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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들이 늘어선 대구 방천시장 인근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길이 500m 정도의 이 골목에 10여곳의 커피전문점이 밀집해 있다. 사진 이용성 차장

한낮의 수은주가 33도까지 올랐던 지난 2일. 고속버스로 동대구 터미널에 도착해 건물 밖을 나서니 서울에선 느낄 수 없었던 뜨거운 기운에 숨이 턱 막혔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 넘게 남았지만, 사람들이 대구를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고 부르는 이유를 짐작하기엔 충분한 열기였다.

“대구? 커피로 유명한 도시는 강릉 아닌가?”

커피 취재로 대구에 간다고 했을 때 지인들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실제로 강릉은 ‘노인들도 믹스커피는 안 마신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수준 높은 커피 문화, 개성 넘치는 카페로 유명하다. ‘커피 거리’로 유명한 강릉 안목해변에는 횟집보다 커피전문점이 자주 눈에 띈다.

강릉이 커피도시로 유명해진 건 재일교포 커피명인 박이추씨가 2001년 경포해변에 ‘보헤미안’ 카페를 열고 원주대 강릉캠퍼스에 바리스타 과정을 개설해 후진 양성에 나서면서부터다. 이듬해에는 은행원 출신의 김용덕씨가 고향인 강릉시 구정면에 ‘테라로사’라는 이름으로 로스팅 공장을 개업하며 힘을 보탰다.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특별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강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늘면서 커피는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강릉시도 2009년부터 매년 ‘강릉커피축제’를 개최하며 커피도시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그런데 강릉에 앞서 대구가 커피도시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강릉의 커피 부흥을 해외파인 박이추 보헤미안 대표가 이끈 반면, 대구 커피의 부흥은 국내파인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가 주도했다. 안 대표는 1990년 7월 경북대 후문 부근에 커피명가를 창업하며 국내 커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직접 로스팅해서 뽑아낸 신선한 커피를 선보인 것은 안 대표가 처음이었다.

사실 강릉과 대구는 ‘체급‘이 다른 도시다. 인구 250만명의 대구를 20만명이 조금 넘는 강릉과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체급이 비슷한 6대 광역시로 비교 대상을 좁히면 커피도시 대구의 위상은 여전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구의 커피전문점 수는 2710개로 광역시 중 부산(2867곳)에 이은 2위다. 하지만 인구 대비 커피전문점 수를 따지면 922명당 1곳으로 부산(1220명당 1곳)에 한참 앞선 1위다. 대기업 계열의 프랜차이즈와 대구 출신 토종 커피전문점 브랜드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커피명가 외에 다빈치커피, 슬립리스 인 시애틀, 핸즈커피 등이 대구를 대표하는 토종 커피전문점 브랜드다.

동성로와 팔공산, 수성못, 앞산 등 대구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예외 없이 ‘카페 거리’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여기에는 세상을 떠난 ‘가객’ 김광석의 생가 인근에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도 포함된다. 2011년 조성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길이 500m 정도의 이 골목에는 10여곳의 커피전문점이 밀집해 있다. 주말을 맞아 몰려든 인파 사이로 고인의 노래 제목을 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카페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긴 여름과 겨울도 커피 발달 요인

대구에 커피전문점이 많은 이유로는 경제적 원인과 역사적 원인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자영업자가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대구의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6대 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대구의 경제 구조상 소자본으로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커피전문점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커피를 즐기는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대구로 대거 피난 오면서 커피문화가 활성화했다는 의견이 많다. 대구에는 1936년 화가 이인성이 대구 최초의 다방인 아루스다방을 열어 예술인의 사랑방으로 애용됐고 1950년대 초에는 천재화가 이중섭이 대구 백록다방 등에서 예술인들과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날씨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는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내륙 날씨 특성상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대구 사람들이)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도 커피문화 발달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천년 고도’ 경주의 새 명소 황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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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의 명소 ‘로스터리 동경’. 사진 이용성 차장

동대구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신라 천년 고도’ 경주에서는 낙후된 황남동 옛 골목길이 불과 1년 남짓한 사이에 관광명소로 환골탈태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천마총이 속한 대릉원 서편 내남네거리에서 오릉 방면 길이 2㎞ 정도의 왕복 2차선 ‘황리단길(황남동의 경리단길)’ 이야기다.

이곳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경주에서 가장 개발이 더딘 동네였다. 그런데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처럼 이국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된 젊은 관광객들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앞다퉈 황리단길 태그(#)를 단 인증샷을 올린 것도 한몫 거들었다.

황리단길로 가는 길에 잡아탄 택시의 기사는 “예전에는 점집이 많았고 밤에는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을씨년스러운 동네였다”고 귀띔했다. 인근에 땅을 파니 어린아이들 뼈가 많이 나왔다는 괴담도 전했다.

황리단길 초입에 자리 잡은 브런치카페 ‘노르딕’과 한식과 일식 가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홍앤리식탁’ 등 이곳 맛집은 주말이면 30~40분씩 줄을 서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많다. 로스터리 동경(東京‧경주의 옛 지명)과 오하이 등 개성 넘치는 카페들도 황리단길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골목 안쪽 주택가 한옥을 개조해 만든 로스터리 동경은 운치 있는 너른 정원과 ‘아인슈페너’로 인기다. 아인슈페너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구름 같은 크림을 띄운 ‘비엔나커피’의 본래 이름이다. 황리단길이 뜨면서 인근 주택가 곳곳에서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개조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해 여름, 지인의 한옥을 임대‧개조해 로스터리 동경을 개업한 이대유 사장은 “워낙 침체된 동네였기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것을 주민들이 반기는 분위기”라면서도 “행여나 영업으로 불편을 주지 않을까 걱정돼서 골목길 청소도 하고 명절에는 주민들을 찾아뵙고 선물도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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