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인공지능(AI)이 미래 인류사를 어떻게 바꿀지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신약 개발과 생산성 혁신을 앞세워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규모 일자리 소멸과 자율 무기 확산을 경고한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는 드론이 사상자의 70~80%를 발생시키고 있고, 이란 전쟁에서도 호르무즈해협 기뢰 제거와 잠수함 추적에 AI 기반 시스템이 투입되고 있다.

필자는 이 논쟁을 개별 기술의 손익 계산이 아니라 역사의 장기 흐름 위에 올려놓는다. 인류의 궤적을 바꿔 온 힘은 질병과 전쟁 그리고 경제적 격변 세 가지였는데 AI가 이 세 영역 모두에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2018년 보고서에서 AI가 2030년까지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13조달러(약 1경7972조원)를 더할 수 있다고 추정했고, 2023년 보고서에서는 생성 AI(Generative AI)만으로 연간 2조6000억~4조4000억달러(약 3594조~6083조원)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 비노드 코슬라는 2030년대 초 AI가 기존 일자리의 80%를 수행할 수 있게 되리라고 전망한다. 필자는 “AI 슈퍼사이클은 아직 초기 단계”라면서도 “이 기술이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까지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담비사 모요 국제경제학자 - 미국 아메리칸대 경영학 석사(MBA),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세인트 앤서니 칼리지 경제학 박사, ‘혼돈의 가장자리’ 저자
담비사 모요 국제경제학자 - 미국 아메리칸대 경영학 석사(MBA),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 세인트 앤서니 칼리지 경제학 박사, ‘혼돈의 가장자리’ 저자

긴 역사의 흐름을 보면 인류를 가장 크게 바꿔 놓은 힘은 세 가지였다. 질병과 전쟁 그리고 경제적 격변이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그러했다. AI는 비용을 낮추고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 공급과 생산성을 끌어올림으로써 이 세 가지 모두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는 인구 증가의 궤적을 뒤바꾼 역병과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가득하다. 흑사병만 해도 1346년부터 1353년까지 유럽과 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7500만~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기술 발전과 의학 혁신이 기대수명을 늘리고 영아 사망률을 낮춘 덕분에 세계 인구는 1804년 10억 명에서 1927년 20억 명을 거쳐 오늘날 80억 명을 넘어섰다. 동시에 효과적인 피임법의 등장은 인구 증가 속도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

AI는 이 진보를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예방적 진단과 더 빠른 신약 개발, 더 개인화된 의료를 통해 삶의 질과 수명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암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퇴행성 뇌 질환 등 비감염성 질환이 초래하는 인적·경제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바이러스가 어디로 퍼질지, 변이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예측해 감염병 발생에 더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실제로 AI는 이미 ① 항생제 내성(AMR)에 맞서는 데 활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AI가 의료비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의료비는 그동안 기술 진보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영역이었다. 미국기업연구소(AEI)가 2022년 내놓은 도표를 보면, 미국의 병원 서비스 비용은 지난 25년간 다른 모든 재화·서비스보다 더 많이 올랐다.

인류사의 물길을 거듭 바꿔 온 두 번째 힘은 전쟁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7000만~8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3000만 명 가까이가 소련에서 나왔다. 희생자 상당수가 노동 연령대의 젊은 남성이었던 탓에 이 손실은 소련에 두고두고 인구·경제적 후유증을 남겼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무력 충돌은 생산 능력을 파괴하고 일상을 무너뜨리며, 경제 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가로막는다.

기술 발전은 물론 전쟁을 훨씬 더 파괴적으로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대량 생산된 총과 전차, 항공기가 동원된 최초의 대규모 기계화 전쟁이었다.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은 거대한 군수산업 구축을 촉발해 미국 경제를 대공황에서 끌어냈고, 전후 수십 년간의 성장을 떠받쳤다.

이제 AI는 기술이 주도하는 새로운 전쟁의 시대를 열고 있다. 각국이 드론과 ② 자율 무기(autonomous weapons)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드론이 전장 사상자의 70~80%를 만들어내고 있다. AI 기반 시스템은 이란 전쟁에서도 호르무즈해협의 기뢰 제거를 앞당기는 일부터 잠수함 추적과 정보 수집까지 갈수록 큰 몫을 맡고 있다.

역사를 움직인 세 번째 동력은 경제적 격변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경제를 초토화한 초인플레이션은 나치즘이 부상할 무대를 깔아줬다. 마찬가지로 1929년 주식시장 붕괴는 1930년대의 은행 공황, 더스트볼(대규모 모래 폭풍 사태)과 맞물리며 수백만 명의 미국인을 빈곤으로 몰아넣었고, 미국 곳곳에는 집을 잃은 사람의 판자촌인  ③ 후버빌(Hooverville)이 들어섰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그러나 경제적 전환은 혼란과 절망을 낳는 동시에 막대한 이득을 가져오기도 한다.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생활수준을 높였으며, 사회구조를 재편하고 인간 발전을 새로운 높이로 밀어 올렸다.

이 변화의 상당 부분은 급속한 산업화와 기계화의 결과였다. 노동자가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다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20세기 내내 새롭게 정의됐다. 미국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고용 비중은 20세기 초 40% 이상에서 오늘날 2% 미만으로 떨어졌다.

초기 연구는 AI가 특히 지식 기반 산업에서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본다. 다만 경제성장에 직접 기여한다는 증거는 아직 확정적이지 않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는 2018년 보고서에서 AI가 2030년까지 세계 GDP에 약 13조달러를 더할 수 있다고 추정했고, 2023년 보고서에서는 생성 AI가 연간 2조6000억~4조4000억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AI의 파괴적 잠재력도 그에 못지않다. 최근 몇 년 사이 AI가 몰고 올 ‘일자리 대재앙(jobpocalypse)’에 대한 경고가 부쩍 흔해졌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 비노드 코슬라는 2030년대 초에는 AI가 기존 일자리의 80%를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전통적인 고용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암울한 전망이 맞아떨어지든 아니든, 광범위한 일자리 대체는 경제와 사회의 구조를 뒤흔들 수 있다. 소득을 보전해 달라는 압박이 커지면서 국가 역할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AI 슈퍼사이클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럼에도 지금 시점에서 분명해 보이는 것이 있다. 이 기술은 우리가 질병과 싸우는 방식, 전쟁을 치르는 방식, 성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며, 종국에는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까지 바꿔놓을 것이다. 

Tip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 같은 미생물이 기존항생제·항균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다.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쓰거나 처방 기간을 채우지 않고 중단하는 일이 반복되면 살아남은 내성균이 퍼져 나간다. 이렇게 되면 폐렴이나 결핵, 수술 후 감염처럼 지금은 관리 가능한 질환도 치료가 어려워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을 인류 보건을 위협하는 최상위 과제 중 하나로 꼽아왔다. 문제는 신규 항생제 개발이 오래 걸리고 수익성이 낮아 제약사가 투자를 꺼린다는 점이다. AI가 방대한 화합물 후보군에서 항균 효과를 낼 물질을 빠르게 걸러내고, 내성이 어떤 경로로 생겨날지 예측하는 데 쓰이면서 주목받고 있다.

사람이 매 순간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표적을 탐지하고 추적하며, 경우에 따라 공격까지 수행하는 무기 체계를 말한다. 원격조종 드론이 조종사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자율 무기는 센서와 알고리즘이 판단 상당 부분을 대신한다. 정찰 드론, 자폭 드론, 무인 수상정, 자동 방공 시스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자율성 수준이 높아질수록 비용과 인명 손실은 줄지만, 살상 결정을 어디까지 기계에 맡길 수 있느냐는 윤리적 논란이 뒤따른다. 유엔에서는 완전자율살상무기(LAWS)를 규제하자는 논의가 이어져 왔으나 주요 군사 강국의 견해차로 구속력 있는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대공황기 미국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이 판자와 골판지, 폐자재로 지은 무허가 판자촌을 가리킨다. 당시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의 이름을 붙인 조롱 섞인 표현으로, 경제 붕괴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대중의 원망이 담겼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미국 전역 도시 외곽과 강변, 철도 인근에 수백 곳이 들어섰다. 후버빌은 대량 실업이 어떻게 정치적 정서를 바꿔놓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았다. 

담비사 모요 국제경제학자

정리=이신혜 기자

정리=고은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