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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K 그룹이 생산해 판매하는 소스들. 사진 LKK 그룹

김치찌개를 끓이다 간이 안 맞으면 라면수프를 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극약처방이긴 하지만 ‘라면화’된 한식 국물 요리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중화요리에서 라면수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굴소스’다. 볶음밥과 면요리, 닭요리 등 재료를 막론하고 굴소스와 어우러지면 ‘중화풍’의 감칠맛이 우러난다.

그런데 그런 굴소스가 130여 년 전 한 중국인의 실수로 우연히 탄생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중국 광둥성(廣東省)의 항구도시 주하이(珠海)에서 허름한 음식점을 운영하던 리금셩(李錦裳)은 굴을 이용한 요리 도중 불을 끄는 것을 깜박해 요리를 망쳤다. 하지만 완전히 졸아버려 걸쭉한 갈색으로 변한 굴요리에서 뜻밖에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걸 소스로 사용한 것이 굴소스의 시초다.

리금셩은 1888년 자신의 성과 이름 뒤에 가게를 뜻하는 ‘기(記)’를 붙여 ‘이금기(李錦記)’라는 이름의 양념 가게를 설립했다. 1892년 마카오로 건너간 그는 사업 범위를 광둥 지역 전체로 확대했다. 2대 경영자인 리슈남(李兆南)은 1932년 본사를 홍콩으로 옮기며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채비를 마쳤다.

창업 130년을 맞은 지금 이금기(LKK)그룹은 연간 30억달러(약 3조2400억원)의 매출과 1억5000만달러의 순이익을 거둬들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미국 LA에 생산공장을 두고 전 세계 100여 개국에 220여 종의 소스를 수출한다. 하루 평균 판매량은 100만 병에 이른다. 간판인 굴소스와 두반장소스(마파두부의 주원료), 간장은 물론 최근에는 한국식 고추장까지 생산하고 있다.

3대 경영자인 리만탓(李文達) 회장의 재산은 85억달러로 추정된다. LKK그룹은 지난해 7월 13억파운드(약 1조8700억원)를 들여 영국 런던 이스트칩에 위치한 스카이 빌딩을 매입해 화제가 됐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한 이 건물은 무전기와 모양이 비슷해 ‘워키토키 빌딩’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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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K 그룹이 지난해 7월 매입한 영국 런던의 스카이 빌딩(왼쪽). 사진 트위터 캡처


성공비결 1│ ‘최고의 맛’에 대한 집념

LKK그룹의 성공은 최고의 맛을 찾아내기 위한 창업자 일가의 집념의 산물이다. 창업자 리금셩에서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찰리 리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LKK그룹 CEO들은 예외 없이 식도락에 조예가 깊다. LKK 경영자의 음식 사랑이 히트상품 개발로 이어진 대표적인 예가 1996년 출시된 ‘해산물 요리 전용 양념간장’이다. 어느 날 골프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황홀할 정도로 맛있는 생선찜 요리를 맛본 리 회장은 당시의 소스 맛을 복원하기 위한 오랜 노력 끝에 관련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이금기 해산물 요리 전용 양념간장은 출시 18개월 만에 판매가 30배나 급증하며 같은 기간 LKK 전체 매출이 두 배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LKK는 2014년에 1년간 1억5000만 병의 관련 제품을 팔아치웠다.

맛에 대한 집념으로는 아들 찰리 리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는 2014년 기자회견에서 “요리사를 비롯한 고객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면 모든 음식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비결 2│ 엄격한 가족 경영 원칙

‘가족 기업’의 평균 수명은 20년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3대를 넘겨 이어질 확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런데 LKK가 4대 130년에 걸쳐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건 엄격한 규율을 제정해 가족 화목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사전에 차단했기에 가능했다.

LKK 가족 경영에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2대 리슈남 회장 시절 형제 2명이 회사 매각을 시도했고, 결국 리 회장이 다른 형제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분쟁은 종결됐다. 1980년대에도 회사 매각을 둘러싼 형제간 분쟁이 재현됐고, 3대 리만탓 회장이 다른 형제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두 번에 걸친 분쟁의 여파로 LKK는 2002년 가족위원회를 구성해 ‘약법삼장(約法三章)’이란 이름의 가족 규율을 제정했다. 여기에는 경영을 담당할 가족 구성원은 평직원으로 출발해 경험을 쌓게 하는 것과 배우자 외 다른 상대와 불륜이 발생할 경우 경영진에서 제외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성공비결 3│ 타협 없는 품질관리

LKK의 철저한 품질관리는 ‘100-1=0’이라는 구호로 대표된다. ‘먹거리를 100번 잘 만들어도 한 번 실수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창업자의 실수로 성공했지만,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모든 제품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과 표준화된 맛을 유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간판 상품인 굴소스의 경우 보통 다섯 차례(수확 전-수확 후-가공 전-가공 단계-가공 후)에 걸쳐 재료의 품질을 점검한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LKK의 굴소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비롯해 상하이 국제박람회, 항저우 G20 정상회의, 샤먼 브릭스 정상회의 등 중국에서 개최되는 굵직한 국제행사의 만찬에 공급되는 ‘국가 대표 소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013년 발사된 중국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 10호’에도 LKK의 소스 제품들이 납품됐다.


성공비결 4│ 화교 네트워크를 통한 국제화

LKK는 주요 국가별로 화교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현지 중식 애호가들이 자연스럽게 자사 소스 맛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1930년대에는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이 이금기 굴소스를 활용해 중국 요리 대중화에 일조했다. ‘화교들이 모인 곳에 이금기 굴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또 지역별 맞춤 생산을 통해 ‘이슬람교도를 위한 굴소스’ 등 종교·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식 소스를 판매하는 지역별 현지화에도 힘썼다. 우리나라에서는 짜장면의 재료인 ‘한국식 원스텝 춘장’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성공비결 5│ 장기적인 협력관계 구축

LKK의 기업 이념은 ‘사리급인(思利及人)’이다. ‘이익을 생각할 때는 그것이 타인에게도 미치도록 하라’는 뜻이다. LKK는 이를 바탕으로 사업에서 협력사의 입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을 좇기보다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회사에 이득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제품의 문제 발생 시 협력사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파트너에게 전가하지 않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홍콩 유통 업체 중에는 LKK와 협력관계를 50년 이상 이어오는 곳도 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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