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이 호흡기 질환은 물론 자가면역질환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 결과 초미세먼지가 증가하면 관절염 증상이 악화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류마티스(류머티즘) 관절염은 면역세포가 관절의 정상 세포를 공격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의료계는 앞으로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대기 질이 나쁜 곳을 피하도록 하는 예방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은봉 서울대학교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연구진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을수록 류마티스 관절염이 갑자기 악화하거나 재발할 위험이 높아졌다”고 8월 6일 유럽류마티스학회연합(EULAR)이 발간하는 ‘류마티스 질환 연보’에 발표했다. 2021~2024년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1070명에 대한 외래 진료 1만2583회를 추적·조사한 결과다.
대기오염 물질 6가지 중 초미세먼지만 연관
연구진은 관절 통증과 부종, 혈액 염증 수치 등을 환자 거주 지역과 방문 시점의 대기오염 물질 농도와 연관해 분석했다. 대기오염 물질은 이산화황(SO₂), 이산화질소(NO₂), 오존(O₃), 일산화탄소(CO), 지름 1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이하의 미세먼지(PM10), 2.5㎛ 이하의 초미세먼지(PM2.5) 등 여섯 가지였다.
분석 결과, 대기오염 물질 여섯 가지 가운데 PM2.5가 류마티스 관절염의 여러 활성도 지표와 가장 일관되게 연관됐다. PM2.5 노출이 높을수록 관절염의 급성 발작 위험이 증가했다. 연구 기간 월평균 PM2.5 농도는 1㎥당 18㎍(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이었다. PM2.5가 여기서 6㎍ 늘면 류마티스 관절염이 악화할 확률이 11.3%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은봉 교수는 “관절염 악화 위험을 나타내는 ‘승산비(odds ratio)’가 평소 1.0이었다면 1.11이 된다는 의미로 그 자체가 큰 변화를 유발한다고는 하기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노출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초미세먼지가 적혈구보다 작기 때문에 폐로 들어갔다가 혈류를 따라 멀리 있는 장기까지 순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불안정한 산소 부산물인 활성산소가 많이 생길 수 있다. 활성산소는 세포를 손상시켜 노화와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이다. 연구진은 활성산소가 염증 신호 물질을 증가시켜 관절의 염증을 유발한다고 추정했다.
관절염 환자 대상 대규모 연구는 처음
이번 연구 결과는 류마티스 관절염 관리에 대기오염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프리 스파크스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대기오염 물질과 류마티스 관절염의 질병 활성도를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견고한 연구 방법을 통해 연관성을 밝힌 연구”라고 평가했다.
기존 연구는 대기오염이 건강한 사람에게 류마티스 관절염 발생 위험을 높이는지에 집중됐다. 폐로 흡인된 초미세먼지가 과도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지 추적하는 식이다. 이번처럼 이미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린 환자에게 초미세먼지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피지 않았다. 이탈리아와 이란에서 그런 연구가 진행됐지만, 표본이 적고 어떤 오염 물질이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못했다.
‘류마티스 질환 연보’ 편집장인 요제프 스몰렌 오스트리아 빈의대 교수는 “이번 결과는 특정 유전적, 환경적 조건에 있는 한국인 집단에 국한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돌보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 환경은 통증과 염증에 필수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다른 자가면역질환도 초미세먼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스파크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초미세먼지와 같이 호흡기로 흡입된 물질이 다른 자가면역질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공중보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대기오염이 심해지면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외부 활동을 자제하도록 권고하는 경보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기대 수명 줄이고 정자 생산도 감소
초미세먼지는 이미 흡연이나 교통사고, 에이즈보다 더 건강에 위협을 주는 요인으로 밝혀졌다. 2025년 미국 시카고대 에너지정책연구소(EPIC)는 초미세먼지로 인해 전 세계 기대 수명이 2년 가까이 줄었다고 발표했다.
EPIC 보고서는 2023년 전 세계에서 초미세먼지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5㎍/㎥)의 약 다섯 배에 달했으며, WHO 기준을 달성한다면 인류 전체의 기대 수명이 평균 1.86년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의 대기오염이 수명을 그만큼 줄였다는 의미다.
대기오염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다. WHO는 전 세계 인구의 90%가 대기오염의 피해를 보며 매년 700만 명이 사망에 이른다고 밝혔다. 2025년 EPIC 보고서에서도 초미세먼지는 흡연(수명 1.69년 단축)과 아동·산모 영양실조(1.36년), 교통사고(4.8개월), 에이즈(3.4개월) 등을 제치고 건강에 가장 해로운 위험 요인으로 조사됐다.
대기오염의 피해는 한 세대에 그치지 않는다. 미래까지 위협한다. 덴마크 암연구소의 메테 쇠렌센 교수 연구진은 2024년 영국의사협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에 초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되면 남성의 불임 위험이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덴마크 남성 52만6056명을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조사한 결과, 5년 동안 2.9㎍/㎥ 이상 초미세먼지에 노출된 남성은 불임 위험이 24% 높아졌다고 밝혔다. 그전까지 초미세먼지와 정자 품질 간 연관성이 밝혀졌지만, 불임과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앞서 2022년 중국 푸단대 연구진은 남성 3만4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초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되면 정자 운동 능력이 떨어졌다고 ‘미국의사협회저널(JAMA) 네트워크 오픈’에 발표했다. 오염이 적은 곳에서는 정자 운동성이 평균 60%였지만, 심한 곳에서는 52%로 떨어졌다. 전 세계 남성의 정자 운동성은 59~61%다.
과학자들은 초미세먼지가 정자 생산과 관련된 유전자 기능을 떨어뜨린다고 본다. 브라질 상파울루대 연구진은 2019년 생쥐 실험을 통해 초미세먼지가 정자의 질과 양을 모두 저하한다고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초미세먼지에 노출되면 정자 생산과 관련된 유전자는 그대로지만 메틸기(CH₃)가 달라붙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형태가 바뀐다고 본다. 초미세먼지가 정자 유전자의 스위치를 내리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