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현지시각) 미국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전 세계가 힘들어지고 있다. 이란 전쟁 이후 가장 힘들었던 곳은 인도와 동남아 국가다. 운송 거리가 짧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중동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반면 자체 비축량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급 중단으로 인한 충격이 컸고, 이어진 비용 상승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줬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충분한 비축 물량을 보유하고 있던 선진국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란 전쟁과 더불어 항공유 수급에 큰 차질을 겪은 이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러시아의 정유 시설이 드론 공격에 의해 파괴되면서 경유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산업 및 농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경유 가격의 상승은 식량을 포함한 각종 공산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한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하루 12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지만, 현재는 하루 600만 배럴 수준까지 수입량을 줄였다. 14억 배럴에 달하는 비축유와 더불어 석유화학을 대신할 수 있는 석탄화학산업이라는 존재 그리고 가스관을 통해 공급되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중국이 큰 어려움 없이 현 상황을 버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특정 에너지원 및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배분 원칙을 지켜온 에너지 정책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중동 산유국 역시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호르무즈해협 안쪽에 있는 국가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에너지 수출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국토를 가로지르는 동서 송유관을 통해 동부 지역에서 생산된 원유를 서부 홍해의 얀부항으로 이송해 하루 최대 500만 배럴의 수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 UAE 역시 호르무즈해협 외곽에 있는 푸자이라와 연결된 송유관을 통해 하루 180만 배럴을 수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송유관 증설에도 나섰다. 이란과 근접한 푸자이라항은 드론 등의 공격에 취약하지만, UAE의 방공망이 효과적으로 가동되면서 수출을 이어갈 수 있게 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바깥쪽에 있는 오만의 경우 상대적으로 큰 차질 없이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문제는 우회로가 없는 페르시아만 안쪽의 국가다. 카타르의 경우 LNG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데 다른 지역과 연결된 가스관이 없어 LNG 수출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원유는 해상에서 선박끼리 화물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LNG는 그럴 수 없어서 카타르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은 호르무즈해협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쿠웨이트, 이라크 등도 비슷하다. 이 가운데 이라크는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유조선을 통한 대량의 원유 수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유조선이 심야 시간을 이용해 자기 위치를 알리는 트랜스폰더를 끄고 몰래 호르무즈해협을 넘나들면서 원유 환적을 실시하고 있지만, 호르무즈해협 안쪽에 있는 이라크, 쿠웨이트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막힌 바닷길 대신 시리아 선택한 이라크
원유 수출이 막힌 이라크는 최근 시리아로 눈을 돌렸다. 이라크 서쪽에 있는 시리아는 지중해와 접해있기 때문에 이곳까지 원유를 수송할 수 있으면 유럽 등으로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 과거 중동 정세가 악화할 때마다 대규모 유조차 행렬이 시리아 서부 항구도시 바니야스로 이동해 원유를 운송했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 그리고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로 인해 이 루트는 그동안 이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24년 아흐메드 알 샤라가 이끄는 반군 세력이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고 내전을 종식시키면서 시리아 내부 상황이 안정되자 최근 이 루트가 다시 활용되고 있다. 수백 대의 트럭이 시리아를 가로질러 3개월 동안 약 210만t의 원유를 바니야스까지 수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리아 정세가 안정됐다고 판단한 이라크는 나아가 과거 이라크 전쟁 당시 파괴됐던 이라크 키르쿠크와 시리아 바니야스를 연결하는 송유관 복구에 시리아 정부와 합의했다. 복구에 약 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 송유관이 완공되면 이라크는 원유 수출량의 약 60%에 해당하는 하루 200만 배럴을 시리아를 경유해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최근 가동을 재개한 튀르키예 경유 송유관까지 합하면 이라크 수출량의 약 80%를 호르무즈해협을 거치지 않고 수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자 전쟁으로 무너진 이스라엘의 꿈
송유관 재건이 추진되면서 지역 내 물류망 재건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지금의 중동 지역 대부분은 20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 당시 오스만 정부는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인 메디나까지 연결된 헤자즈 철도 노선을 부설했다. 중동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이 노선은 중동 물류의 핵심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곧이어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었다. 이후 여러 국가의 독립, 반복되는 전쟁과 내전 등으로 인해 이 노선을 복원한다는 계획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2009년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복원에 합의했지만,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계획이 좌절됐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물류 거점으로 부상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인접한 요르단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 국가와 송유관 및 도로로 연결되면 지중해와 접한 하이파항을 통해 중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지리적 입지를 활용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노력은 2023년 인도에서 출발해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이스라엘을 통과해 그리스까지 연결되는 인도·중동 경제회랑(IMEC) 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유럽~중동~인도를 연결하는 새로운 물류망의 핵심 거점으로 이스라엘이 부각된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진 가자 전쟁은 이런 구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주변 세력을 상대로 잇달아 보인 공세적 태도와 무력행사는 중동 국가로 하여금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게 했다. 때맞춰 진행된 시리아 내전 종식은 이스라엘 대신 시리아가 인도와 유럽을 연결하는 허브로 부상하도록 해주었다.
중동~유럽 연결 허브 노리는 시리아
지난 4월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튀르키예는 헤자즈 철도 노선을 4년 안에 재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철도가 완공되면 연간 150만~300만 개에 이르는 컨테이너를 수송하게 되며 이후 주변 국가와 연결이 확장되면 이 노선은 중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핵심 물류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시리아는 자국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근 비공식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4대양 9개 회랑을 연결한다는 구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시리아를 중심으로 페르시아만, 카스피해, 흑해 및 지중해를 연결한다는 제안은 시리아의 지리적 입지를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해주었다. 단기적으로는 각종 상품 이동 경로가 되지만, 더 장기적으로는 전력 및 석유·가스 운송로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중동의 물류 허브가 된다는 구상인 것이다.
오랜 기간 내전에 시달린 시리아는 전후 복구에 10년 치 국내총생산(GDP)에 해당하는 2160억달러(약 290조7400억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원유 및 가스 등의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 놓인 시리아로서는 물류망의 허브 역할을 함으로써 관련 산업을 유치·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UAE, 프랑스 등이 이미 주요 항만 운영권 및 건설권을 확보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과연 시리아가 과거의 위상을 되찾아 중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물류 허브로 자리 잡고, 호르무즈해협을 보완하는 대체 통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