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는 생명과학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 NIBRT·SK바이오텍
아일랜드는 생명과학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 NIBRT·SK바이오텍

영국에 800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던 유럽 서쪽의 섬나라 아일랜드는 지금 영국보다 잘산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18년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만8806달러, 영국은 4만2491달러다. 각각 세계 1인당 GDP 순위 4위, 19위로 그 격차가 크다. 아일랜드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70년쯤 지난 뒤부터 영국의 1인당 GDP를 넘어섰다.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의 책 ‘슬픈 아일랜드’에서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이 제국의 모국보다 경제적으로 월등해지는 경우는 예외적”이라고 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한국의 1인당 GDP는 작년 기준 3만1362달러(28위), 일본은 3만9286달러(24위)다.

아일랜드는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연합의 전신)에 개발도상국의 지위로 가입했다.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1차 산업(농업) 중심의 낙후된 경제 구조 그리고 불안정한 정치·사회적 환경이 더해져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아일랜드는 회원국의 평균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90%에 못 미치는, 즉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 지급하는 결속기금(Cohesion Fund)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으로서 유럽연합(EU)의 다른 나라에 기여하는 국가로 거듭났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지만, 불과 3년 만에 졸업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이 같은 아일랜드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서 한국 경제 도약의 실마리를 찾아봤다. 아일랜드는 한국 정부가 육성하고 싶어 하는 제약, 바이오, 의료 기기 등 생명과학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 △구제금융 졸업 등 한국과의 역사적·경제적 연결고리는 덤이다.

당장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에도 아일랜드가 언급됐다. 당시 복지부는 제약·바이오 산업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참고해야 할 모범 사례로 아일랜드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연구소(NIBRT)를 꼽았다. 2011년 설립된 NIBRT는 기초·응용 연구, 임상시험, 인허가 등 제약·바이오 산업 현장에 필요한 교육을 해주는 기관이다. NIBRT에 따르면 대졸 미취업자 교육생의 80%가 제약·바이오 기업 취직에 성공했다.

아일랜드 투자발전청(IDA)에 따르면 아일랜드 내 제약·바이오 기업 수는 75개다. 지난해 생명과학 분야의 연간 수출액은 850억유로(약 111조 8000억원)로, 아일랜드 전체 연간 수출액의 30%를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제약·바이오 관련으로 해외에서 아일랜드에 투자한 액수는 100억유로(약 13조2000억원)였다.


2003년부터 법인세 12.5%…한결같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일관된 경제정책.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아일랜드의 생명과학 산업 관계자들과 정부 인사들은 아일랜드의 저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럽 최저 수준인 아일랜드의 법인세율(12.5%)은 2003년 이후 변함없다. 구제금융 당시 흔들리는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끝까지 고수했다. 줄리안 클레어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무역·세금 등 중요한 경제정책은 반드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정치권에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집권 세력이 바뀔 때마다 법인세율 개편을 놓고 설전을 벌인다. △김대중 정부 27% △노무현 정부 25% △이명박 정부 22% △박근혜 정부 22% △문재인 정부 25%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출렁거렸다. 한국 기업에 정권 교체는 그 자체가 ‘불확실성’인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타격은 눈에 보이는 어려움보다 치명적이다. 예상된다면 대응책이라도 세울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대응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장기적 계획을 세워 움직인다. 업종 특성상 단기적 성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 등 외부 환경이 자주 바뀌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고 그런 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꺼린다.

일관된 경제정책에 더해 아일랜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외국 기업의 아일랜드 투자를 지원하는 IDA는 아일랜드 진출 희망 기업이 나타나면 아예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세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낮은 법인세율과 이 같은 맞춤형 지원이 어우러져 세계적인 생명과학  기업들을 비롯해 정보기술(IT) 기업과 금융회사 등 부가가치 높은 산업이 아일랜드로 몰렸다. 세계 제약·바이오 상위 10개 회사가 전부 아일랜드에 지사나 생산 시설을 두고 있다. 의료 기기 분야에서는 상위 15개 회사 중 14개가 아일랜드에 진출해 있다.

외국 기업 유치는 아일랜드 토종 기업 발전의 싹도 틔웠다. 아일랜드 정부는 1998년 IDA에서 자국 기업 육성과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기능을 분리해 아일랜드 기업진흥청(EI)을 설립했다. EI는 다국적 기업을 아일랜드로 유치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 그 이상을 해보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작년 EI 회원사 수출액 합계는 238억유로(약 31조3705억원)로, 10년 전보다 110억유로(약 14조5000억원) 늘었다. 회원사들이 고용하는 인력만 25만명이다.


韓 정부, 아일랜드의 산업 육성법 분석해야

아일랜드처럼 생명과학 강국이 되기 위해 한국 정부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래 먹을거리로 제약·바이오 산업을 선정하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25년까지 매년 4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작년 투자액 2조6000억원의 1.5배다. 정부는 ‘블록버스터(연 매출 1조원 이상) 국산 신약을 개발하겠다’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차세대 유망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등의 표어를 내걸고 있다.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 제약, 의료 기기의 세계 점유율은 현재 1.8%에 불과하다. 산업 구조의 혁신이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0월 초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정숙 의원(바른미래당)은 “국내 제약 산업이 신약이 아닌 다국적 제약사의 제네릭 등 구식 개발로 매출을 올리는 구조라 발전이 더디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약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키울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조선’은 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아일랜드를 찾았다. 아일랜드 경제 발전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IDA·EI 직원들과 현지 스타트업들 그리고 혁신 기술을 상품화해 시장에 내놓는 것을 독려하는 대학 산하 연구기관 관계자들을 만나 취재했다.

더블린(아일랜드)=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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