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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세포라 매장에서 직원이 태블릿PC로 예약 고객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서울 마포구에 사는 이은빈(25)씨는 해외 여행을 갈 때면 세포라(Sephora) 매장을 빼놓지 않고 들른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다양한 브랜드의 화장품을 체험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화장품 유통 업체인 세포라 매장이 ‘여자들의 놀이터’로 불리는 이유다. 이씨는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갈 때도 세포라 매장을 들른다”며 “세포라가 한국에 진출하지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세포라가 프랑스에 첫 매장을 연 건 1969년이다. 설립된 지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20~30대 여성 소비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스 명품 그룹인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가 세포라를 인수한 1997년에만 해도 세포라는 54개 매장에 1500명의 직원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33개국에 2300여 개 매장을 가지고 있고 직원 수는 3만 명에 달한다.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이 소비자의 외면 속에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세포라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세포라가 미국에 처음 매장을 연 건 1999년이었다. 세포라가 선택한 곳은 미국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소호(SOHO) 지역이었다. 소호에서 성공해야 미국을 비롯한 북미 시장 전체로 확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제 세포라는 미국에서만 43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LVMH가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45% 정도가 세포라 매출일 정도다.

그런데 정작 세포라의 북미 지역 본사는 뉴욕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인 CB인사이츠는 세포라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이 부분에 주목했다. 뉴욕이 아닌 샌프란시스코에 북미 지역 본사를 둔 덕분에 세포라가 경쟁 업체들보다 기술 발전에 민감할 수 있었고, 디지털 혁신에도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심장인 실리콘밸리가 있는 곳이다. 세포라는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 ‘이노베이션 랩’이라는 새로운 실험 공간을 열었다.

세포라가 모바일 쇼핑 플랫폼을 처음 내놓은 건 2010년이었다. 경쟁 업체들에 비해 빠른 편은 아니었다. 대신 완성도가 훨씬 높았다. 세포라의 모바일 플랫폼은 단순히 제품 정보를 나열하는 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컨대 세포라의 ‘버추얼 아티스트(Virtual Artist)’ 애플리케이션(앱)은 제품을 사용해보지 않고도 소비자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한 뒤 립스틱, 아이섀도, 아이브로 등을 선택하면 제품을 사용한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뜨는 방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세포라의 혁신 덕분에 이제 여성들은 입술이 트지 않고도 50가지 색의 립스틱을 발라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세포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장 내에서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시연할 수 있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세포라의 ‘아이큐(IQ)’도 대표적인 소비자 맞춤 서비스다. 세포라 매장에 가면 컬러IQ, 스킨케어IQ, 프레이그런스IQ 같은 디지털 기기를 볼 수 있다. 소비자가 이 기기에서 피부색을 측정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입력하면 어울리는 제품을 추천해준다.

새로운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는 것도 세포라의 특징이다. 아마존 알렉사, 구글 홈 같은 인공지능(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세포라는 지난해 11월 미용 서비스 예약 등을 구글 어시스턴트(구글의 AI 비서 서비스)로 할 수 있게 했다. 앤 베로니크 바일락 세포라 유럽·중동지역 최고디지털책임자(CDO)는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덕분에 세포라는 디지털 혁신의 개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시장 개척, 젊은층 공략 주효

세포라는 애플 페이가 등장했을 때부터 망설임 없이 매장에 도입했고, 올해 3월에는 고객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세일즈포스와 손잡고 소비자의 과거 구매 이력을 분석해 화장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다. 또 세포라는 페이스북과 협력해 미용 서비스 예약이 가능한 챗봇을 개발했고, 10대가 많이 사용하는 킥(Kik)이라는 메신저 앱을 통해 소비자에게 1 대 1로 제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한 미용 서비스 예약은 기존 방식보다 이용자가 11%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세포라가 50년에 걸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를 벗어난 건 불과 20년 전이다. LVMH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명품 향수와 화장품 브랜드의 유통에 세포라를 활용했다. LVMH 화장품 브랜드의 해외 판매를 위해서는 세포라도 해외 진출이 불가피했다. 

LVMH로 주인이 바뀐 이듬해인 1998년 세포라는 포르투갈, 폴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프랑스와 가까운 유럽 지역에 진출했다. 1999년에는 미국에 첫 매장을 열었고, 2004년에는 캐나다에 진출했다. 지금은 세포라를 미국 기업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최근 세포라가 공을 들이는 건 아시아 시장이다. 세포라는 2005년 상하이에 첫 매장을 연 이후 중국에서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려 왔다. 작년 말 기준으로 중국 74개 도시에 22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지난 몇 년간 매장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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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라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들이 ‘프레이그런스 IQ’로 자신에게 맞는 향수를 찾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소비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른 밀레니얼(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을 집중 공략한 것도 주효했다. 세포라는 2016년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콘텐츠 스튜디오를 차렸다. 세포라 제품을 사용해서 화장한 뒤에 사진이나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든 사진이나 비디오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하면서 젊은층의 호감을 끌어내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인기가 많은 인플루언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올해 출시된 세포라의 립스틱 신제품 ‘샵립스토리스(#LIPSTORIES)’는 젊은 인플루언서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홍보 콘텐츠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다.


plus point

화장품 유통 업체가 스타트업도 키운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 스타트업 육성 시설인 ‘스테이션F’가 문을 열었다. 철도기지 건물을 개조한 스테이션F는 3만4000㎡ 규모에 1000여 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단일 시설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은 스테이션F에 사무실을 만들거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입주 기업들을 지원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곳에는 직접 투자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글로벌 기업 중에 특이한 이름이 있다. 바로 화장품 유통 업체인 세포라다. 세포라는 입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럭셔리 & 하이테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뷰티, 럭셔리 분야의 스타트업 성장을 돕고 실제 투자도 하고 있는 것이다. 세포라는 이를 위해 5000만달러 규모의 벤처 투자 펀드도 조성했다.

세포라가 스타트업 지원을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처음엔 화장품 분야의 여성 사업가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세포라 매장에서 유통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제품이 나오면 실제로 매장에서 판매도 했다. 유기농 스킨케어 브랜드 LXMI, 에센셜 오일 회사 비트루비(Vitruvi) 같은 곳이 세포라의 지원 덕분에 성장한 스타트업이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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