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와인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선조가 겪어야 했던 머나먼 여정이 와인 속 어딘가에 깊은 맛으로 스며 있다. 보르도에는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아일랜드인과 연관된 샤토가 있다. 라벨에 적힌 낯선 이름이 300년 전 고향을 등져야 했던 사람의 흔적이다. 지금은 우아한 프랑스어 발음으로 읽히지만, 그 이름을 처음 붙인 이들은 게일어를 썼다.
1688년 영국에서는 가톨릭 왕 제임스 2세가 폐위되고 개신교도 사위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오르는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제임스는 가톨릭 인구가 많은 아일랜드로 넘어와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했고, 그를 따르던 가톨릭교도는 토지 소유와 공직 진출은 물론 자녀 교육까지 불이익을 받았다. 개신교도라 해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자국 산업과 경쟁할 수 없도록 영국이 아일랜드에 경제적으로도 압박을 가하자, 상인이나 사업가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유럽 본토로 향했다.
이 중 일부는 유럽 최대 와인 무역항인 프랑스 보르도에 자리 잡았다. 기존에 관리하던 거래망을 이용해 중개상이나 선적 업자로 자리 잡을 수 있어서였다. 성실하게 일해 돈을 모은 그들은 포도밭을 사고 와이너리를 지어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 중 우리에게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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