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공간은 경험이다’ 저자,
이승윤
‘공간은 경험이다’ 저자,

온라인 시장이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시장이 몰락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다. 국내 대형마트 3사인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오프라인 점포 역시 매출 부진을 이유로 몸집을 줄이고 있다. 이마트는 울산 학성점, 인천점, 홈플러스는 동김해점, 부천 중동점 등을 정리해 나가고 있다. 이들 대형마트 3사는 오프라인 매장의 몸집을 줄이는 대신 온라인 비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디지털의 성장은 오프라인 공간의 몰락을 초래하는가? 오히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면 디지털 세상에서 흥미로운 오프라인 공간들이 더욱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 하라주쿠는 한국의 명동과 이대 상권을 합쳐 놓은 듯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뉴발란스 매장은 신발이나 운동복이 아니라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팔고 있다. 과거에 뉴발란스 같은 운동복을 파는 매장들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공간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했다. 이제는 다르다. 뉴발란스 하라주쿠점은 체험형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1층부터 3층까지 매장 곳곳에 제품들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구들이 설치돼 있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단순히 신발을 눈으로 보고 치수를 확인하기 위해 신어보지 말고 운동화를 신고 뛰어보라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1층부터 3층까지 다채로운 운동을 체험하며 올라가다 보면 맨 마지막 4층에 카페가 있다는 것이다.

4층에 올라가면, 운동장 트랙 느낌이 나는 카페가 등장한다. 그리고 곳곳에 뉴발란스의 운동화가 전시돼 있다. 카페는 건강식을 주 콘셉트로 한다. 오가닉 건강 음료와 뉴발란스-유명 셰프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들어낸 건강 식단을 판매하고 있다. 건강식이면서 가볍고 캐주얼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재미있는 점은 음식을 먹으면서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도록 특색 있는 휴대전화 충전 잭을 공중에 매달아놓은 것이다. 뉴발란스 카페를 방문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이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 그리고 경험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매장 곳곳에 만들어둔 체험형 기구를 통해 운동하고, 지치면 카페에 들러 휴대전화도 충전하고, 맛있는 건강식도 먹고 친구들과 건강한 음료도 마시며 쉬라는 거다.

최근 들어 뉴발란스처럼 제품을 넘어 소비자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해주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은 이제 다채로운 공간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고, 소비자가 해당 공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품 위주의 공간을 만들어 단순히 제품 서비스에 대해 직접적인 것만을 이야기하면, 팔기 위해 보여주는 경험만으로 끝난다. 우리 제품 서비스가 이야기하고 싶은 브랜드 콘셉트나 브랜드 포지셔닝을 면밀하게 분석한 후, 우리의 콘셉트나 차별화한 포인트와 관련된 것들을 체험을 통해 전달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해야만 한다.


제주도 안덕면에 위치한 NH농협이 ‘사계생활’이라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이승윤
제주도 안덕면에 위치한 NH농협이 ‘사계생활’이라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이승윤

뉴발란스는 우리가 좀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화나 운동복을 구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엔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고 체험시켜주는 공간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제품이나 서비스와 연관되고 브랜드 콘셉트와 잘 연결된 것들도 공간에서 함께 만들어 고객이 체험하게 하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하드웨어 공간을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했다면 요즘은 공간에 어떠한 콘텐츠를 집어넣어서 고객에게 어떠한 독특한 경험을 줄 것인지를 더 고민하는 시대다. 일상의 라이프 스타일 경험을 끊임없이 소개하는 잡지사가 공간을 만들면 어떠한 형태가 될까? 평범한 동네 은행이 지역 잡지를 만나서 독특한 문화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제주 안덕면의 평범한 동네에 자리 잡은 NH농협이 2017년 20년 만에 이전하면서, 제주도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사 ‘iiin(인)’이 비어 있던 공간을 여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제주도 지역 콘텐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잡지사가 만든 장소답게, 공간을 멋있고 세련된 공간으로 만든 게 아니라 공간에 담긴 축적된 경험을 다시 살려내는 방향으로 공간을 재탄생시켰다.

공간이 자리 잡은 곳의 마을 주민과 협의해 해당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살려야 할지 깊이 있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결과 만들어진 곳이 ‘사계생활’이라는 독특한 콘텐츠 문화 공간이다. 사계생활을 방문하면, 우선 과거 농협의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자 노력한 모습이 돋보인다. ATM(자동입출금기)이 자리 잡았던 곳을 그대로 입구로 만들었으며, 은행 업무에 사용된 접수대, 카운터 등도 보존했다. 마을 주민이 편하게 자주 방문한, 동네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 동네 은행의 모습을 가능한 한 살리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 결과, 마을 주민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편안한 방문 경험을, 낯선 곳에 방문한 여행객에게는 그 지역의 옛 기억을 살펴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은행 ATM이 있던 곳을 그대로 입구로 만들었다. 사진 이승윤
은행 ATM이 있던 곳을 그대로 입구로 만들었다. 사진 이승윤

단순하게 공간만 그렇게 꾸민 게 아니라 공간이 자리 잡은 지역 문화가 방문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오랜 기간 마을에 살아온 주민들을 큐레이터로 삼아서 주변 관광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주변에 방문할 만한 곳을 지도나 엽서 형태로 만들어 방문객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공간이 자리 잡은 곳 근처에 살고 있는 부녀회에서 작업한 것들을 굿즈 형태로 만들어 판매함으로써 방문객과 지역 문화, 지역민을 끊임없이 연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 공간에 방문해 보면 제주도를 사랑하고 오랜 기간 제주의 문화를 심도 깊게 연구해온 잡지가 공간을 만들었을 때, 진정성 있는 긍정적인 경험을 방문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잘 느낄 수 있다. 눈에 띄는 간판 하나 없는 이곳은 인스타그램의 ‘#사계생활’ 해시태그만 1600개가 훌쩍 넘는 제주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건축가나 공간을 세련되게 만들어나가는 인테리어 관련 전문가들이 그 공간을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당 공간을 방문한 사람에게 어떤 체험을 전달할 것인지, 그 안에 모여든 사람을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게 할 것인지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공간 설계를 해야 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 기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서로 적대적인 경쟁자의 시각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을 버려야만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느 것 하나만 해서 성공하기 힘든 세상이다. 온라인의 성장이 오프라인 공간의 매출 하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온라인이 흥미로운 공간을 탄생시켜 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과 Z세대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의 변화된 취향을 살펴보면, 다채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정교한 고객 경험 설계가 중요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20대 전후의 디지털 네이티브는 끝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자다. 이들은 온라인이 주는 편리함도 좋아하지만, 동시에 온라인이 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주는 오프라인 공간 역시 끝없이 찾아다닌다. 다양한 잡화를 파는 무지(Muji)와 코에(Koe) 같은 일본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가 평범한 매장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호텔을 지어서 그 안에 매장을 열기 시작한 것도, 렉서스가 자동차 없이 식당이 있는 독특한 경험 공간을 열어 고객에게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젠틀몬스터와 같은 패션 브랜드가 찾기 힘든 비밀스러운 곳에 매장을 열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평범한 오프라인 공간은 몰락하겠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오프라인 공간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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