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중·혐중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이를 역사 왜곡이나 문화 갈등 등 감정적 요인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절반만 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기회 소외’ 와 ‘좋은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불안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가 청년이던 시절 중국은 한국 경제의 거대한 기회의 장이었다. 중국의 고도성장과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맞물리면서 자동차·화학·정유 등 이른바 ‘차화정’ 산업이 성장했고, 양질의 일자리도 만들어졌다. 당시 중국은 한국산 제품의 거대한 ‘소비 시장’이었다. 중국 진출 기업은 현지에서 일자리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더 이상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석유화학·조선·철강은 물론 전기차·배터리·디스플레이·전자 등 거의 모든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높이며 한국 기업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한때 대학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렸던 여천NCC가 경영난과 구조조정에 직면한 배경에도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과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자리한다. 중국의 산업 굴기(崛起·우뚝 일어섬)가 우리의 제조업 경쟁력과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청년의 중국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한국 제품을 사주는 나라’에서 ‘우리 기업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국가’로 중국 모습이 바뀌었다. 여기에 역사·문화 갈등,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등을 거치며 쌓인 반감까지 더해졌다.
대(對)중국 무역 흑자 뒤에 숨은 세 가지 착시
최근 대중 수출이 늘고 무역수지가 다시 흑자로 돌아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한중 경제 관계의 전면적인 회복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착시가 있다.
첫째는 수출 착시다. 인공지능(AI) 열풍과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수출이 크게 늘고 있지만, 반도체를 걷어내고 우리 제조업 전체 경쟁력이 회복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산업 고도화로 자동차·화학· 기계·전자 등 전통적인 주력 산업은 오히려 더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둘째는 고용 착시다. 반도체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만, 대표적인 자본집약적산업이다. 수출과 기업 실적이 좋아진다고 해서 청년이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늘어나는 구조는 아니다. 반도체 수출 호황과 청년 고용 사이에는 간극이 크다.
셋째는 관계 착시다. 대중 수출이 다시 늘었다고 해서 중국이 한국산 제품 전반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한국산 반도체 수요 증가와 중국 소비자의 한국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 회복은 별개 문제다.
먼저 대중 경제 전략의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 ‘중국에 무엇을 만들어 팔 것인가’에서 ‘중국 소비자 지갑에서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로 말이다.
생산 기지에서 소비 시장으로
중국은 이제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니라 세계 최대 소비 시장(구매력 평가 기준)이다. 소비자 관심도 가격과 기능만을 따지던 단계에서 자기만족·재미·건강·안전·경험 같은 가치로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서 한국 기업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한중 간 문화적 차이와 한국만의 강점을 결합해 중국 소비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쾌락안신(快·樂·安·信)’ 전략을 제안하고 싶다.
快는 트렌디함이다. 한국 젊은 세대는새로운 유행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자기 방식으로 만들어낸다. 패션과 화장품에서 중국 제품 품질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지만, ‘지금 무엇이 가장 힙한가’를 찾아내는 감각과 속도는 여전히 한국의 강점이다. 중국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한국 패션과 뷰티에 관심을 두는 것도 제품 품질뿐 아니라 한국만의 감성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樂은 재미다. 한한령으로 한국 콘텐츠유통이 제한됐을 때도 중국 젊은이는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의 소식을 찾아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K-fun을 새로운 수출 핫아이템으로 개발해야 한다. 강렬한 색깔, 귀여운 캐릭터, 사진 찍기 좋은 공간처럼 즉각적인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상품과 공간을 소비하는 모델로 중국 도파민 경제의 성공 사례로 부상한 위글위글이 좋은 사례다.
安은 편안함과 서비스다. 중국의 ‘차부둬(差不多)’ 문화가 대륙의 여유라는 장점도 있지만, 마지막 1%의 세심함은 한국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작은 불편을 줄이고 시간을 아껴주며 사용하기 편하고 사후 관리까지 챙기는 하이터치 서비스가 그것이다. 고령화가 빨라질수록 안심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서비스 가치는 커질 것이다.
信은 신뢰다. 중국 소비자가 한국 식품이나 생활용품을 선택하는 이유로 ‘믿을 수 있어서’를 꼽는 경우가 많다. 안전한 먹거리라는 이미지를 식품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화장품, 건강관리, 의료 서비스 등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의대 쏠림 현상'을 산업 자산으로
쾌락안신 전략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분야가 의료·바이오·헬스케어 같은 고급 서비스다. 중국의 고령화와 소득 증가로 건강검진·재활·치과·미용의료·항노화·건강관리 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의료 기술과 병원 운영 노하우, 미용의료, 의료 기기, 디지털 헬스케어를 중국의 새로운 소비 수요와 연결한다면, 상당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의대 쏠림’ 현상도 새로운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의대에 집중된 우수 인재와 의료 역량을 산업 자산으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사가 대거 중국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의료 기술과 병원 운영, 건강검진, 미용의료, 의료 기기, 디지털 헬스케어 등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묶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자는 것이다. 중국 환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의료 관광을 넘어 현지 프리미엄 헬스케어 시장을 공략한다면 의료뿐 아니라 병원 경영, 의료 관련 정보기술(IT), 해외 마케팅, 바이오 연구개발(R&D)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일자리 협력 돌파구로
이 같은 전략을 기업의 노력만으로 실현할 수는 없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을 통해 제조업 중심의 기존 협력을 넘어 서비스와 투자 분야의 시장 개방을 확대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의료·문화·관광·교육 등 서비스 시장을 한국 기업에 개방한다면, 청년층의 반중 감정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우수한 소비재와 서비스가 중국인의 소비를 자극한다면, 내수 확대를 경제 발전의 새로운 축으로 삼으려는 중국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반중·혐중 정서는 구호나 배척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청년에게 중국을 ‘내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자’가 아니라 ‘내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으로 다시 보여줘야 한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착시에 안주하지 말고, 소비재와 의료·바이오·헬스케어 등 고급 서비스를 새로운 대중 수출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
중국과 경쟁하는 산업에서는 경쟁력을 지키고, 중국의 거대한 소비 시장에는 우리 강점을 팔자.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한중 경제 관계의 체질을 바꾸는 것. 이것이 경제를 통해 ‘반중의 장벽’을 낮추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로드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