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앙 베르티에 ‘보이지 않는 여행’ 표지. /사진 김진영
줄리앙 베르티에 ‘보이지 않는 여행’ 표지. /사진 김진영

우리는 사진을 볼 때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찾는다. 사람의 얼굴이나 특별한 사건, 낯선 사물처럼 시선을 붙잡는 무언가를 중심으로 사진을 이해하려 한다. 그래서 사진 속에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쉽게 배경이 되고, 때로는 보지 못한 채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사진을 바라볼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작은 흔적을 살피고, 사진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한 장의 사진에 이전보다 오래 머무르게 된다.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 주변의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프랑스 아티스트 줄리앙 베르티에(Julien Berthier)의 ‘보이지 않는 여행(The Invisi-ble Journey)’은 바로 이런 ‘찾아보는 시선’ 에 관한 사진책이다.

이야기는 2021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칼랑크 국립공원 가장자리에 있는 한 작은 어촌 마을 레구드(Les Goudes)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초청받아, 그곳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바다와 거대한 석회암 절벽이 펼쳐진 풍경 앞에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듯한 풍경에 새로운 작품을 더하면서도,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것처럼 할 수는 없을까?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그가 생각해 낸 것은 ‘바위 하나를 더하는 일’이었다. 베르티에는 오래된 작은 어선을 가져와 그 위에 주변의 석회암과 닮게 조각한 암석 형태의 구조물을 얹었다. 레진으로 제작된 선체 같은 바위는 실제 칼랑크의 거친 바위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바다에 띄워 놓으면 물 위에 솟아 있는 작은 바위나 섬처럼 보이도록 말이다. 바위의 꼭대기에 있는 뚜껑을 열면 그 안에는 배를 조종할 수 있는 장치가 숨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 배를 조종하면 가만히 있던 바위는 모터 소리를 내며 바다 위를 움직였다. 베르티에는 이 배에 ‘L’Invisible’, 즉 ‘보이지 않는 것’이란 이름을 붙였다.

‘보이지 않는 여행’에서 베르티에는 이 바위 배를 마르세유의 바다가 아닌 전혀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보낸다. 그 방법은 콜라주다. 베르티에는 우선 세계 여러 지역의 풍경이 담긴 오래된 엽서를 모았다. 그리고 그 위에 배의 모습을 하나씩 등장시킨다. 이때 포토샵 같은 디지털 편집 방식 대신, 그는 바위 배 사진을 직접 손으로 오려 붙이고, 펠트펜과 수채 물감으로 주변을 조금씩 다듬는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붙인 종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얼핏 보아서는 원래 그 풍경 속에 있었던 바위처럼 자연스럽다.

구석구석 살펴보게 되는 ‘보이지 않는 여행’의 역설

바위 배의 비밀을 모르는 독자에게 이 책은 그저 오래된 여행 엽서를 모은 책으로 보일 것이다. 베르티에가 바위 배를 감쪽같이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이미지마다 바위 배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독자의 경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책장을 넘기면서 독자는 매번 같은 일을 하게 되는데, 바로 바위 배를 찾는 것이다. 어떤 사진에서는 금세 눈에 들어오지만, 어떤 사진에서는 한참을 들여다봐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바다 위의 수많은 바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풍경 속 작은 점처럼 자리하기도 한다. 새로운 사진을 마주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번에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 작은 숨은그림찾기 같은 장치가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 놓는다. 바위 배를 찾기 위해 수평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고, 해안의 바위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멀리 떠 있는 배와 건물,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평소라면 몇 초 만에 넘겼을 오래된 풍경 사진 앞에서 더 오래 머물며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아티스트 줄리앙 베르티에는 세계 여러 지역의 풍경을 담은 오래된 엽서와 배 사진을 직접 손으로 오려 붙이고, 펠트펜과 수채 물감으로 주변을 조금씩 다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책 ‘보이지 않는 여행’을 제작했다. /사진 김진영
프랑스 아티스트 줄리앙 베르티에는 세계 여러 지역의 풍경을 담은 오래된 엽서와 배 사진을 직접 손으로 오려 붙이고, 펠트펜과 수채 물감으로 주변을 조금씩 다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책 ‘보이지 않는 여행’을 제작했다. /사진 김진영

이미지 크게 보기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여행’의 재미있는 역설이 생긴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바위 배지만, 정작 그것을 찾는 동안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은 바위 배가 아닌 것이다. 바위 배는 이 책의 주인공이면서도 사진에서는 거의 언제나 작은 존재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만약 바위 배가 모든 사진에서 한눈에 발견될 정도로 눈에 띄었다면 독자는 바위 배를 확인한 뒤 곧바로 다음 장으로 빠르게 넘어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위 배는 대체로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음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찬찬히 보게 하는 셈이다. 

이 작업에 오래된 엽서라는 매체를 사용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엽서는 본래 여행지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관광객은 이런 엽서를 여행의 추억으로 소장하거나 아니면 글을 적어 소중한 누군가에게 보낸다. 베르티에는 그런 타인의 여행 기록에 자기 바위 배를 슬쩍 끼워 넣는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던 장소와 시대가 바위 배를 통해 이어지고, 존재한 적 없는 새로운 여행이 만들어진다.

마르세유 앞바다에 떠 있던 바위 배는 이 책에서 자기가 가본 적 없는 세계 곳곳의 풍경에 태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었던 여행이지만, 오래된 엽서에서는 제법 그럴듯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바위 모습을 세계 곳곳의 사진에 숨 겨 놓은 베르티에의 기획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눈에 실제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바위 배는 분명 사진에 있지만, 주변 풍경과 너무 자연스럽게 섞여 있기에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존재를 알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가 관광지의 풍경을 담은 엽서 한 장을 이토록 오랫동안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바위 배를 찾는 동안 그저 익숙한 관광지 풍경으로 지나쳤을 바다와 해안, 건물과 사람까지 살펴보게 된다. 

결국 베르티에가 세계 곳곳에 숨겨 놓은 ‘보이지 않는 것(바위 배의 이름이기도 하다)’은 자기를 발견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동안 눈앞에 있어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