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좋은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렇게 말할게. 너의 신체와 정신이 더 질병에 시달려야 해. 지금은 너무 건강한 것 같아.”
그날 학생에게 내가 한 말은 대략 이랬다.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는 4학년 학생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를 연주한 뒤였다. 상당히 잘 준비해 온 학생에게 나는 조금 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을 요구했다.
‘템페스트’가 쓰인 1802년은 베토벤이 이른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한 해이기도 하다. 청력이 나빠지고 회복에 대한 희망마저 희미해지던 그해 가을, 그는 형제들에게 자기 고통을 털어놓는 글을 남겼다. 누구보다 예민해야 할 음악가의 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 삶을 끝낼 생각까지 했다고 썼다. 그런 자신을 붙든 것은 예술이었다. 아직 자기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느끼는 음악을 모두 세상에 내놓기 전에는 떠날 수 없었다.
필자는 학생에게 화성이 움직이는 자리에서 느껴지는 연약함을 이야기했다. 몸과 마음이 극한에 몰린 사람이 잠시 고개를 들어 희망을 바라본다. 그런 사람에게 희망은 얼마나 간절할까. 그러다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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