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태극당의 대표 제품들. (오)‘과자 중의 과자’라는 문구가 있는 태극당 장충 본점 입구. /태극당
(왼)태극당의 대표 제품들. (오)‘과자 중의 과자’라는 문구가 있는 태극당 장충 본점 입구. /태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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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빵집이 생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태극당에는 80년의 시간이 만든 서사가 있다. 페이스트리를 구워내도 매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건 결국 단팥빵과 모나카다. 유행을 좇기보다 우리가 지켜온 본질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강력한 브랜딩이자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K-헤리티지다.”

1946년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을 이끄는 신경철 대표는 생존 전략을 이렇게 밝혔다. 고(故) 신창근 회장의 손자인 신 대표는 2012년 가업에 합류했다. 태극당은 1970년대 전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제과점으로 꼽힐 만큼 번성했지만, 신 대표가 합류할 당시에는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쇠퇴하던 중이었다. 

그는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리브랜딩으로 태극당을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찾는 ‘힙한(멋진)’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연 매출은 250억~300억원 수준으로 회복했고,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에 이름을 올렸다. 태극당의 대체 불가능한 유산과 독보적인 지식재산(IP)을 기반으로 서울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9월 초 미국 출장을 앞둔 신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는 “서울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관광지 매장 매출, 그 이상은 벌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글로벌 유통에서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리브랜딩의 원칙은 무엇이었나.

“장충동 본점 2층 벽에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완전히 새롭게 바꾸기보다 우리가 가진 유산과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예컨대 단팥빵 재료는 더 좋은 것으로 바꾸되, 태극당만의 색깔은 지키는 식이다. 이런 선택이 뉴트로(newtro·새로움과 복고를 결합한 경향) 열풍과 맞아떨어지면서 젊은 세대에 트렌디한 브랜드로 받아들여졌다. 본점은 이제 관광지에 가까운 공간이 됐다. 매장에서는 신제품보다 단팥빵 같은 기존 제품을 더 잘 만들어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한다. 대신 온라인 등 다른 유통 채널에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이나 저속 노화 같은 새로운 키워드를 활용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베이커리 시장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나.

“과거엔 빵을 만들기만 해도 팔리던 시대였다. 10여 년 전 ‘동네 빵집 대 프랜차이즈’ 구도를 거쳐, 지금은 소셜미디어(SNS)와 콘텐츠가 소비를 좌우하는 시장으로 재편됐다. 그렇다고 태극당까지 트렌드를 좇아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매출을 보면 단팥빵·슈크림빵·모나카 같은 전통 스테디셀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유행에 맞춰 신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비용을 쏟기보다 기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더 많은 알리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훨씬 효과적이다.” 

대기업과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하다. 러브콜이 쏟아지는 이유는.

“태극당의 80년 역사와 서사 덕분이다.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지만, 태극당의 스토리는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진짜 역사’다. 기업은 한국적인 전통과 서울의 색깔을 담은 태극당의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협업을 제안한다. 과거에는 우리가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며 협업했다면, 지금은 태극당의 IP와 상대방의 유통망을 활용해 함께 수익을 내는 구조로 바뀌었다. 최근 GS25와 함께 선보인 우유콘 등 아이스크림 제품이 흥행한 것이 좋은 예다.” 

K-베이커리의 위상이 높아진 걸 체감하나.

“확실히 외국인 방문객이 늘었다. 요즘 관광객은 을지로·성수·도산공원 같은 상권을 많이 찾지만, 태극당 본점은 이른바 ‘핫플’이라기보다 을지로나 동대문에 왔을 때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 가면 토라야(500년 역사의 양갱 브랜드) 매장에 들르듯 말이다. 외국인 고객 사이에서는 선물하기 편한 제품이 많이 팔린다.” 

한국 빵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은 ‘K’ 자체가 강점이지 않을까. 빵의 본고장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승부한다기보다 한국 브랜드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감성이 먹히는 것 같다.” 

최근 원재룟값이 많이 상승했는데.

“우크라이나가 농업 국가라는 걸 최근에야 실감했다. 전 세계 밀가루 가격을 흔들 만큼 영향력이 크고, 국제 정세가 동네 빵집의 재룟값까지 좌우한다는 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체감하고 있다. 원자잿값 상승은 대기업조차 방어하기 어렵다. 직접 수입한다고 원가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어서, 제조 설비에 투자하고 판매관리비를 줄이고 있다.” 

해외 진출 전략은.

“서울 상권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잘해도 ‘관광지 빵집’ 이상 나아가기 어렵다. 고물가 구조에서 유통을 확장하지 않으면 100년, 200년 가기 힘들다. 그래서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미국은 마스터 프랜차이즈나 국내 OEM 공장과 협업을 통한 수출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실무 검토를 시작했다. K-컬처의 흐름을 탈 수 있는 지금, 뭐라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웰니스와 헬스케어 트렌드 부상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올해 맛과 건강을 고려한 저속 노화 브랜드 ‘농축원’을 출시했다. 농축원은 1960년대 태극당이 운영했던 목장에서 시작된 이름으로, 정직한 먹거리에 대한 가치를 담고 있다. 첫 제품은 냉동 빵으로 컬리, 쿠팡 등 이커머스에서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고민하지 않으면, 그냥 관광지 브랜드로만 남을 수 있다고 본다.” 

태극당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는 기업이 되기 위해 법인 구조부터 생산·제조 체계, 마케팅 언어, 판매 채널까지 모두 표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단팥빵과 모나카를 가장 잘 만드는 친근한 브랜드이면서, 한편으로는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브랜드 콘텐츠와 서사도 함께 깊어지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대체할 수 없는 색깔을 보유한 브랜드로 남는 것이 목표다.” 

Plus Point

이번 주말엔 ‘빵지 순례’ 가볼까
대기업 체인 맞짱 지역 명물 빵집

빵집 하나가 지역 경제를 살린다. 한때 ‘노잼 도시’로 불렸던 대전은 성심당 덕분에 미식 관광지로 거듭났다. 다른 지역에는 지점을 내지 않는 성심당의 대전 네 개 매장은 연간 방문객이 약 1000만 명이고, 이 중 외지인 비중은 58%에 달한다. 본점이 있는 은행동에는 구매한 빵을 맡겨두는 ‘빵 보관소’ 까지 생겼다. 빵을 사러 온 관광객이 지역에 더 오래 머물며 카페와 식당까지 찾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전시가 주최한 ‘대전 빵 축제’에는 16만8000명이 몰렸다. 지역 명물 빵집 하나가 상권 전체에 소비 효과를 끌어올린 셈이다. 군산 이성당, 경주 황남빵, 부산 옵스 등 다른 지역의 노포 빵집도 관광객이 몰리는 ‘빵지 순례’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