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미기코브스키(Eric Migicovsky)캐나다 워털루대 시스템디자인공학과, 페블(Pebble Technology) 창업(왼쪽) 팀 브래디(Tim Brady)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하버드 경영대학원(MBA), 야후 최고제품책임자(CPO), 에듀테크 액셀러레이터 ‘이매진 K12’ 창업(오른쪽)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에릭 미기코브스키(Eric Migicovsky)
캐나다 워털루대 시스템디자인공학과, 페블(Pebble Technology) 창업(왼쪽)

팀 브래디(Tim Brady)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하버드 경영대학원(MBA), 야후 최고제품책임자(CPO), 에듀테크 액셀러레이터 ‘이매진 K12’ 창업(오른쪽)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드롭박스(파일 공유·저장), 스트라이프(핀테크), 트위치(게임 스트리밍), 코인베이스(암호화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투자육성 회사)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이하 YC)가 키워낸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들이다. 기업 가치가 293억달러(약 33조원)에 이르는 에어비앤비 등 16개 유니콘의 기업 가치를 모두 합하면 80조원을 웃돈다. SK하이닉스와 현대차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실리콘밸리에서 YC는 단순한 투자 회사를 넘어 ‘스타트업 성공의 보증수표’로 불린다. 4000여 명에 이르는 끈끈한 YC 출신 졸업생(alumni) 네트워크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다방면으로 성공을 돕기 때문이다. 미국 테크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YC의 투자를 받는 건 황금 티켓(Golden Ticket)을 얻는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YC 출신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른 벤처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YC 투자 직후 이 스타트업들은 평균 16억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YC는 2005년 액셀러레이터라는 유형의 벤처 투자 회사를 처음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액셀러레이터는 초기 스타트업에 소액을 투자하고 팀 구성, 전략, 마케팅, 재무, 법률 등 모든 활동을 지원하는 투자 회사를 말한다. YC는 기수 형식으로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약 300여 개 스타트업을 선발해 투자하고(지분 7%를 인수) 3개월 동안 집중 지원하는데, 한 기수당 평균 1만여 개 팀이 도전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YC의 성공 이후 500 스타트업(500 Startups), 테크스타스(Techstars) 등이 등장하며 액셀러레이터가 보편화했다.

글로벌 대표 액셀러레이터로 불리는 YC의 투자 기준은 무엇일까. YC로부터 투자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 10월 2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미미박스 본사에서 YC의 주요 파트너들을 만나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생각, 투자 유치 요령 등에 대해 들어봤다. YC 파트너인 에릭 미기코브스키(Eric Migicovsky)와 팀 브래디(Tim Brady)는 YC와 미미박스가 함께하는 스타트업 교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한국을 방문했다. 미미박스는 한국 최초로 YC의 투자를 받은 뷰티 스타트업이다.


창업자 출신의 미기코브스키는 “YC는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창업자 출신의 미기코브스키는 “YC는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미기코브스키 “현재 YC의 파트너로 일하고 있고, 그 전엔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스타트업 페블(Pebble Technology)을 창업해 경영했다. 2011년에 YC 프로그램을 거쳤고, 캐나다 출신이다.”
브래디 “YC 파트너로 합류한 지 3년 정도 됐다. YC 합류 직전 ‘이매진 K12’라는 교육 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를 창업해 6년 정도 운영했다. 그 전엔 야후에서 최고제품책임자(CPO)로 일했다.”

YC 파트너로 합류하게 된 배경은.
미기코브스키 “1년 전에 합류했다. 페블을 핏비트(Fitbit)에 매각한 후였다. YC는 페블에 투자한 투자자 중 최고였다. 첫 번째 투자자이기도 하다. YC가 네트워크, 경영 조언 등을 통해 페블에 수년간 많은 도움을 줬기 때문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YC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세이벨(Michael Seibel)이 파트너 제안을 해서, 좋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좋다.”
브래디 “내가 이매진 K12에 있을 때만 해도 YC는 에듀테크(EduTech·교육과 기술의 합성어) 스타트업에 많이 투자하지 않았다. YC가 교육 스타트업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최근 에듀테크가 점점 주류로 떠오르고, 더 많은 투자자들이 교육 스타트업에 투자하길 원하는 상황이 됐다. YC는 이매진 K12보다 훨씬 큰 플랫폼이고, 교육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YC의 일부가 되는 편이 더 좋기 때문에 YC에 합류했다.”

미국 창업 생태계에서 액셀러레이터는 어떤 역할을 하나.
미기코브스키 “YC 설립 전엔 초기(early stage)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지원하는 회사가 없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벤처 투자 회사의 투자를 받기도 전에 망하는 회사가 많았다. YC의 등장 이후 비슷한 액셀러레이터가 많아졌고 창업 생태계가 더 개선됐다고 생각한다. YC는 지금까지 19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가장 많은 경험을 축적한 최고의 액셀러레이터다.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돈, 경험, 네트워크, 전략 등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 미미박스처럼 직원이 많은 후기 단계 스타트업에도 계속 조언을 하고 있다.”
브래디 “50~100명 정도 직원을 가진 회사가 미미박스 사이즈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컴퍼니 빌딩도 하고 있다. 후속 투자도 일부 진행한다. 스타트업이 다음 단계 투자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발표 교육도 하고, 다른 투자자들과 연결도 해주며 창업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YC 파트너 브래디는 ‘왜 지금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투자 기준이라고 말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YC 파트너 브래디는 ‘왜 지금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투자 기준이라고 말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어떻게 해야 YC의 투자를 받을 수 있나.
미기코브스키 “YC는 인터넷을 통해 지원받는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 모든 지원서를 다 읽는다. 크게 네 가지를 중요하게 본다. 첫 번째는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제대로,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브래디 “말은 간단하게 들리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미기코브스키 “정말 그렇다(웃음). 두 번째는 팀이다. 어떤 사람들이 팀을 구성하고 있는지,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지, 서로 신뢰하는지 등을 본다. 세 번째는 모방을 막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느냐를 따진다.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그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인지를 본다.”
브래디 “세 번째 요건과 관련해 조금 덧붙이자면,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도 묻는다. 왜 지금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 몇 년 전에 불가능했던 것이 상황이 바뀌어 지금 가능해졌는지 등을 살핀다고 보면 된다.”
미기코브스키 “네 가지 요건에 맞는다면 누구나 YC에 들어올 수 있다.”

경쟁률을 보면 간단한 것 같지 않다.
미기코브스키 “그렇지 않다(웃음). 많은 사람이 YC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YC 졸업생들의 성공 사례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정도로 훌륭해야 YC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심사 단계에서 성장 목표, 매출 목표 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브래디 “사람들은 YC 졸업생들이 성공한 후의 이야기만 접하게 되지만 에어비앤비도 시작할 땐 지금의 에어비앤비가 아니었다. 드롭박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성공한 기업엔 소박한(humble) 과거가 있다.

YC가 선호하는 사업 영역이 있나.
미기코브스키 “YC에 들어가려면 소비재 회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YC는 B2B(기업 간 거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Software as a Service) 분야 스타트업에도 많이 투자했다. ‘부스티드 보드(Boosted Board)’ 같은 하드웨어 스타트업도 있고, ‘크루즈(Cruise Automation)’ 같은 자율주행차 회사도 있다. ‘붐(Boom Technology)’ 같은 우주·음속 항공 분야 스타트업도 있다. 인공위성 회사, 원자력 회사까지 있다. 모든 분야에 다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떠오르는 창업 트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미기코브스키 “블록체인, 암호화폐 스타트업이 많아지면서 관련 투자가 많아진 것 같다. YC는 트렌드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투자한 코인베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데, YC가 이 회사를 발굴해 투자한 게 2012년이었다. YC는 요즘 바이오 테크놀로지 회사를 많이 보고 있다. 머신러닝 회사에도 많이 투자했다. YC 멤버인 ‘아톰와이즈(Atomwise)’ 같은 회사는 인공지능(AI), 바이오 두 가지를 다 하는 회사다.”
브래디 “유전체학(genomics)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DNA 염기 서열을 구하는 비용이 저렴해졌다. 컴퓨팅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바이오 테크놀로지 분야에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중국·인도 등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보나.
미기코브스키 “우리가 투자한 인도 스타트업만 수백 개에 이른다. 그만큼 훌륭한 스타트업이 많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YC는 최근 중국 베이징에 YC 차이나를 설립하기로 했다. 실리콘밸리 밖에 설립하는 첫 번째 지사다. YC 차이나는 2019년부터 운영할 예정인데, 바이두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인 AI 전문가 치 루(Qi Lu)가 풀타임 파트너로 합류했다. YC 차이나는 모든 기존 YC 회사들의 중국 진출을 돕는 창구 역할도 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는 약하다는 인식이 있다.
미기코브스키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 방문하기 직전 일본에 들러 일본 스타트업 관계자를 만났다. 로보틱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바이오 테크놀로지 등 다양한 분야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상대적으로 SaaS 스타트업은 적었는데 이 분야도 성장 중이다.”
브래디 “구글, 페이스북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유명한 미국과 달리, 일본의 큰 회사들 중엔 하드웨어 회사가 많고 하드웨어 회사가 더 알려져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다. 일본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보니 굉장히 발전하고 있고 강한 기반을 가지고 있더라.”

한국 창업 생태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미기코브스키 “한국 로보틱스, 농업 기술, 물류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다. YC는 다양한 한국 스타트업과 함께하길 원한다.”
브래디 “사실 우리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배우려고 왔다.”
미기코브스키 “한국 스타트업과 1 대 1로 만나서 대화하는 ‘오피스 아워’ 시간을 갖는 것도 그래서다. 우리는 한국 스타트업을 돕길 원한다. 우리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 한국에선 공무원이 인기다. 안정보다 모험을 택한 사람들,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미기코브스키 “미국은 경력 변화를 관대하게 받아주는 문화가 있다. 과거에 실패했다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좋은 경험이라고 본다. 그런 문화가 한국에도 많아지길 기대한다.”
브래디 “25년 전 일본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일본엔 창업가가 없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큰 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는 압력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다. 훌륭한 창업가들이 많고 창업 에너지가 있더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에 다녔던 1995년을 돌아보면, 당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대부분은 투자은행(IB)이나 컨설팅 업체에 가고 싶어 했다. 창업하겠다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변화는 가능하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음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면 좋겠다.”
미기코브스키 “첫 번째로 하는 사람이 보상을 받게 마련이다(First one is the one get paid). 브래디는 20년 전 스타트업에 합류해 야후 1번 사원이 됐다.”

성공하는 창업가의 특징을 하나만 꼽는다면.
미기코브스키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브래디 “YC를 설립한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당신에게는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그만두거나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You have two options. You can either quit or get rich).”
미기코브스키 “50%는 매우 높은 확률이다(웃음).”
브래디 “또 한 가지 재밌는 건 대세에 따르지 않고(against the grain) 기꺼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좋은 창업가가 되더라. 많은 사람이 ‘이건 미친 생각이야’라고 비웃더라도 말이다.”

박원익 조선비즈 정보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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