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에서 전통적인 ‘산업형 대량생산’과 ‘수제 장인(아르티장)’의 경계는 무너졌다.”
세계적인 제과·제빵·초콜릿 원료 솔루션 기업 퓨라토스(Puratos)에서 연구개발(R&D) 혁신을 총괄하는 폴 베지어(Paul Baisier) 글로벌 R&D 최고책임자는 전 세계 제빵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바이오 딥테크와 장인정신의 결합’으로 정의했다.
1919년 벨기에에서 설립된 퓨라토스는 연 매출 36억유로(약 5조7000억원) 규모에 달하며,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진출해 78개 생산 공장과 137개 연구혁신 센터를 운영하는 세계적인 기업 간 거래(B2B) 베이커리 솔루션 기업이다. 벨기에 상트피트에 150여 종의 천연 발효종(사워도)과 1500종 이상의 균주를 보존하는 세계 유일의 ‘사워도 도서관’을 운영하며 글로벌 발효 미생물학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베지어 최고책임자는 인터뷰에서 “극한 생태계 미생물 유래 효소 기술로 지방을 대폭 줄이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상미기한(가장 맛있고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기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클린 라벨을 완성했다”며 “고단백·고식이섬유 빵을 구현하는 영양 밀도 혁신이 산업의 승부처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대량생산 라인에서 수제 장인 빵의 풍미와 식감을 어떻게 구현하나.
“이제 전통적인 ‘산업형’과 ‘장인형’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핵심 과제는 기공이 살아있는 속결, 바삭한 껍질, 발효에서 비롯된 깊은 풍미 등 소비자가 장인 빵에서 사랑하는 특성을 산업적 규모에 필요한 일관성과 효율성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식품 과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모든 것은 밀가루에서 시작된다. 퓨라토스는 ‘밀가루 기술센터’와 폭넓은 제분 전문 지식을 통해 이러한 변동성을 분석하고, 고객사의 밀가루와 공정, 최종 제품에 최적화된 맞춤형 제빵 개량제 시스템을 개발한다. 효소 과학은 이 기술의 핵심이다. 우리는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해 이를 제빵 솔루션으로 전환한다. 한 예로 남극의 극한 환경에 적응한 효소 생성 균주를 연구해 최적화된 효소 기술을 개발했다.”
소비자 기호를 R&D에 어떻게 반영하나.
“글로벌 소비자 연구 프로그램인 ‘테이스트 투모로’를 출범시키고 56개국 2만3000명 이상의 소비자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대규모 정량 조사, 시맨틱 인공지능(AI), 디지털 트렌드 트래킹, 전문가 분석을 결합해 소비자 기대치의 진화 방향을 조기에 파악하고 있다. 식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테이스트 투모로는 ‘텍스처 매시업’을 핵심 글로벌 트렌드로 규명했다. 소비자는 제품을 바삭함, 쫄깃함, 부드러움, 촉촉함, 사르르 녹는 느낌, 가벼움 등으로 표현하며, 한입에 여러 감각이 복합적으로 느껴지길 기대한다. 이런 묘사를 명확하게 정의된 과학적 식감 속성으로 변환하는 공통의 과학적 언어를 개발했다. 훈련된 관능 전문가는 촉촉함, 부드러움, 응집성, 입안에서의 질감 등 미세한 뉘앙스를 포착한다. 제품이 갓 구워졌을 때뿐만 아니라 유통기한 전반에 걸쳐 이러한 속성을 지속적으로 측정하며, 이동형 소비자 조사 플랫폼인 ‘센소버스’를 통해 실제 매장 환경에서 소비자 블라인드 테스트를 병행한다. 이것이 우리의 ‘글로컬’ 모델이다.”
비만 치료제 확산으로 영양 밀도 중심의 새 식습관이 자리 잡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대단히 까다로운 과제다. 빵에 단백질이나 식이섬유를 대량 첨가하면 수분을 빼앗아 가 글루텐 형성을 방해하고 가스 포집력을 떨어뜨려, 빵이 지나치게 빽빽해지거나 퍽퍽하고 모래 같은 불쾌한 식감을 유발하기 쉽다. 해결책은 단순히 단백질 양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단백질 종류마다 기능적 물성이 완전히 달라서 단일 원료에 의존하지 않고 최적의 조합을 구성한다. 여기에 효소 및 개량제 기술을 결합해 수분 흡수, 반죽 안정성, 부드러움, 신선도를 정밀하게 제어한다. ‘퓨라비타 프로틴’은 이러한 전문성이 구현된 대표 사례로, 필수 아미노산 조성을 갖추면서도 부드러움과 볼륨을 보장해 ‘고단백’ 라벨 기준을 충족한다.”
‘사워도 도서관’을 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많은 이가 사워도를 와인의 테루아처럼 이야기하며 특정 지역이 자동으로 고유한 미생물 구성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 과학은 훨씬 입체적이다. 지역적 특성뿐 아니라, 곡물의 종류, 제분소와 베이커리 환경의 미생물, 발효 온도, 수분율, 스타터 리프레시(먹이 주기) 방식까지 복합 작용해 고유 생태계를 형성한다. 사워도를 보존하고 효모와 젖산균을 정밀 분석해 풍미, 질감, 영양 프로파일, 신선도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현재 150종 이상의 사워도와 1500종 이상의 분리 미생물 균주가 보존 연구되고 있다. 사워도를 보존하는 이유는 미생물의 생물학적 다양성이야말로 미래 빵을 창조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빵의 부드러움과 상미기한을 늘리는 클린 라벨 기술은 어떻게 발전하고 있나.
“클린 라벨에 대한 흔한 오해는 유화제나 보존료를 단순히 빼기만 해도 빵이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성분은 반죽의 탄력과 신선도 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해왔기에, 이를 제거하려면 메커니즘을 정확히 규명해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퓨라토스는 제빵 효소를 자체 개발·생산하기 때문에 효소 작용 기전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 남극의 극한 냉기부터 옐로스톤의 고온 온천 미생물까지 탐구해 냉동 반죽 안정성과 식감 보존 효소 기술을 완성했다. ‘어떤 첨가물을 뺄 것인가’가 아니라 ‘원하는 식감과 목표 상미기한, 생산 라인 환경이 어떠한가’에서 출발한다.”
제빵 업계의 만성적 구인난 속에서 냉동 생지(냉동 반죽) 같은 새로운 재료 기술이 의미하는 것은.
“숙련 기술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질수록 냉동 생지와 파베이크(반쯤 구워 만든 빵) 기술은 핵심 전략이 된다. 중앙 공장에서 반죽 공정을 대규모로 자동화하고, 매장에서는 하루 종일 갓 구운 빵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동은 얼음 결정이 형성되어 글루텐 매트릭스를 손상하는 가혹한 환경이다. 기술은 장인 정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뒷받침하는 것이다.”
K-베이커리의 글로벌 돌풍이 서구 제빵 업계의 R&D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 아시아로 흐르던 베이커리 혁신의 흐름이 역사상 처음으로 역전됐다. K-베이커리는 극강의 부드러움과 쫄깃함, 고수분 탄력성 등 ‘식감의 진화’를 이끌며 서구 매대의 핵심 트렌드를 바꿨다.
또 다채로운 조리 샌드위치와 풍성한 토핑을 앞세워 빵과 스낵, 식사의 경계를 허물며 빵의 식문화적 역할을 재정의했다. 트렌드에 극도로 민감한 한국 소비자에게 대응하는 빠른 신제품 출시 주기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역동적인 모델이 됐다. 한국은 단순한 소비 시장을 넘어 ‘글로벌 베이커리 산업의 혁신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했다.”
‘소금빵’ 신드롬, 구글 검색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구글 트렌드 분석 결과, 최근 1년간(2025년 9월 1일~2026년 8월 31일) 한국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빵은 ‘소금빵’으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성심당빵, 포켓몬빵, 치즈빵, 통밀빵, 바게트 순이다. 지역 명물 빵과 캐릭터 협업 빵이 최근 1년 새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2004년 이후 ‘빵’ 검색량을 보면 전체 트래픽의 우상향 흐름을 보인다. 국내 ‘빵’ 관심도는 2022년 3월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SPC삼립이 16년 만에 재출시한 ‘포켓몬빵’이 품절 대란을 일으킨 영향이다. 올해 1~9월 관심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3% 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 세계 관심도 2020년 4월 정점을 찍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속 글로벌 ‘홈베이킹’ 열풍이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