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소리를 이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자유롭게 만들어내고 다룰 수 있다. 컴퓨터로 새로운 음색을 만들고, 소리를 겹치고, 저장하고, 복제하고, 반복할 수 있다. 최근에는 휴대전화에 몇 초 동안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인공지능(AI)이 리듬과 화성, 여러 악기의 소리를 더해 그럴듯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악보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옮겨 가상 악기로 재생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피아노 앞에서만큼은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른다. 예를 들어 프레데리크 쇼팽의 연습곡 ‘Op.10 No.1’을 한번 살펴보자. 이 곡은 악보를 멀리서 바라보면 오히려 단순하게 보인다. 넓게 펼쳐진 아르페지오가 건반 위를 오르내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쉼 없이 이어진다. 화음이 바뀌면서 음은 달라지지만, 기본적인 움직임은 계속 반복된다. 컴퓨터에서 쓰는 말을 빌리자면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패턴을 계속 ‘복사해서 붙여 넣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컴퓨터라면 이런 반복을 만들고 가상 악기로 재생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을 사람의 손가락으로 피아노에서 구현하려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쇼팽이 요구한 빠른 템포로 넓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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