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숙박 업체 ‘호시(hoshi)’는 서북부 해안 지역을 끼고 있는 옛 나라 지역인 이시카현 고마쓰에 있다. 이 회사는 717년에 세워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여관인 호시료칸(法師旅館)을 운영한다. 46대째 이어져 1000년 기업을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 등 테크 기업의 부상으로 전 세계 부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는 와중에도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발발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며 기업을 생존의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는 우량 기업의 미국 S&P500 지수 체류 기간이 1960년 평균 33년에서 2025년에는 14년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시처럼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적지 않다. 2019년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200년 이상 장수 기업은 일본이 3937개로 가장 많고, 독일(1563개)과 프랑스(331개)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전무했다. 한국은 창업 100년이 넘은 기업도 8개에 불과하다. 1896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이 125년 동안 두산그룹으로 성장한 게 가장 오랜 기록이다. 언론사 조선일보도 지난해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 최근에는 100년 기업의 폐업 소식도 전해졌다. 1912년 8월 15일 순수 민족자본을 바탕으로 설립된 보진재(옛 보진재 석판인쇄소)가 지난해 6월 폐업한 것.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종이 인쇄 수요가 감소한 탓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설립 100년 이상 기업은 일본이 3만3079개로 가장 많고, 미국 1만2780개, 독일 1만73개 순이다.

한국에는 왜 장수 기업이 적을까. 우선 산업화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6·25전쟁부터 멀게는 임진왜란·병자호란까지 크고 작은 전쟁과 외침을 여러 차례 겪다 보니 실생활에 밀접한 의식주 기업조차도 수백 년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장수 기업이 많은 일본이나 미국은 외침이 거의 없었다.

문화·정서적인 요소도 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가업 승계를 ‘부(富)의 대물림’이 아닌 ‘업(業)의 대물림’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핏줄 승계가 원칙이지만 이를 고집하기보다는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데릴사위나 양자로 들여 가업을 잇게 한다. 일본과 독일은 장인문화가 발달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장수 기업 연구 학자들이 얘기하는 성공 비결은 지속 가능 경영을 모토로 내걸며 최근 유행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도 맥이 닿는다. 미국 브라이언트대 경영학과 교수였던 고 윌리엄 오하라가 저서 ‘세계 장수 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2007)’에서 200년 넘은 20개 장수 기업의 공통점으로 꼽은 실험적 아이디어의 실패를 수용하는 관용적 문화, 환경 변화에 맞춰 쉽게 사업 다각화를 이룰 수 있는 수평적 의사 결정 체계는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대니 밀러 캐나다 HEC몬트리올 교수가 저서 ‘가족 기업이 장수 기업을 만든다(2009)’에서 세계 200대 가족 기업의 공통적인 운영 원칙으로 제시한 좋은 이웃⋅동반자 되어주기는 ESG의 S, 즉 사회적 가치 중시를 보여준다.


한국 상속세는 ‘사망세’ 지적도

개별 기업의 문화도 기업 수명을 좌우하지만 규제 등 주변 환경 역시 변수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높은 상속세율 등 과한 세금 부담, 노사 문제와 각종 규제, 가업 상속을 ‘부의 대물림’으로만 바라보는 반(反)기업적 정서 등이 장수 기업의 출현을 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인 헤르만 지몬 지몬-쿠허앤드파트너스 명예회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은 높은 상속세율 등 가업 승계를 가로막는 문제가 적지 않다”라고 밝혔다. 일부에선 한국의 상속세를 ‘사망세(death tax)’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을 보면, 한국의 최고 세율(50%)은 미국(40%), 영국(40%), 프랑스(45%) 등 주요 국가를 웃돈다.

장수 기업까지 생사의 위기로 내모는 팬데믹은 100년 기업의 가치를 재부각시키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커버 스토리에서 글로벌 장수 기업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살펴보고, 해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00년 기업을 꿈꾸는 경영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lus point

[Interview] 윌리엄 반 에그헨 에노키안협회 부회장
“51개 회원사 평균 ‘나이’ 328세…한국, 가업 승계 쉽게 제도 개선해야”

윌리엄 반 에그헨 에노키안협회 부회장 네덜란드 반 에그헨 그룹 전 최고경영자(CEO) 사진 에노키안협회
윌리엄 반 에그헨 에노키안협회 부회장 네덜란드 반 에그헨 그룹 전 최고경영자(CEO) 사진 에노키안협회

회원사의 평균 ‘나이’가 328세에 달하는 세계적인 장수 기업 모임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노키안협회’가 그 주인공이다. 에노키안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의 장남 ‘에녹’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불려간 사람으로 하느님 곁으로 가기 전 365세까지 장수했다. 이 협회는 1981년 설립됐다. 회원사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의 총 51개 사뿐이다.

‘이코노미조선’은 6월 22일 윌리엄 반 에그헨 에노키안협회 부회장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166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설립된 가족지주회사 반 에그헨 그룹의 전 최고경영자(CEO)다. 이 회사는 무역업과 금융업을 영위한다. 에그헨 부회장은 “에노키안협회에서 강조하는 장수 기업의 조건은 가문의 화합, 기업가 정신과 기술 혁신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협회를 소개해달라.
“51개 장수 기업을 하나로 묶고 1500년 이상의 경영 경험을 축적한 협회다. 설립자는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주류 제조 업체 마리 브리자드의 제라르 글로탱 CEO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회사는 약 20년 전 투자 펀드에 넘어가 더 이상 협회 회원사는 아니다. 그리고 이는 설립 200년 넘은 에노키안 회원사들조차 영원한 생존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협회 가입 조건은.
“회사 설립 200년이 넘어야 한다. 그리고 설립자의 후손이 회사를 소유해야 한다. 자본금이나 의결권의 50% 이상을 가진 자도 포함된다. 가족 구성원(또는 여러 명)의 후손 설립자는 회사를 운영하거나 회사의 일원이어야 한다. 설립 시기를 증명하는 공문서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회사가 여전히 역동적이고 재정적으로 튼튼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요 회원사는.
“1526년 설립된 이탈리아 총기 회사 베레타, 1768년 설립된 프랑스의 레볼 도자기, 1810년 설립된 프랑스의 완성차 메이커 푸조(설립 당시에는 제철소), 스위스 은행 롬바르드 오디에, 일본의 호시 등이다.”

200년 넘는 기업의 생존 비결은.
“독립적이며 가치 있는 지향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신중한 관리 체계와 모범적인 지배구조도 갖춰야 치명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특히 전쟁이나 자연재해, 팬데믹 등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어려운 시기를 거친 기업이 많다. 사회가 변화할수록 전문지식과 노하우가 기반이 된 혁신이 중요하다는 점도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체득하고 있다. 숙고된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는 얘기다.”

장수 기업을 키우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할 일은.
“국가는 가족 구성원에게 가업을 양도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특히 회사 양도 시 과도한 세금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장수 기업이 많은 국가는 세율을 적절히 조정하고 다양한 지원 제도를 갖추고 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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