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5일 일본 도쿄의 한 딜링룸에서 외환딜러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 약세를 보이던 엔화 환율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이날 달러당 120엔에 거래됐다. 사진 블룸버그
2014년 12월 5일 일본 도쿄의 한 딜링룸에서 외환딜러가 모니터를 보고 있다. 약세를 보이던 엔화 환율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이날 달러당 120엔에 거래됐다. 사진 블룸버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월 일본 기업의 실적이 호조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로 ‘6중고(重苦) 해결’을 들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일본 기업은 부진에 빠졌다. 당시 일본 기업이 직면한 어려운 경영 환경을 6가지로 정리한 게 6중고다. 그러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정권을 장악했던 민주당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신문은 “2012년 말 정권이 교체되고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이후, 초(超)엔고, 엄격한 환경규제는 해소되었고, 다른 어려움도 해소되고 있다”고 했다.


엔화 가치 10% 하락하면 GDP 0.3% 증가

엔화 약세, 즉 엔저(円低)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이다. 아베 정권이 내건 경제정책의 3대 축, 이른바 ‘3개의 화살’은 대담한 금융정책, 신속한 재정정책, 신성장 전략이다. 이 중 대담한 금융정책은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거의 무한정 돈을 풀겠다는 내용이다. 통화량을 확대하면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엔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수출이 늘어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신규 채용이 증가하고 임금이 오르며, 결국 소비 개선으로 이어져 오래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서 탈출하고 국가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아베노믹스에 따른 경기 선순환 구조다.

엔저 덕분에 기업 실적은 확실히 개선됐다. 재무성의 법인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00년대 중반 3.7%였으나 2012년 3.2%로 감소했다. 그러나 엔저와 함께 실적이 회복돼 작년엔 4.8%까지 상승했다. LG경제연구원은 “해외 매출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 일본 증시 상장사 1092개사 중 해외 매출 비율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기업은 35%나 된다”며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엔 올라가면(엔화 가치 하락)도요타자동차의 연간 영업이익이 400억엔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했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10% 하락하면(엔화 약세) 일본 국내총생산(GDP)은 0.3%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이 연구소는 “엔저는 물가를 상승시켜 소비를 다소 악화시키지만, 수출 증가와 기업 실적 개선을 통해 설비투자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라고 밝혔다.

엔저에서 비롯된 기업 실적 개선 덕에 일본 경기는 2012년 12월 이후 계속 좋아지고 있다. 고도성장기인 ‘이자나기 호황(1965년 11월부터 57개월간)’의 기간을 이미 뛰어넘었다.

환율은 한국 수출기업에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처럼 원화 약세를 유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한국 원화는 엔화처럼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과 같은 대규모 양적완화로 화폐가치 하락을 유도하면 자본유출, 과잉 유동성, 물가 상승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환율 조정은 외환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달부터는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하면 그 내역이 공개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국만 외환시장 안정조치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공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손덕호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