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유러식은 21년 동안 중학교 수학 교사로 학생
을 가르치다 프로골퍼의 꿈을 좇기 위해 51세에
교직을 그만뒀다. /엑스
제이 유러식은 21년 동안 중학교 수학 교사로 학생 을 가르치다 프로골퍼의 꿈을 좇기 위해 51세에 교직을 그만뒀다. /엑스

골프에는 가끔 선수 이력부터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고교와 대학에서 골프 선수로 뛴 적이 없다. 직업은 중학교 수학 교사였다. 21년 동안 학생을 가르쳤다. 그러다 51세에 교직을 그만뒀다. 프로골퍼의 꿈을 좇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5년 뒤. 56세가 된 제이 유러식(Jay Jurecic·미국)은 PGA투어 챔피언스 대회에서 마스터스와 디오픈을 제패한 잭 존슨(미국)과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다.

9월 13일(현지시각)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의 미네하하 컨트리클럽에서 끝난 샌퍼드 인터내셔널에서 벌어진 일이다. 유러식은 마지막 날 1오버파 71타를 쳐 최종 합계 6언더파로 공동 8위에 올랐다. 우승은 11언더파를 기록한 존슨에게 돌아갔다.

21년간 수학 선생님, 여름엔 골퍼

유러식은 미국 미시간주 북부 어퍼페닌슐라의 아이언 카운티에서 살았다. 인구 1만1000명 정도의 작은 지역이다. 골프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고교 골프팀에서 뛴 적도,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도 없다. 대학을 마친 뒤 선택한 직업은 교사였다. 웨스트 아이언 카운티 공립학교에서 중학교 수학을 가르쳤다. 그렇게 21년을 보냈다.

다만 골프를 놓지는 않았다.

유러식은 ‘이중생활’을 했다. 학기 중에는 교실에서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고, 여름방학이 되면 골프백을 들었다. 주(州) 오픈대회와 미니투어를 찾아다녔다.

골프를 대하는 방식에도 수학 교사다운 면이 있었다. 그를 오래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유러식에게 ‘수학적 마인드(math mind)’ 가 있다고 했다. 스윙을 막연한 감각에만 맡기기보다 발사각과 탄도, 각종 수치를 살피고 공이 왜 그렇게 날아가는지 원리를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21년 동안 수학을 가르치며 몸에 밴 분석적 사고가 골프에도 이어진 셈이다. 정상급 선수들은 대개 어린 시절 골프를 시작해 주니어 대회를 거쳐 대학이나 프로 무대로 향한다. 20대에는 투어에 자리를 잡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다. 유러식은 그 시절 교실에 있었다. 그런 생활이 20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다 51세에 큰 결정을 내렸다.

학교를 그만뒀다. 은퇴 후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경쟁적인 프로골프 무대에서 자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만 50세를 넘겼으니 PGA투어 챔피언스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됐다고 출전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월요일 66타를 쳐야 목요일이 있었다

PGA투어 챔피언스에는 세계 골프를 주름잡던 선수들이 모인다. 파드리그 해링턴, 스튜어트 싱크, 레티프 구센, 베른하르트 랑거 같은 메이저 챔피언들이 경쟁한다. PGA투어에서 수십 년을 버틴 선수에게도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PGA투어 경력이 사실상 없는 유러식에게 문은 훨씬 좁았다. 정규 출전권이 없었다. 대회에 나가려면 예선부터 통과해야 했다.

이번 샌퍼드 인터내셔널도 마찬가지였다. 유러식은 대회가 시작되기 사흘 전인 월요일, 바커 크로싱 골프클럽에서 열린 오픈 퀄리파이어에 출전했다.

5언더파 66타. 예선 1위로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월요일 66타를 치지 못했다면 목요일 본선도 없었다. 샌퍼드 인터내셔널과는 인연이 있었다. 2021년에도 이 대회 예선에서 61타를 쳐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성적은 공동 79위였다.

이후에도 PGA투어 챔피언스의 문을 두드렸지만, 기회는 많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본선에 출전한 것은 이번 대회를 포함해 네 차례뿐이었다. 가장 최근 출전은 2025년 딕스 오픈, 공동 54위가 PGA투어 챔피언스에서 거둔 개인 최고 성적이었다.

스윙 후 날아간 공을 응시하는 제이 유러식. /엑스
스윙 후 날아간 공을 응시하는 제이 유러식. /엑스

5500만달러와 5641달러가 공동 선두

유러식은 2라운드에서 5언더파 65타를 쳤다. PGA투어 챔피언스 통산 10번째 라운드에서 기록한 개인 최소타였다. 18번 홀에서는 버디 퍼트를 집어넣었다. 중간 합계 7언더파 133타.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두 이름이 나란히 적혔다. 

잭 존슨과 제이 유러식. 두 사람의 골프 이력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달랐다. 존슨은 2007년 마스터스와 2015년 디오픈에서 우승했다. PGA투어 통산 12승을 거뒀고 라이더컵에도 다섯 차례 출전했다. 미국 대표팀 주장까지 맡았다. PGA투어 통산 상금은 5500만달러(약 740억원)가 넘는다. 지난 2월 50세 생일을 맞은 뒤 PGA투어 챔피언스에 데뷔했다. 반면 이번 대회 전까지 유러식이 PGA투어 챔피언스에서 번 상금은 5641달러(약 760만원)였다.

5500만달러와 5641달러. 한 사람은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그린재킷을 입었고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클라레 저그를 들었다. 다른 한 사람은 골프 인생 대부분을 학교 교실과 작은 지역 대회에서 보냈다. 그런 두 사람이 36홀을 마쳤을 때 7언더파로 공동 선두였다.

2라운드 마지막 버디가 들어가자 18번 홀 그랜드스탠드에서 큰 함성이 터졌다.

유러식은 경기를 마친 뒤 “관중석에서 그런 반응을 받으며 퍼트를 넣고 강하게 마무리한 것은 내가 골프를 하면서 느껴본 최고의 기분이었다”며 “꿈이 이뤄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존슨과 함께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에 들어갔다.

첫 홀 버디… 하지만 메이저 챔피언의 벽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최종 라운드 첫 홀에서도 유러식은 버디를 잡았다. 전날 기세가 이어지는 듯했다.

유러식이 우승하면 PGA투어 챔피언스 역사상 오픈 퀄리파이어를 거쳐 정상에 오른 16번째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토미 게이니가 2025년 콘스텔레이션 퓨릭 앤드 프렌즈에서 월요 예선을 통과해 우승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우승 경쟁은 앞선 이틀과 달랐다. 유러식은 2번부터 7번 홀까지 6개 홀 연속 파를 기록했다. 8번 홀에서 첫 보기가 나왔다. 다시 세 홀을 파로 버텼지만 또 한 타를 잃었다. 마지막 6개 홀도 모두 파였다. 1버디 2보기, 1오버파 71타. 그 사이 투어에서 수없이 우승 경쟁을 경험한 존슨이 치고 나갔다.

존슨은 최종 라운드에서 4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 합계 11언더파. 역시 마지막 날 66타를 친 벤 크레인을 한 타 차로 제쳤다. 유러식은 7언더파 공동 선두로 출발해 6언더파 공동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우승자와는 5타 차였다.

존슨은 우승 상금 33만달러(약 4억4000만원)를 받았다. PGA투어 챔피언스에 데뷔한 올해 13개 대회에서 벌써 5승째다. 15개 대회에서 5승을 거둔 스튜어트 싱크와 시즌 최다승 공동 선두가 됐다. 메이저 챔피언은 우승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유러식에게는 PGA투어 챔피언스에서 처음 경험하는 최종 라운드 우승 경쟁이었다. 결과는 냉정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결과가 남았다.

5641달러 벌던 선생님, 한 대회에서 6만3067달러

공동 8위 상금은 6만3067달러(약 8500만원)였다. 이번 한 대회에서 그동안 이 투어에서 벌었던 돈의 11배가 넘는 상금을 받은 셈이다. 공동 54위였던 개인 최고 성적도 공동 8위로 크게 끌어올렸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의 골프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PGA투어 챔피언스 정규 출전권이 생긴 것도 아니다. 다음 대회에 나가려면 또 출전 기회를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시 월요 예선에 서야 한다.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그는 왜 메이저 챔피언들과 같은 무대에서 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유러식은 “내가 가르쳤던 학생과 고향 사람들이 자기의 꿈을 좇고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21년 동안 수학을 가르친 그는 56세에 PGA투어 챔피언스에서 메이저 챔피언과 우승을 다퉜다. 수학 문제에는 정답이 있지만 인생에는 하나의 공식이 없다. 

전직 수학 교사의 프로골퍼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