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연일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에도 대전 중구 성심당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 대기 줄이 늘어섰다. 전국에서 인파가 몰리며 “성심당 오픈런을 하려면 1박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전에서는 빵을 구매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빵택시’와 ‘빵 보관함’ 서비스도 등장했다.
‘빵지 순례’ 열풍은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과 성동구 성수동, 부산 해운대구와 동래구, 군산과 천안 등의 로컬 빵집이 입소문을 타면서 2026년 1~9월 국내 구글 검색에서 빵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3% 늘었다.
해외도 비슷하다. 프랑스 파리의 세드릭 그롤레나 미국 뉴욕의 라 카브라, 슈퍼문 베이크하우스 앞에는 새벽부터 대기행렬이 이어진다. 개당 10~15달러(약 1만3000~2만원)를 훌쩍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연일 완판 행진이다. 빵은 이제 끼니를 넘어 미식 순례의 대상이자 취향과 감각을 드러내는 라이프스타일 소비재로 자리 잡았다.
축적된 기술과 K-베이커리의 세계화
이러한 열기는 시장 지표로도 증명된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츠(GMI)와 포춘비즈니스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베이커리 시장은 2024~2025년 약 5100억~ 5500억달러(약 704조~760조원) 규모에서 연평균 4~5%대 성장해 2032~2033년에는 7300억~8400억달러(약 1007조~116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시장은 2025년 13조6000억원 규모로, 5년간 연평균 8% 안팎으로 성장했다. 국민 1인당 하루 빵 소비량은 2010년 17.5g에서 2025년 23g으로 30% 넘게 늘었다. 전국 베이커리 전문점은 약 2만8000개로, 인구 10만 명당 점포 수(54개)가 일본(10개)의 5배를 웃돌 정도로 포화도가 높다. 이는 K-베이커리 업계가 해외 진출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 배경이기도 하다.
K-베이커리의 성장 밑바탕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제빵 기술이 자리 잡고 있다. 대전 성심당(튀김소보로·부추빵)을 필두로 군산 이성당(단팥빵·야채빵), 대구 삼송빵집(통옥수수빵), 안동 맘모스베이커리(크림치즈빵), 광주 궁전제과(공룡알빵·나비파이) 등 각 지역 빵집은 고유의 메뉴와 반세기에 걸친 제빵 노하우로 거대한 로컬 팬덤을 구축했다. 성심당은 대전 외 지역에 매장을 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2025년 매출 2629억원, 영업이익 643억원(영업이익률 24.4%)을 기록해 대형 식품 기업에 버금가는 수익성을 입증했다. 이성당(매출 298억원, 영업이익률 13.7%), 부산 옵스(매출 299억원, 영업이익률 9.7%) 등도 견고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원석 대한제과협회 회장은 “해외 흐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원료와 기술을 국내 소비자 취향에 맞게 재해석해 온 제과·제빵인의 노력이 지금의 베이커리 문화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 다져진 내공은 글로벌 영토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구 시장이 전통 식사빵과 극도로 달콤한 디저트로 양분된 틈새를 파고든 K-베이커리는 달지 않고 짭짤한 ‘세이버리(savory)한 맛’과 아시아적 풍미를 결합한 문화적 리믹스로 차별화된 제삼의 카테고리를 열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베이커리 제품 수출액은 2017년 2억4000만달러에서 2025년 4억3000만달러로 연평균 7.9% 성장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6년 3월 기준 누적 수출액도 전년 대비 17% 늘었다. 파리바게뜨는 미국 진출 20년 만에 북미 사업을 흑자로 전환하고 글로벌 매장을 700개 이상으로 늘렸다. 뚜레쥬르도 북미를 포함해 해외 600여 매장을 운영 중이다. SPC삼립도 ‘미니 보름달’을 미국 코스트코 400여 매장에 1175만 봉 규모로 입점시켰다. 제빵 기술력도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 2026년 1월 프랑스 파리 ‘쿠프 뒤 몽드 드 라 불랑제리’에서는 한국 국가대표팀이 1.4m 크기의 거북선 빵 공예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정상급 기술력을 과시했다.
식사빵과 ‘산업형 아르티장’, K 자형 소비
빵은 이제 간식에서 ‘웰니스 주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GLP-1) 비만 치료제 확산으로 섭취량이 줄어든 소비자가 ‘영양 밀도’와 ‘소화 편의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기 시작해서다. 루 앤 윌리엄스 이노바 마켓 인사이츠 창립자 겸 대표는 “비만 치료제 확산에 맞춰 영양 밀도와 포만감, 장 건강을 강화하는 배합으로 빵을 재설계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짚었다. 벨기에 퓨라토스는 복합 단백질 기술을 적용한 ‘퓨라비타 프로틴’으로 퍽퍽함 없이 부드러운 고단백 빵을 구현했다.
제조 현장에서는 푸드테크 기반의 ‘산업형 아르티장(장인급 대량 생산)’으로 혁신이 한창이다. 고수분 반죽을 손상 없이 분할하는 무가압 시스템과 인공지능(AI) 기반 수요 예측, 스마트 도 컨디셔너가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폴 베지어 퓨라토스 글로벌 최고연구개발(R&D) 책임자는 “제빵 산업에서 이제 전통적인 대량 생산과 수제 장인의 경계는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이런 화려한 팽창 뒤편에는 그늘도 있다. 최근의 국내 빵 유통 지형은 중간 가격대가 축소되고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K 자형 소비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1000~2000원대 편의점 초가성비 자체 브랜드(PB) 부문에서 CU의 ‘BAKE405’가 누적 판매량 3500만 개를 돌파하고, GS25의 ‘텍스트힙’ 베이커리가 출시 닷새 만에 10만 개 완판되는가 하면, 다른 한 축에서는 성심당처럼 공간과 브랜드 스토리를 즐기기 위해 장거리 순례를 마다하지 않는 초프리미엄 팬덤이 공존한다.
가격 부담도 커졌다. 한국의 식빵 100g당 가격은 785원으로 프랑스(599원), 미국(584원), 일본(468원)보다 높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이러한 빵 인플레이션의 본질은 한국 특유의 원가 구조에 있다. 빵의 핵심 원재료인 밀가루(소맥분)의 99.8%, 백설탕의 100%를 수입에 의존하고, 버터·치즈·팥앙금 등도 수입 비중이 높아 국제 곡물가와 환율 변동에 취약하다. 더욱이 베이커리 산업은 전 공정이 숙련 수작업에 의존해 총제조 비용 중 인건비 비율이 28.7%에 달하며, 이는 과자(14.3%), 음료(9%)의 2~3배 수준이다. 원가 충격은 골목 상권의 개인 제과점에 고스란히 전이되고 있다. 우원석 회장은 “대기업과 달리 대량 구매나 선물 헤징이 불가능한 개인 점주들은 원가 상승을 떠안으면서도 소비자 저항선 때문에 가격에 즉각 반영하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협회 차원에서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 열풍 당시 피스타치오를 공동 구매했던 것처럼 수요 집중 품목을 중심으로 공동 구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분쟁도 부담이다. 막시모 토레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후변화에 따른 수확량 감소와 지정학적 분쟁이 공급망을 압박해 빵 가격의 상향 평준화가 굳어지고 있다”며 “가격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사회의 다변화된 공급망 구축과 생산성 혁신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1만 년 전 빵부터 140m 바게트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빵
요르단 나투프 유적 ‘슈바이카 1호’ 에서 발굴된 탄화 빵 조각으로, 약 1만4400년 전 것이다. 농사를 짓기도 전 수렵·채집 시대에 빵을 먹었다는 증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슈티프츠베커라이 장크트 페터’가 가장 자주 거론된다. 이 빵집의 역사는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지금도 장작 화덕에서 천연 발효 흑빵을 굽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빵
스페인 안달루시아 알가토신의 한 빵집이 만든 ‘골드 리프 브레드’. 400g짜리 통밀빵에 24K 식용 금가루 250㎎을 입혔다. 가격은 개당 1480~1800유로(약 230만~280만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빵
파리바게뜨가 1988년 출시한 ‘실키롤케익’. 2015~2019년 5년간 5개국에서 1249만8487개가 팔려 기네스에 등재됐다. 길이로 환산하면 약 3000㎞, 에펠탑(300m) 높이의 9300배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