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사진가 샬럿 뒤마(Charlotte Dumas)의
‘땅에(A Terra)’ 표지. /김진영
네덜란드 사진가 샬럿 뒤마(Charlotte Dumas)의 ‘땅에(A Terra)’ 표지. /김진영

사진은 찍히는 순간 완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네덜란드 사진가 샬럿 뒤마(Charlotte Dumas)의 ‘땅에(A Terra)’ 가 그렇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2006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촬영됐다. 작가는 당시 촬영한 방대한 사진을 2023년에 다시 살펴보면서, 사진 속에서 서로 다른 개의 자세와 몸짓이 어딘지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전에는 개별적인 초상에 머물렀던 시선이 몸의 움직임과 자세 그리고 하나의 ‘집단적인 몸’으로 옮겨가면서 ‘땅에’가 만들어졌다.

2006년 봄, 작가는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팔레르모의 작은 옥탑방에서 몇 달을 보냈다. 그러던 중 길 건너편 공원을 돌아다니는 거리의 개 무리에 매료되어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곧 작가는 오래된 마을 곳곳에서 저마다 고유의 영역을 가진 여러 무리를 알게 됐다.

팔레르모 거리의 개는 주인은 없었지만, 도시에서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항구와 시장, 공원과 골목을 돌아다녔고 저마다 익숙한 장소와 영역이 있었다. 누군가는 먹을 것을 내어주고, 밤이 되면 개가 잠들 수 있도록 골판지 상자를 놓아두기도 했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소유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팔레르모라는 도시에 속해 있었다.

길에서 살아가는 개를 촬영한다고 하면 흔히 유기견의 열악한 환경이나 상처, 굶주림, 버려진 존재의 쓸쓸함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 속 개는 자기 리듬을 가지고 어떤 면에서는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는 “나는 그들의 존엄과 자부심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진 속 개는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어딘가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카메라에 무관심한 채 잠들어 있거나 길 위에 몸을 길게 뻗고 있다. 골판지 위에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 계단이나 아스팔트 위에 아무렇지 않게 누워 있기도 한다. 작가가 바라본 것은 버려진 존재의 비참함이 아니라 한 존재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팔레르모 거리의 견공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처음 팔레르모에서 작업할 때 작가는 한 마리 한 마리의 개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2023년 오래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서 개별적인 개의 모습보다는 서로 다른 개가 반복하고 있는 비슷한 자세와 몸짓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둥글게 말거나, 한쪽 다리를 앞으로 뻗거나, 등을 땅에 대고 눕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에 찍힌 개의 몸이 사진책에서 나란히 놓이자, 각각의 개는 어느 순간 하나의 커다란 ‘집단적인 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비슷한 몸짓은 사진과 사진 사이를 이어주며 변주가 반복되는 하나의 느린 춤처럼 펼쳐진다.

‘땅에’의 편집도 이러한 반복을 따라간다. 여러 장의 작은 사진이 한 페이지에 모여 있다가 한 마리의 개가 갑자기 펼침면을 크게 차지하기도 한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을 독립적인 초상으로 보기보다 사진과 사진 사이의 닮음과 차이를 따라가게 하는 방식이다. 

몸을 말고, 펴고, 뒤집고, 다시 눕는 동작이 반복되면서 책 전체에 고요하고 느린 리듬이 생긴다. 그리고 사진 속 개는 한결같이 땅에 가까이 붙어 있다. 몸의 무게를 고스란히 바닥에 맡긴 채 쉬거나 잠든 모습에는 편안함과 함께 묘한 시간의 감각이 스며 있다. 

인간이 대개 서 있는 자세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 책의 시선은 그보다 훨씬 낮다. 개의 몸을 따라 계단과 돌바닥, 아스팔트와 골판지 가까이 내려간다. 우리가 그저 지나치는 도시의 바닥은 이들에게 휴식의 장소이고 잠자리이며 때로는 집이다. 그래서 이 책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닿게 된다. 

‘땅에(A Terra)’는 작가가 2006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 머물며 도시를 떠도는 여러 무리의 개를 촬영한 사진을 모은 사진책이다. 작가는 사진에서 서로 다른 개의 자세와 몸짓이 어딘지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진영
‘땅에(A Terra)’는 작가가 2006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 머물며 도시를 떠도는 여러 무리의 개를 촬영한 사진을 모은 사진책이다. 작가는 사진에서 서로 다른 개의 자세와 몸짓이 어딘지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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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의 개는 떠돌아다니지만, 도시에는 속해 있다. 집을 갖는 것과 장소에 속하는 것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보여준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소속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맺고, 정해진 집이 없으면서도 자기 자리를 만들어간다. 작가 역시 이 개를 바라보며 ‘한 무리와 하나의 종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적었다.

“땅 위에 누워 있는 개의 몸, 잠을 잘 때 태아같이 둥그런 자세에서 보이는 고요함, 때로는 무덤처럼 땅을 파낸 틈새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에서 중력과 시간성이 느껴진다. 이들은 나로 하여금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그리고 개인으로서 또 다른 지각 있는 존재와 더불어 우리가 차지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이 인상적인 것은 이런 생각을 어떤 극적인 장면을 통해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 속 개는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대신 그저 몸을 말고 잠을 자고, 햇빛이 드는 곳에 누워 쉬고, 자기에게 익숙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들을 인간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만들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는 방식을 가르쳐준다. 

‘땅에’라는 제목도 책을 다 보고 난 뒤에는 처음과 조금 다르게 읽힌다. 땅은 단지 개가 누워 있는 바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구나 잠시 몸을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이자,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특별한 동물의 삶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존재가 자기에게 주어진 공간을 차지하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어쩌면 생명체의 가장 지극히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김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