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딸이 중학생 때 이야기다.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라는 얘기를 하느라 잔소리가 길어졌다. 가만히 듣던 아이는 무서운 중2답게 갑자기 반항했다. “공부가 어떻게 재미있을 수가 있어? 잔인한 말이야! 아빠는 교수라 그런지 몰라도 어떻게 그게 가능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항변하는데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신통하게 수학 성적을 잘 받아왔다. 기분이 어떠냐니 좋단다. 그게 어떤 느낌이냐며 계속 대화를 풀어가니, 에너지가 나는 느낌, 더 잘해 보고 싶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필자가 맞장구쳤다. “그래, 그게 공부의 재미야! 노래방이나 네 컷 사진 찍을 때의 재미와는 다르지.”
쉽게 보상을 주면 그 보상 때문에 흥미를 잃는다는 게 내재적 동기 이론의 핵심이다. 아이들 교육에서 특히 강조되지만,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게 일반적이고 업무가 재미없는 경우도 많기에 이 이론은 일터에선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재미란 무언가를 해낸 뒤에야 찾아오는, 노력의 부산물인 경우도 있다. 재미를 먼저 강조하는 건 결과를 원인처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성공을 강조한다. 하지만 루틴한 일을 하고 있는데 성과를 자주 맛보라는 말도 공허하다.
옛날 기억이 났던 건 지금은 금융회사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딸과 나눈 대화 때문이다. 자신이 금융업에 속해 있다는 게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엔지니어 역할에만 머물지 말고, 알고리즘이 연결되는 일의 전체와 회사의 투자로 시야를 넓혀보라고 조언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스스로 일의 의미와 역할을 확장하는 ‘직무 의미 개선’이라 한다.
일의 의미는 강요할 수 없다. 크래프팅(crafting)하듯 경험의 폭이 넓어지거나 성취가 쌓일 때 저절로 창발한다. 리더는 구성원이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조건, 가령 더 넓은 시야나 기회를 열어줄 뿐이다. 리더나 회사가 먼저 의미를 주고 싶다면 한 가지 더 구분해야 할 개념이 있다. 일의 의미와 의미 체계(meaning system)는 다르다.
일의 의미는 ‘지금 이 일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답이다. 의미는 시야가 넓어지면 커지고, 성취가 쌓이면 강화된다. 자연스레 재미도 생긴다. 이것은 국지적이고 맥락 의존적이다. 팀이 바뀌고 직장이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 반면 의미 체계는 메타적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무엇을 향해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다. 이것은 어느 한 과업이나 조직을 초월한다. 강사를 불러 교육 한 번으로 될 게 아니다. 직원이 업무 경험을 해석하는 상위의 서사다. 삶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올여름을 시원하게 한 ‘오디세이’라는 영화에는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돕는 아버지의 친구 ‘멘토르’가 나온다. 멘토의 유래다. 일터에서 멘토는 일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다. 지금 이 과업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국지적이고 현재 시제다.
의미 체계를 인도하는 리더는 이 모든 일이 결국 무엇을 향해 쌓이고 있는지를 비춰준다. 통합적이고 인생 시제다. 좋은 멘토는 좋은 리더의 잠재력이다. 일의 의미를 여러 번 되씹게 되면 구성원은 저절로 ‘그럼 나는 무엇을 향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의미가 반복되고 쌓이면, 그것이 의미 체계의 재료가 된다.
역으로, 이미 자기 안에 의미 체계가 서 있는 리더는 구성원에게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자극하는 힘도 크다. 전반적인 삶을 지향하는 푯대가 오늘의 경험을 정렬하는 것이다. 이것이 리더의 영성(spiritualit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