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세계관으로는‘스타워즈 세계관’ ‘BTS 세계관’ ‘해리포터 세계관' 등이 있다. 사진 스타워즈 홈페이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라쿠텐TV
대표적 세계관으로는‘스타워즈 세계관’ ‘BTS 세계관’ ‘해리포터 세계관' 등이 있다. 사진 스타워즈 홈페이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라쿠텐TV

‘세계관’이란 용어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회학사전(사회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세계관은 ‘공통의 구조적 조건을 가지고 공통의 경험에 기초한 종교, 계급, 집단 성원들의 독특한 관점’이라고 한다. 산업혁명이나 사회 계급, 정치 혁명으로 종교가 쇠퇴하면서 세계를 보는 관점이나 삶의 방식을 통칭하는 용어로 정립된 단어다.

이 단어는 20세기 이후 각국에서 다양한 용례를 얻게 되었다. 초기에는 SF·판타지에서 ‘현재의 우리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시간대(미래나 판타지적 중세 등)를 배경으로 할 때 그 작품 속 세계의 ‘설정’을 뜻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를 필두로 게임의 세계로 이어졌다. TPRG는 보드게임처럼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각자 맡은 역할을 연기하면서 진행하는 게임이다.

대표적 세계관으로는 ‘반지의 제왕 세계관’ ‘스타워즈 세계관’ ‘스타트렉 세계관’ ‘해리포터 세계관’ ‘얼음과 불의 노래(왕좌의 게임) 세계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세계관’ 등 유명 작품에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소설을 비롯한 현대 스토리텔링 작품들의 근원은 신화와 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신교·일신교 신화, 영웅 전설과 건국 설화 등이 자연스레 구전 설화와 구전 문학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수메르의 전설적 왕을 다룬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은 설화와 신화들이 이에 해당한다. ‘인격신’을 등장시켜 신과 영웅을 사실상 ‘캐릭터’로서 다뤘던 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그리고 중세의 영국 아서왕 전설을 비롯한 각종 기사문학도 마찬가지다. 이런 ‘세계관’의 역사 속에서 스토리텔링, 혹은 서사의 ‘법칙성’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러시아 민속학자 블라디미르 프로프의 저서 ‘민담 형태론’이다. 1928년 출간된 ‘민담 형태론’은 방대한 양의 러시아 민담을 분석해 구성 요소를 분류하고 체계화했고, ‘구조주의’ 이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도 마찬가지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를 만들면서 캠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신화가 없는 미국이란 국가에 신화를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예로부터 ‘삼국지’나 ‘삼총사’ 팬들은 설정 마니아로 알려져왔고 셜록 홈즈 팬덤 ‘셜로키언’도 대단히 유명했지만, 현대에는 팬덤의 갑론을박이 세계관 해석에 더욱 흥미로운 역할을 한다. ‘닥터 후’ ‘스타트렉’ ‘트윈 픽스’  ‘X파일’ ‘에반겔리온’ ‘해리 포터’ ‘로스트’ 등이 그랬고, 방탄소년단의 ‘BTS 세계관’은 여러 콘텐츠에 조금씩 등장한 힌트를 팬들이 추정을 통해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픽션이 아닌 현실에 대해서도 팬덤(밀리터리, 철도, 역사 등 마니아)이 ‘설정’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일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팬덤의 ‘설정 놀이’가 때로는 원작 세계관으로 수렴되기도 하고 때로는 ‘팬픽’과 같이 팬덤 내에서 소비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해 이어져 내려가기도 한다.


세계관 만든다고 무조건 성공하지 않아

‘꼭 세계관을 먼저 만들어내야만 작품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 세계관을 먼저 만들고 작품을 창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초기엔 깊은 생각 없이 만들었던 부분이 나중에 보완되거나 아니면 작중의 수수께끼와 의문점에 대해 오랫동안 명확한 설명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말이다.

물론 초기부터 기본적인 설정이나 세계관은 필요하겠으나, 작품의 성공 여부를 초기 단계부터 예상할 수 없으니 완벽하게 짜인 ‘세계관’을 처음부터 만들어내긴 어렵다. 실제 세계관을 열심히 만들어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막상 작품이 실패해버려 후속편 제작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공중에 떠버린 사례는 흔하다.

당장 한국에서도 ‘OSMU(One Source Multi Use)’ 등의 단어가 유행한 이후 그런 작품들이 계속 생겨났다. 이미 인기있는 원작을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원 소스(One Source)’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처음부터 만들려는 시도들이었다. 하지만 한국보다 시장이 큰 미국과 일본에서도 처음부터 세계관을 완벽하게 만들기보단 보통 이미 성공한 원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데, 인기를 끈 원작조차 없이 세계관부터 자체 조달로 만드는 자신감이 실패로 이어진 일도 적지는 않았다.

세계관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일본의 전통 연극 ‘가부키’에는 ‘세계’와 ‘취향’이란 용어가 있다. ‘세계’란 ‘약속된 배경’, 즉 해당 내용의 시대·공간적 배경 및 인물 등과 같은 ‘설정’을 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는 모든 극의 내용까지 똑같지는 않다. 세계는 어디까지나 소재나 전제일 뿐이고 개별 극의 내용은 제각기 달라지는데, 그처럼 작가가 새롭게 구상하여 집어넣은 창작 부분을 취향이라고 부른다.

나중에 특정 ‘취향’이 인기를 끌면 유형화되면서 후대의 작품에 계속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엔 취향이 세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부키를 만들 때 고정된 세계 안에서 얼마나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 내는지, 즉 작가의 개성을 살려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일컬어진다. 전국시대 유명 장수 중 역사와 무관한 ‘정형적 캐릭터성’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취향’이 ‘세계’화되면서 일반화된 경우다.

일본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모티프를 따 영화 ‘거미집의 성’을 만들었다. 그 셰익스피어는 12세기 책 ‘브리타니아 열왕사’에 실린 전설적 왕의 일화를 참고하여 ‘리어왕’을 썼다지 않은가. ‘브리타니아 열왕사’는 또 그 앞 시대의 여러 책을 본 저자가 상상력을 버무려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데, ‘리어왕’ 외에 아서왕 전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만큼 재미있는 ‘세계관’을 짜낸 셈이 되었다. 한국에도 특정 역사물의 성취가 워낙 돋보여서 본래의 역사를 뒤덮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월탄 박종화 ‘금삼의 피’의 연산군이나 ‘다정불심’ 공민왕, 김동인 ‘운현궁의 봄’ 대원군의 인물상이 이후의 TV드라마와 영화에 미친 영향과 같이.

그러나 세계관을 잘못 도입하다가는 일종의 프로파간다가 되거나 심지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OSMU를 거창하게 내거는 대형 작품이 실패하는 일이 유독 많은 것도 세계관 자체를 일종의 프로파간다처럼 내걸면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본의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는 최근 ‘대정익찬회의 미디어믹스: 익찬일가와 참가형 파시즘’이란 책에서 일본식 OSMU의 초기 형태로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대정익찬회’가 내건 캐릭터 설정(세계관)이 존재했고, 다양한 OSMU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혔다. 대정익찬회는 일제시대 말기의 관제 국민통합 단일기구다.

‘영웅설화’나 ‘건국설화’가 바로 민족 의식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세계관과 프로파간다의 친화성은 쉽게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세계관’을 창작에 도입한다고 해서 항상 성공을 거두는 건 아니라는 점을 언급해두고 싶다.

선정우 코믹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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