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부테예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 - 프랑스 파리국립동양언어문화대(INALCO)
조직사회학 박사, 현 주모 파트너스 최고경영자(CEO), 전 입센 아시아 수석 부사장, 전 주중국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C) 톈진 지부 회장 /CEIBS
에릭 부테예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 - 프랑스 파리국립동양언어문화대(INALCO) 조직사회학 박사, 현 주모 파트너스 최고경영자(CEO), 전 입센 아시아 수석 부사장, 전 주중국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C) 톈진 지부 회장 /CEIBS

“인구 14억의 거대 시장에서 좋은 몫을 차지하기 위한 국내외 기업 간 ‘초(超)경쟁’이 제품 개발을 가속하고, 가격을 낮추며, 성능 개선과 신제품 출시 주기를 단축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에릭 부테예(Eric Bouteiller) 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CEIBS) 교수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중국 의료 기기 업계의 고성장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이에 따라 중국 환자와 의료 서비스 제공자도 점점 더 혁신적인 고품질 솔루션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테예 교수는 프랑스 제약사 입센의 중국 총괄 매니저와 아시아 수석 부사장을 역임했고, 2008~2011년에는 주중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C) 톈진 지부 회장을 지냈다. 의료 기기와 제약을 포함한 헬스케어 산업 관련 기업 전략과 정책이 그의 주된 연구 분야다. 2018년부터는 중국 헬스케어 산업 관련 종합적인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모 파트너스(Jumo Partners)를 공동 창업해 최고경영자(CEO)를 겸하고 있다. 

부테예 교수는 중국 의료 기기 업체가 약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의료 기기 빅 3(GPS, GE·필립스·지멘스)가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유수의 의료 기관과 협력하며 축적한 임상 데이터와 운영 경험, 파트너십과 서비스 네트워크 등은 짧은 기간에 넘어서기 어려운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중국 의료 기기 산업의 성장 과정이 전기차와 드론, 태양광 패널 등 다른 제조업 분야의 발전 모델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

“분야를 초월한 중국 산업 발전 모델의 공통점이 있다. 먼저 국가의 대대적 지원을 바탕으로 수많은 국내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치열한 경쟁은 제품과 서비스 혁신 가속을 끌어낸다. 이후 자체 공급망 구축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국내 판매량 증가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이후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프리미엄 부문을 강화하며, 해외시장으로 진출한다. 의료 기기 분야 성장도 과정은 비슷했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그게 뭔가.

“국가를 막론하고 병원과 의료진, 규제당국 등 의료 관련 산업의 핵심 구성원은 리스크에 극도로 민감하다. 첨단 의료 장비를 일반 가전제품과 비교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병원은 공급 업체와 10~15년에 걸친 관계를 맺는다. 제품 구매 주기가 매우 길고, 장기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제품 구매 시 가격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교육, 소프트웨어 지원, 장기적인 신뢰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만큼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더 높고 견고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첨단 제조업에서 이룩한 성과가 의료 기기 산업으로 확산하는 ‘낙수(spill over)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건가.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분명 있다. 전기차· 배터리·드론·태양광발전·정보통신 등 분야에서 중국이 이룬 성과는 중국 산업 역량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인지도와 신뢰도는 구별해야 한다. 특히 의료 관련 분야는 신뢰 구축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 분야와 다르다. 주요 병원은 진단 정확도, 임상 검증, 규제 준수, 유지·보수 및 환자 안전 등에서 불확실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의료 기기를 들여놓을 수 없다.” 

중국 제조 업체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닐 텐데.

“비교적 최근에야 그 점을 깨닫고 혁신 역량 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예를 들어, 유나이티드이미징헬스케어(UIH)는 2024년 한 해에만 22억6000만위안(약 4737억원)의 R&D 투자를 집행했다. UIH는 2024년 말 기준 전 세계에 140개가 넘는 제품을 출시했는데, 여기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510(k) 절차를 통해 승인받은 49개 제품과 유럽연합(EU) 의료 기기 규정(MDR)에 따른 CE 인증을 획득한 46개 제품 등이 포함된다.”

FDA 510(k)는 새 의료 기기가 기존에 허가된 제품과 안전성·유효성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해 미국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허가 절차다. 

중국 칭화대가 운영하는 주요 상급 종합병원인 베이
징 창궁병원 의료진이 회의하고 있다. /신화연합
중국 칭화대가 운영하는 주요 상급 종합병원인 베이 징 창궁병원 의료진이 회의하고 있다. /신화연합

첨단 의료 기기 분야에서 미국·유럽과 중국의 기술력 격차는 어느 정도로 보나.

“격차가 좁혀졌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떤 분야에서는 격차가 미미할 수도 있고, 머지않아 중국 제조사가 우위를 점하는 분야도 나올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중국 제조사가 영상·모니터링·초음파 및 기타 진단 기기 분야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환자 수와 시술 건수는 의료 기기 업계에 압축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동시에, 인구 14억의 거대 시장에서 좋은 몫을 차지하기 위한 국내외 기업 간 초경쟁이 제품 개발을 가속화하고, 가격을 낮추며, 성능 개선과 신제품 출시 주기를 단축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환자와 의료 서비스 제공자도 점점 더 혁신적인 고품질 솔루션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 의료 기기 업체가 중국에 여전히 앞선 부분은 뭔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불리는 글로벌 의료 기기 빅 3의 경쟁력은 엔지니어링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 기업이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유수의 의료 기관과 협력하며 축적한 임상 데이터와 운영 경험, 파트너십과 서비스 네트워크, 워크플로 통합 노하우 등은 짧은 기간에 넘어서기 쉽지 않은 장벽이다.” 

첨단 영상진단장비 분야는 어떤가.

“엑스레이와 컴퓨터단층촬영(CT) 분야에서 중국 제조 업체는 이미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자랑한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고(高)자기장 시스템을 포함한 자기공명영상(MRI) 분야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중국 의료 기기 업계 기술력이 GPS로 대표되는 최상위 서구 기업과 동등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중국을 저가의 영상진단장비 생산국으로 보는 과거의 시각도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인공지능(AI) 기술은 의료 기기 산업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고, 설계 및 개발을 가속하며,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의사와 환자를 지원하며,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 등 제품 주기 모든 단계에 AI 기술 접목이 가능해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제조사는 주로 하드웨어를 통해 경쟁해 왔다.  

하지만 AI 기술 접목으로 소프트웨어를 통해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질 것이다. 또한 의료 기기가 점차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AI 기능까지 탑재하면서 의료 데이터를 어디에서 처리하는지, 사이버 공격 위험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의료 기기 산업에서 한국과 중국의 포지션을 비교한다면.

“양국 관계는 점점 더 경쟁 양상을 띠고 있다. 중국 의료 기기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과거 서구 프리미엄 업체와 저비용 중국 업체 사이에 있던 한국의 입지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비용, 규모, 속도, 첨단 기술을 점점 더 효과적으로 결합해 나가는 반면, 한국은 중국의 제조 경쟁력을 따라잡기 버거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제조 업체는 반도체, 센서, 정밀 진단 기기, 의료용 AI, 첨단 병원 관리 시스템 등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에서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양국이 협력할 여지도 남아 있을까.

“AI 기반 진단 장비, 의료용 반도체 및 센서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 제삼시장을 위한 제품의 공동 개발 등에서 협력이 유망해 보인다. 이들 분야에서 협력을 통해 양국은 가격 경쟁을 지양하고 상호 보완적인 강점을 결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AI 분야는 양국의 경쟁이 앞으로 치열해질 수 있는 분야기도 하다. 따라서 혁신적인 고품질 의료에 대한 수요가 높으면서도 AI 도입에는 뒤처진 유럽이 의료 기기 산업에서 한국에 더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시장 가치 측면에서 아직은 유럽이 중국보다 규모가 크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