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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바셋(Paul Bassett) 2003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 바셋 에스프레소 대표, 호주 홍보대사

“저렴한 제품을 적당한 값에 팔아서는 성공할 수 없다. 비싸도 좋은 품질을 내놓아야 소비자가 선택할 것이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이 2009년 ‘폴바셋’ 브랜드로 커피전문점 시장에 진출하면서 남긴 말이다. 품질에 있어서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김 회장의 고집은 국내에서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고가·고품질 커피전문점 성공 신화를 일구는 초석이 됐다.

커피 사업에서 김 회장의 품질 제일주의를 현실로 구현한 일등공신은 호주 출신의 세계적인 바리스타 폴 바셋이다. 김 회장은 바셋에게 그의 이름을 딴 커피전문점 사업을 제안하면서 원두 선택과 커피 추출법 등 커피 관련 운영 권한을 일임했다.

바셋은 호주 시드니에서 ‘바셋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의 원두 유통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2003년 25세 나이에 세계 최고 권위의 바리스타 경연대회인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우승하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매일유업의 자회사 엠즈씨드가 운영하는 폴바셋의 지난해 매출은 756억원. 지난달 25일에는 서울 서초동 래미안 서초에스티지S 상가에 100호점을 열었다. 중간에 문 닫은 곳도 있어 전체 매장 수는 5월 말 기준 95곳이다. 모두 직영으로 운영된다.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폴바셋은 2020년 매장 200곳, 매출 17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특한 메뉴도 폴바셋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에스프레소를 활용해 만드는 아메리카노 대신 에스프레소보다 30초가량 더 긴 시간 추출하는 호주 스타일의 ‘룽고(Lungo)’를 기본으로 한다. 룽고는 이탈리아어로 ‘길다’는 뜻이다.

아메리카노보다 커피 추출량이 많아 더 쌉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커피로 거품을 내 생맥주 같은 형태로 판매하는 ‘롱블랙 드래프트’도 인기 메뉴다.

매장 점검과 교육, 팬미팅 행사 참가를 위해 한국에 온 바셋을 5월 31일 서울 서대문구 폴바셋 이화여대점에서 인터뷰했다. 텁수룩한 구레나룻과 선한 눈매, 차분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커피를 자주 마셔 예민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커피는 하루 두 잔, 아침에 주로 마신다고 했다. 그래도 세계적인 바리스타답게 ‘커피 한잔할래요?’라는 말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직접 내려준 커피는 아니었지만, 그의 제조 방식을 충실히 따른 룽고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폴바셋 경영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나.
“원두 구매와 바리스타 교육, 품질 관리는 물론 장기적인 확장 계획 등 사업 전반에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 폴바셋 운영권을 인수해 통합 운영하기 위한 논의도 현재 진행 중이다.”

바셋의 이름을 딴 커피전문점 사업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매장은 도쿄의 신주쿠와 시부야 두 곳에 불과하다. 바셋의 일본 파트너는 ‘천재 파티시에(제과·제빵사)’로 불리는 쓰지구치 히로노부(辻口博啓)다.

국내 매장 수가 어느덧 100곳을 바라보게 됐다. 이 정도 성공을 예상했나.
“어린 시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돌이켜 보면 2003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성공 비결이 뭘까.
“첫 매장의 엄청난 성공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고급 커피에 대한 시장 수요가 커지던 시기에 매장을 열어 타이밍이 좋았고, 이전까지 한국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진한 풍미의 커피로 승부한 것도 주효했다. 브랜드와 품질 관리에 있어 파트너인 매일유업의 역할이 컸다.”

2009년 9월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 구석에 ‘커피스테이션 폴바셋’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폴바셋 1호점은 하루 평균 900~1000잔의 커피가 팔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비슷한 크기의 제법 잘된다는 커피전문점 하루 매출의 두 배가 넘는 실적이었다.

폴바셋 커피는 어떤 점에서 독특한가.
“로스팅으로 인공적인 맛과 향을 더하기보다는 원두 고유의 풍미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와인으로 치면 오크통 숙성 등 제조 과정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포도 품종과 고유 테루아르(terroir·재배 환경)에 집중하는 것과 비슷하다.”

커피의 매력에 빠져든 계기가 궁금하다.
“아버지가 영국 런던의 특급호텔 ‘도체스터(The Dorchester)’에서 정통 프랑스 요리사로 일했다. 이후 호주로 건너와 어머니와 함께 골드코스트 남쪽에 있는 바이런베이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내게는 그 식당이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식자재의 식감과 냄새, 맛의 조화 등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다. 바리스타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그때 연마한 셈이다. 10대 후반부터는 커피에 특별한 관심을 두게 됐고, 20대 초반에 이탈리아 여행 중 에스프레소의 세계에 매력을 느껴 바리스타의 길을 걷게 됐다.”

바리스타의 매력과 필요한 자질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커피농장 농부와 커퍼(cupper·원두품질 감별사), 로스터 등 여러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 바리스타는 커피 제조의 마지막 단계에서 원두의 남은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중요한 직업이면서 또 창의적인 직업이다. 바리스타로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농장에서 카페에 이르는 커피 유통과 제조 관련 공정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경험이 필요하다. 물론 커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바리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좋아하는 원두와 특징, 소개 부탁한다.
“폴바셋의 블렌딩 커피에도 사용되는 예가체프와 시다모 등 에티오피아 원두를 좋아한다. 에티오피아 남부가 원산지인 예가체프는 꽃향기, 톡 쏘는 산미, 열대과일 맛 등이 풍부하다. ‘커피의 귀부인’으로 불리는 시다모는 레드와인 같은 농밀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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