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시장은 식사빵 위주의 전통 베이커리와 지나치게 단 디저트형 베이커리로 양분돼 있다. 한국식 디저트 빵은 세이버리(savory·달지 않고 짭짤한 맛)하면서도 당도가 과하지 않은, 그 사이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제시했다. 이는 건강과 균형을 중시하는 최근 소비 흐름과도 맞아떨어졌다.”
최한도 파리크라상 글로벌사업본부장(전무)은 K-베이커리가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에 편승한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기존 서구 베이커리 시장이 채우지 못한 맛과 제품의 공백을 K-베이커리가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파리바게뜨는 미국·캐나다·프랑스· 영국·중국·싱가포르·베트남·인도네시아 등 13개국에 진출해 737개(9월 기준) 글로벌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 435개에서 5년 만에 1.7배로 늘었다. 미국 진출 20년 만인 2025년에는 북미 사업 매출이 전년 대비 30%가량 증가하며 흑자 전환했다.
다음 목표는 ‘북미 1000호점’이다. 2030년까지 북미 시장에 1000개 매장을 확보하고, 2029년 미국 텍사스주에 약 2만8000㎡ 규모의 제빵 공장을 완공할 계획이다. ‘빵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프랑스에도 진출했고, 동남아에서는 할랄 인증을 발판 삼아 이슬람권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계열사 삼립을 통해 코스트코 등 미국 대형 유통 채널에 양산빵도 수출한다.
‘이코노미조선’은 파리바게뜨의 해외 사업을 이끄는 최 본부장에게 K-베이커리의 성장 배경과 해외시장 확장 전략을 물었다. 최 본부장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와 아마존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오비맥주 부사장, 컬리 전략·혁신·인사 총괄 부사장을 거쳐 지난 2월 파리크라상에 합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미국 진출 20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성장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한 비결은.
“특정 캠페인이나 단기 전략의 결과가 아니다. 허영인 회장의 품질 경영 철학 아래 ‘품질은 어떤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매장과 제품, 현지 인력에 꾸준히 투자해 온 결과다. 초기 시장 안착 비용 부담을 넘어 이제는 브랜드 인지도와 재방문이 성장을 이끄는 구간에 진입했다. 조급하게 수익을 좇지 않고 기본기에 투자한 것이 성장 동력이다.”
북미 베이커리·카페 강자와 비교해 파리바게뜨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은 무엇인가.
“핵심은 제품력과 품질 관리 역량이다. 한국의 우수한 연구개발(R&D) 역량에 글로벌 사업에서 쌓은 현지화 노하우를 결합해, 현지 소비자의 미충족 수요에 맞는 제품을 적기에 출시해 왔다. 미국 시장 어디에서나 동일한 제품 품질을 유지하는 운영 역량도 더해졌다.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으면서도 믿고 이용할 수 있는 브랜드’라는 신뢰를 북미 전역에 구축하는 것이 최종 지향점이다.”
시장마다 소비자 입맛과 유통 환경이 다르다. 현지화하는 영역과 바꾸지 않는 원칙은.
“시장별 입맛에 맞춰 메뉴 구성에 차이를 둘 수는 있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과 고객 경험 수준은 전 세계 그 어느 매장에서나 동일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2029년 완공될 텍사스 공장에는 어떤 기술과 공정이 도입되나.
“파리바게뜨는 휴면 반죽 대량 제조와 점포 베이크오프(bake-off) 생산 방식을 결합해 규모와 품질을 동시에 확보하는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텍사스 공장은 기존보다 한 단계 높은 제조 시설로, 고품질 제품을 더 균일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해 신선하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매장 현장 생산은 유지하되 중앙 공장이 제품 라인업 보강과 비용 절감을 뒷받침하는 구조다.”
프랑스·영국 등 유럽의 반응과 성과는.
“까다로운 프랑스 소비자에게도 품질과 맛을 인정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가맹점 출점이 이어지고 있고, 내년에는 유럽 내 새로운 국가에 진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유럽은 브랜드의 정통성을 시험받는 시장인 동시에, 인정받는 것 자체가 글로벌 신뢰 자산이 되는 전략적 무대다.”
지정학적 불안과 기후변화 등으로 원재료비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원재료비와 인건비 상승 압박은 어떻게 관리하나.
“세 가지로 대응하고 있다. 첫째는 성장을 통한 규모의 경제, 매장이 늘수록 구매·생산 단위 원가가 낮아진다. 둘째는 생산성 향상이다. 셋째는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확장에 따른 공급망 최적화다. 이 세 가지를 통해 비용 상승분을 상쇄하면서 성장하려 한다.”
싱가포르·인도네시아에서 할랄 인증을 획득했다. 동남아 7개국 확장 전략에서 할랄 인증의 중요성은.
“동남아 핵심 시장에서 무슬림 비중은 압도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약 87%, 말레이시아는 약 64%가 무슬림이다. 실제 할랄 인증 취득 후 이들 시장에서 유의미한 매출 상승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무슬림 비중이 약16%로 낮지만, 싱가포르 이슬람 종교위원회(MUIS) 할랄 인증이 아세안과 중동으로 가는 신뢰의 관문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이 인증을 기반으로 중동 진출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 할랄 인증을 취득한 신규 공장을 완공해 이슬람권을 공략할 기반도 마련했다.”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보급과 건강 중심 소비 확산으로 ‘건강빵’ 수요가 커지고 있다.
“고단백·고식이섬유·저당 등 건강 지향 제품군의 미국 시장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맛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건강 가치까지 담는 것은 파리바게뜨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지난해 국내에 출시한 건강 베이커리 브랜드 ‘파란라벨’도 현재 싱가포르 매장에서 선보이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 파란라벨을 비롯한 건강 지향 제품을 다른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가장 맛있고 건강한 빵으로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는 허영인 회장의 비전을 바탕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글로벌 베이커리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 K-베이커리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려면, 유행을 좇아서는 안 된다.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고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믿는다.”
파리바게뜨 인기 빵은?
한국은 호밀빵, 미국은 페이스트리 선호
파리바게뜨의 인기 제품을 보면 한국과 미국 시장의 차이가 뚜렷하다. 한국에서는 ‘파란라벨 크랜베리 호밀 깜빠뉴’와 ‘파란라벨 멀티그레인 호밀빵’이 1, 2위를 차지했고, ‘No.1 우유식빵’ ‘마이넘버원케이크’ ‘실키롤케익’ 등 스테디셀러가 뒤를 이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햄 치즈 패스츄리’와 ‘크루아상’ ‘베리베리 패스츄리’ 등 디저트형 페이스트리류가 강세를 보였고, K-베이커리의 대표 격인 ‘꽈배기 도넛’과 ‘딸기 생크림 케익’도 4~5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건강빵 라인인 파란라벨은 아직 미국에 출시되지 않아 이를 단순 소비자 취향 차이로만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