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수출한 K2 전차가 폴란드 국영 방산 업체 공장에 전시돼 있다. /사진 국방부
폴란드에 수출한 K2 전차가 폴란드 국영 방산 업체 공장에 전시돼 있다. /사진 국방부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방위산업(방산)은 세계시장의 변방이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상황이 달라졌는데, K2 전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FA-50 경전투기가 폴란드를 중심으로 유럽에 진출하면서 ‘K-방산’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방산 수출은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고, 방산 기업의 주가는 급등했다.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진입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 9월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를 둘러본 후 바르샤바의 안보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며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한국은 실력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인가. 지금의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가. 

K-방산은 분명 성공했다. 문제는 그 성공의 원인을 지나치게 한국의 경쟁력만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욱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양욱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폴란드는 왜 한국 무기를 샀나

K-방산의 도약을 상징하는 것은 폴란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폴란드는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천무를 한꺼번에 선택했다. 첫 계약부터 180대의 K2와 212문의 K9이 포함됐고, 이후 계약은 확대됐다. 한국 무기는 성능이 뛰어나면서, 가격은 저렴했고, 한국 기업과 정부도 적극 움직였다. 그것만으로 폴란드의 선택을 설명할 수는 없다. 

폴란드에 가장 필요했던 건 ‘세계 최고의 무기’가 아닌, 당장 받을 수 있는 무기였다.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무기를 제공한 폴란드는 전력 공백을 빠르게 메워야 했다. 미국과 서유럽의 생산 라인은 급증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당시 폴란드 국방 장관은 미국의 ‘고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하이마스)’ 추가 도입을 추진했지만, 제한된 생산능력 탓에 제때 물량을 받을 수 없어 한국과 천무 공급 협상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는 서방이 갖지 못한 것이 있다. 북한과 대치하며 수십 년간 대규모 재래식 군대를 유지하면서 갖춘 전차와 자주포, 탄약과 미사일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산업 기반이 그것이다. 수출된 무기는 양산 중이어서생산 라인 확대도 어렵지 않았다. K-방산 약진의 또 다른 배경은 전쟁이 만들어 낸 공급자의 시장, 즉 미국과 유럽이 제때 팔 수 없는 특수한 시장 환경이다. 한국은 기회를 잡았고, 이는 실력이다. 기회를 잡은 실력과 기회를 만들어 낸 능력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MSPO에서 보인 다른 풍경

올해 MSPO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폴란드가 한국에 요구하는 것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폴란드는 완제품을 빨리 받는 데 만족하지 않고,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K2PL(K2 전차의 폴란드 버전)은 폴란드 현지 생산을 전제로 하고, 천무는 옐치(Jelcz·폴란드 군용 트럭)·토파즈(TO-PAZ·폴란드 사격, 전투 관리 체계)와의 결합을 꾀한다. MSPO에서 목격한 한·폴란드 방산 협력 논의의 핵심 의제는 현지 생산, 기술이전, MRO(유지·보수·관리), 공동 연구개발(R&D)과 제삼국 공동 진출이었다. 이는 좋은 소식인 동시에 이상 신호다. 

좋은 소식인 이유는 한국이 단순한 무기 판매국에서 유럽 방산 생태계의 파트너로 올라설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신호인 이유는 미래 경쟁에서 한국의 ‘많이 만들어 빨리 보내는 능력’은 충분치 않다는 해석이 가능해서다. 폴란드는 방산 협력보다 진일보한 국방 협력을 한국과 추진해 왔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자 일본·필리핀 등과 국방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초기의 생산능력 부족을 절감한 유럽 각국은 방산 생산 기반을 확대 중이다. 폴란드도 한국 무기의 지속 도입이 최종 목표가 아니며, 한국과의 협력으로 자국 방산 업체의 생산능력과 기술력을 키우고 한국 무기 체계의 유럽 MRO 허브가 되려 한다. 폴란드 수출은 전체 4차분 계약 중 2차분까지만 진행됐다. 3차와 4차를 한국이 그대로 수주하리란 보장은 없다. 

방산주는 성장주인가

더 우려되는 건 국내의 왜곡된 시각이다. 방산은 국가 안보를 뒷받침하는 장기 산업이라기보다 주식시장의 성장 테마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수출 계약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은 수십 년간 고성장할 산업처럼 기대한다. 방산은 기본적으로 제조업이다. 공장을 지어야 하고 생산 라인을 늘려야 하며 숙련공과 협력 업체를 확보해야 한다.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려면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고, 전쟁이 끝나 수요가 줄면 늘어난 생산 설비가 부담이 된다. 수출 뒤에는 수십 년간 부품과 정비,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 전통적 플랫폼 중심 방산 기업이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팔란티어나 실드AI 같은 신흥 방산 기업은 다르다. 팔란티어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통해 지휘, 정보, 의사 결정 체계를 혁신하고, 실드AI는 자율 비행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무인 체계의 운용 방식을 바꾸려 한다. 팔란티어는 2026년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93% 증가했고, 미국 정부 부문 매출도 90% 증가했다. 실드AI는 올해 투자 유치에서 기업 가치 127억달러(약 17조원)를 인정받았다.

중요한 것은 기업 가치의 정당성이 아니라 성장 방식의 차이다. 전차 한 대를 더 팔려면 한 대를 더 만들어야 하지만, 소프트웨어와 AI·자율화 기술은 표준을 장악할 경우 여러 무기 체계와 군대로 빠르게 확장될 수 있다. 이 차이를 간과하고 기존 방산 제조 기업에 방산 혁신 기업 같은 성장을 기대하면 K-방산의 미래를 오판하게 된다. 

'무엇을 지배하느냐'가 중요하다

K-방산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은 성공으로 번 시간과 자본으로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해야 할 때다. 첫째, 완제품 수출에서 현지 방산 생태계 참여로 넘어가야 한다.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을 기술 탈취로 해석해서는 유럽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공동 생산, 공동 개발, MRO를 통해 상대국 공급망에 들어가야 한다.

둘째, 무기 판매를 군사 협력과 결합해야 한다. 폴란드군이 K2와 K9, 천무를 운용한다면 한국군과 전술, 교리, 교육훈련, 군수 지원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최근 한·폴란드 육군이 정례 협의체와 공동 훈련, MRO 및 군사 혁신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중요한 변화다.

셋째, K-방산의 중심을 플랫폼에서 소프트웨어와 전장 체계로 확장해야 한다. AI, 자율화, 드론, 전자전, 우주, C4ISR(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감시·정찰), 전투 관리 체계가 연결되는 미래 전장에서 경쟁력은 전차나 자주포 한 대의 성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센서에서 표적을 찾아 최적의 타격 수단을 연결하고, 그 과정을 상대보다 빠르게 수행하는 ‘킬웹(Kill Web)’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이 전차와 자주포만 잘 만드는 나라로 남는다면 K-방산의 성장은 멈춘다. 한국의 플랫폼 위에 한국의 센서, 통신, AI, 자율 체계와 전투 소프트웨어가 올라가고 이를 동맹·우방국의 전력과 연결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K-방산의 진정한 완성을 향해

K-방산은 지난 4년간 급성장했다. 전쟁과 공급 부족이 만들어 준 시장과 경쟁 우위를 영원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K-방산에 필요한 것은 성공의 원인을 냉정하게 해부하는 일이다. 한국이 잘해서 무기를 팔았던 것은 맞다. 그러나 한국만 잘했던 건 아니다. 전쟁이 연 창문은 언젠가 닫힌다. 창문이 닫힌 뒤에도 선택받을 수 있다면 K-방산은 진정한 역량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