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버틀러 스트래스클라이드대 명예교수 - 영국 노팅엄대 지리학, 글래스고대 지리학 박사, 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교수, 전 영국 서리대 교수, 세계관광기구(UNWTO) 율리시스 메달 수상 /리처드 버틀러
리처드 버틀러 스트래스클라이드대 명예교수 - 영국 노팅엄대 지리학, 글래스고대 지리학 박사, 전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 교수, 전 영국 서리대 교수, 세계관광기구(UNWTO) 율리시스 메달 수상 /리처드 버틀러

“베네치아나 바르셀로나 같은 지역은 아직 관광산업이 정체나 쇠퇴에 접어들지 않았다.”

관광학계의 고전 이론인 ‘관광지 수명주기(TALC)’ 모델의 창시자 리처드 버틀러(Richard Butler) 영국 스트래스클라이드대 명예교수는 전 세계를 뒤흔든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현상에 대해 이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1980년 관광지가 탄생하고 수용 능력을 초과하며 겪는 쇠퇴 과정을 체계화하며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 공로로 2016년 세계관광기구(UNWTO)가 수여하는 율리시스 메달을 받았다. 버틀러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정학적 갈등이나 기후 위기에서도 전 세계 중산층 확대로 관광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하이퍼모빌리티(초이동성) 종말’이라는 일각의 전망을 일축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한 해법으로 “현지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체감하는 ‘가치’를 측정하는 방향으로 관광 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베네치아나 바르셀로나 같은 유명 관광지는 진화 단계상 어떤 위치에 있나.

“일괄적으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베네치아, 바르셀로나, 두브로브니크 같은 곳은 방문객을 억제하려는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정체’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개발’ 단계에 더 가깝다. 방문 경험의 질이나 주민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이는 인식의 문제다. 관광객 수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으므로 정체를 넘어선 상태다. 2024년 저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의 전 지구적 영향을 반영해 ‘정체’를 ‘지속 가능성’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느 곳도 지속 가능성 단계에 있지 않다.”

인공지능(AI)과 소셜미디어(SNS)는 관광지 쇠퇴를 어떻게 가속하고 있나.

“인플루언서, AI 추천, SNS 전반이 특정 장소의 인기를 급격히 높이고 반대로 매력을 떨어뜨리는 속도를 크게 가속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관련 상품을 파는 상점이 늘어난 두브로브니크나 드라마 ‘아웃랜더’ 방영 이후의 스코틀랜드 고성은 특정 장소를 매력적인 방문지로 만드는 미디어의 막강한 힘을 잘 보여준다. 이 과정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며 미리 예측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후변화와 폭염으로 여행 수요가 북유럽 등 추운 지역까지 향하고 있다.

“폭염을 피해 서늘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7~8월 대신 4~5월이나 9~10월에 여행하는 흐름이 더 유력하게 나타날 것이다. 대규모 관광객이 장기적으로 북부 지역으로 대거 이동한다면,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페로제도나 아이슬란드에서 이러한 압박이 나타나고 있다.”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임대(STR) 플랫폼은 관광지 쇠퇴를 정말 가속하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지역에서 STR이 주택난을 악화하고 오버투어리즘과 관광 전반에 대한 항의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스페인의 마요르카와 바르셀로나에서는 기존 주택이 임대용 부동산이나 세컨드 하우스로 전환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크루즈 관광은 지역 경제 기여도가 낮지만, 지역 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큰 편이다.

“크루즈 관광의 지역 경제 기여도는 미미하다. 일일, 주간, 연간 선박 수에 엄격한 상한을 두는 정책은 매우 현실적이며, 선박을 다른 곳으로 돌리겠다고 위협하는 선사들 압박에 지자체가 단호하게 대처한다면 도입과 통제가 어렵지 않다. 실제로 두브로브니크는 이런 조치를 통해 상황을 개선했다.”

이탈리아 관광 명소 베네치아의 두칼레궁전 인근 도
로를 관광객이 가득 메우고 있다. /셔터스톡
이탈리아 관광 명소 베네치아의 두칼레궁전 인근 도 로를 관광객이 가득 메우고 있다. /셔터스톡

부탄의 ‘지속가능개발요금(SDF)’ 같은 고액 관광세가 쇠퇴를 막는 방안이 될까.

“단기적으로 방문객 수를 줄이는 효과는 있겠으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요금을 너무 높게 책정하면 급격한 방문객 감소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실제로 부탄 역시 최초 도입 당시보다 요금을 인하했다. 거의 모든 관광지는 부자 관광객을 원하지만, 그런 관광객은 모두를 충족시킬 만큼 충분하지 않다. 과연 관광객이 그런 곳으로 가고 싶어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높은 입장료는 최근 미국에서 열린 주요 스포츠 이벤트처럼 특정 명소나 행사에서 효과를 발휘하지만, 그렇다고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수익을 독식하고 비용은 주민이 떠안는 불균형을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중앙정부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홍보를 지속한다면 오버투어리즘을 관리하려는 지방정부의 노력은 실패하기 쉽다. 실제로 2005~2007년 마요르카의 칼비아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지역 차원의 제한 조치는 지역사회가 떠안는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외지 기업의 보상금이나 지자체 관광세로 비용을 상쇄할 수도 있다.”

지속 가능한 관광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지표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역 주민과 환경이 겪는 위험 및 피해와 관광객 수용으로 얻는 경제적 이익을 등가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지역사회가 관광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학계는 주민과 관광객 모두의 ‘삶의 질’에 주목하며 성공적인 관광지는 두 집단 모두에게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삶의 질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단순한 관광객 수보다 방문객의 유형, 증가율, 출신 배경을 분석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최근의 지정학적 갈등, 기후 재난으로 자유로운 여행은 어려워질 것 같다.

“하이퍼모빌리티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연료 효율이 높은 대형 항공기가 1인당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으나 사람들의 비행 횟수는 늘어났다. 세계적인 부의 증가와 중산층의 급격한 팽창, 총인구 증가로 인해 관광 수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Plus Point

‘정체’→‘지속 가능성’…
44년 만에 수정된 관광지 수명 공식

44년 만에 수정된 관광지 수명 공식

리처드 버틀러 교수가 1980년 캐나다 지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관광 지역 진화 주기 개념, 자원 관리에 대한 시사점’은 특정 여행지가 태동해 번영하고 쇠퇴하기까지의 과정을 체계화한 기념비적 연구다. 버틀러 교수는 제품 수명주기(PLC) 개념을 관광지에 접목해 ‘관광지 수명주기’ 모델을 정립했다.

이 모델에 따르면, 관광지는 초기 모험적 관광객의 ‘탐색’과 지역주민의 ‘참여’를 거쳐 외부 자본이 유입되는 ‘개발’, 성장률이 둔화하는 ‘공고화’를 지나 수용 한계선인 ‘정체’ 단계에 이른다. 이후의 경로는 자원 관리 역량에 따라 적극적인 혁신을 통한 ‘재활성화’와 현상 유지, 또는 자원 고갈에 따른 ‘급격한 쇠퇴’ 등 여러 갈래로 나뉜다. 

버틀러 교수는 그로부터 44년이 흐른 2024년 저서와 논문을 통해 이 모델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 5단계인 ‘정체’를 ‘지속 가능성’ 단계로 전면 대체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단일 선형 곡선 대신 다중 경로를 모델에 편입했고, 수용력을 고정된 수치가 아닌 시대와 여건에 따라 변하는 동적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아울러 단순한 관광객 수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 같은 양적 지표에서 벗어나 현지 주민과 방문객의 ‘삶의 질’을 정책의 핵심 평가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박근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