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마케팅 임원을 하다가 퇴임한 뒤 기업공개(IPO)를 앞둔 회사로 옮겨 승승장구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이전 회사와 지금 회사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가 답했다. “이전 회사에서 마케팅 책임을 맡은 사업 영역은 하강하는 영역이었다. 이미 다른 서비스 방식과 기술이 기존 시장을 파괴하며 시장을 점점 키우고 있는 영역이었다. 턴어라운드를 시키려고 정말 애를 썼다. 그러나 트렌드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직을 설득하기도 어려웠고 변화를 만들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상승하는 영역이다. 사실 가만히 있어도 매출이 늘어난다. 와서 구조를 잡고 방향을 조금 명확하게 했더니 성장이 더 빨라졌다. 이전보다 에너지를 더 쓴 것도 아닌데 성과는 훨씬 크다.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가가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세상과 사업은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큰 흐름이 있다. 경제에도 사이클이 있고, 산업에도 성장과 쇠퇴가 있다. 기술과 인구, 소비자의 행동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미래가 모두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당한 확률로 올 미래는 있다. 우리는 이것을 트렌드라고 부른다.
주식시장이 상승장일 때는 어떤 종목을 사도 대개 성공한다. 하락장일 때는 어떤 종목을 사도 대개 실패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상승하는 시장에서는 웬만한 회사는 성장한다. 반대로 시장 전체가 줄어드는 곳에서는 훌륭한 경영자와 뛰어난 직원도 고전한다. 열심히 뛰는데도 제자리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자주 자기 실력과 혼동한다. 운 좋게 상승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업가는 시장의 성장을 자기 능력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더 큰 돈을 베팅한다. 그러나 다음 사업이 하강 에스컬레이터에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반대로 하강하는 산업이나 영역에서 죽도록 노력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서 있는 바닥 자체가 내려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상승 에스컬레이터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 내 노력과 무관하게 벌어지는 수치를 보라. 가만히 있어도 매출이나 문의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내 실력이 아니라 흐름이 밀어주고 있다는 신호다. 둘째, 인구·기술·규제 같은 구조적 변화의 방향을 확인하라. 사람의 생활 방식이 어디로 옮겨가는지, 기술이 무엇을 대체하는지를 보면 흐름의 방향이 보인다. 셋째, 돈과 사람이 몰려오고 있는가? 뛰어난 인재와 자본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곳에는 대개 이유가 있다. 넷째, 평범한 플레이어조차 성장하고 있는가? 몇몇 뛰어난 기업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평균적인 기업도 성장한다면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애를 써도 안 되는지, 애쓰지 않아도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몇 년째 죽을힘을 다해도 정체돼 있다면 그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위치의 문제일 수 있다.
물론 상승 산업에 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위에서 얼마나 빠르고 제대로 움직이는가는 자기 몫이다. 반대로 하강 산업이라고 무조건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쇠퇴하는 산업에서도 새롭게 성장하는 영역은 언제나 생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업을 상승하는 흐름과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노력만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위치와 방향도 함께 봐야 한다.
사업가라면 묻자. 자기 사업이 지금 어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업을 어떤 상승 흐름과 연결할 수 있을 것인지를 말이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자기 산업과 맡은 일이 계속 하강하는 방향이라면 더 열심히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자기 경험과 강점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것을 성장하는 산업과 기술에 연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열심히 뛰기 전에 먼저 보자.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뛰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