당하다’는 논쟁이 원천적으로 소멸한다. 30억원 한 채와 10억원 세 채의 형평 문제도, 수도권과 지방 두 채를 합산할 때의 세 부담 급증도, 구간 경계로의 가격 수렴도 모두 사라진다. 지금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형평성 논란의 거의 전부는 합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세율이 구간마다 튀는 누진 구조에서 파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단일 세율로 가지 않는 이유도 물론 있다. 자산 집중도가 높을수록 더 세게 과세해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해지자. 이는 시장 정상화보다 고가 주택에 대한 징벌에 더 충실한 목적이다.자산 가액이 이미 높아 같은 세율로도 절대 세액이 훨씬 큰데, 요율까지 굳이 차등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높은 가격대는 반드시 높은 세율로 응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
표 떨어지는 이야기를 더 하자면
개편안이 진정 무주택 청년층을 위한 것이라면, 낮은 과세 구간에도 제대로 된 세율을 물려야 하는 것 아닌가. 보유세가 실질적으로 부과되면 매매가는 하향 안정화된다.
세율이 높아도 매매가가 내려가면 납세자가 부담하는 절대 금액은 오히려 줄어든다. 그렇게 낮아진 가격대의 아파트에 청년과 서민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집을 투자재가 아니라 주거재로 보게 하겠다는 정부의 기조와 가장 정합하는 처방이 바로 이것이다. 고가 주택에만 징벌적 세율을 얹고 중저가 구간은 사실상 방치하는 구조는 역설적으로 ‘중저가 주택의 투기 자산화’를 방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공제 없이 선진국 수준인 1%의 보유세만 일괄 적용해도, 고가 주택 보유자는 매매가를 내릴 것이다. 그리고 웬만한 아파트에는 서민이 충분히 접근할 만한 시장가가 형성될 것이다. 예외 목록을 몇 줄 더 늘리고 공제액을 몇 억원 조정하는 것으로는 어떤 정부도 이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미로를 헤매는 대신 이제는 벽을 허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