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와이어카드 본사. 사진 블룸버그
독일 뮌헨 와이어카드 본사. 사진 블룸버그

19억유로(약 2조5668억원)가 공중분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일이 실제로 독일에서 일어났다. 독일의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가 분식 회계 논란에 휩싸였다. 회계장부에서 자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9억유로의 출처가 불분명한 것. 2019년 1월 파이낸셜타임스(FT)와 독일 금융감독청(BaFin·바핀)에 들어온 익명의 제보로 밝혀진 내용이다.

2020년 4월 회계 법인 KPMG가 와이어카드를 회계 감사한 결과, 현금 잔고 중 일부인 10억유로(약 1조3482억원)가 확인 불가능하다고 밝히면서 이런 의혹은 점차 기정사실화됐다. 와이어카드는 자금을 싱가포르와 필리핀에 있는 해외 은행에 보관했다고 주장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6월 22일(이하 현지시각) 와이어카드는 19억유로가 없다고 인정했고, 6월 25일 독일 법원에 파산 신청했다.

와이어카드는 지난해 독일의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의 시가 총액을 넘어선 최초의 핀테크(fintech·정보 통신 기술이 접목된 금융) 기업이다. 2018년 독일 닥스(DAX) 30 지수에서 코메르츠방크를 대체하기도 했다. 와이어카드는 제도권 은행이 아닌 핀테크 기업으로서 비전을 보여준 금융 업계 세대 전환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번 사건으로 핀테크 업계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결정적 계기 세 가지를 분석했다.


계기 1│이미지 변신했다던 와이어카드, 요란한 빈 수레였나?

와이어카드는 1999년 독일 뮌헨에 설립된 전자 결제 업체다. 상점·온라인·모바일상에서 애플페이나 페이팔처럼 신용카드나 전자 결제를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설립 초기 와이어카드의 고객은 포르노와 도박 웹사이트 이용자가  주를 이뤘다.

KPMG 컨설턴트 출신 마르쿠스 브라운 이 2002년부터 와이어카드 대표직을 맡으면서 기업 규모가 커졌다. 와이어카드는 페덱스, 이케아, 싱가포르 에어라인 등 글로벌 고객사와 계약하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와이어카드가 발표한 재무제표상 매출은 2004년부터 2018년까지 50배 뛰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0배 폭증했다. 와이어카드는 3만3000개의 중견기업 및 대기업과 17만 개의 소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실적 부풀리기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FT가 와이어카드의 내부 문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와이어카드의 실질 고객군은 소규모에 불과했다. 2017년 상반기 10만7000개의 와이어카드 고객 명단을 보면, 매출의 절반이 오직 고객사 100개에서 나왔다. 수천 개의 고객 이름이 중복됐기 때문이었다. 고객군의 대다수는 소액 결제자였다. 브라질의 6만7000명이 900만유로(약 121억원) 매출에 기여했다. 6개월 동안 3만 명의 거래액이 170만유로(약 22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포르노 사이트 이용 고객이었다고 알려졌다.


분식 회계 논란으로 사퇴한 마르쿠스 브라운 전 와이어카드대표. 사진 블룸버그
분식 회계 논란으로 사퇴한 마르쿠스 브라운 전 와이어카드 대표. 사진 블룸버그

계기 2│EY 회계 감사 능력 심판대로

10년 동안 와이어카드 회계 감사를 담당한 회계 법인 어니스트앤드영(EY)은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 매출 기반이 부실했던 와이어카드의 재무 구조를 분석하지 못한 것이다.

그간 와이어카드는 최대 10억유로의 현금이 싱가포르 OCBC은행에 있다고 주장했다. FT 보도에 따르면, EY는 2016~2018년 OCBC은행에 직접 연락해 현금을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와이어카드가 제공한 문서와 캡처본에 의존했다.

와이어카드는 지난해 말 OCBC은행에서 필리핀 은행 두 곳(비디오유니뱅크·뱅크오브필리핀아일랜드)으로 현금을 옮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와이어카드가 감사를 의뢰한 회계 법인 KPMG가 올해 뒤늦게 필리핀 은행의 계정을 확인한 결과, 관련 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EY는 6월 26일 독일의 주주 단체 SdK에 감사인으로서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형사 고발을 당했다. 지난해 와이어카드 투자를 주도한 소프트뱅크 임원 악샤이 나헤타(Akshay Naheta)도 트위터에 “EY가 보여준 역량과 책임 부족에 당황했다”면서 “공공·민간 기업의 모든 이해 관계자를 보호하는 조직으로서의 업무에 실질적으로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계기 3│독일, 민간 주도 금융 감독 능력 ‘빨간 불’

설상가상으로 독일 금융 당국은 의혹이 제기된 초반에 오히려 와이어카드를 감쌌다. 해당 사안을 보도한 FT 기자는 주식시장 조작 혐의로 조사받았다. 금융 당국은 두 달간 와이어카드의 주가 보호를 위해 공매도를 금지하기도 했다.

독일의 민간 금융 감독처 ‘재무보고 집행패널(FREP)’의 역할론에도 의구심이 제기됐다. 독일은 일차적으로 민간 중심의 FREP가 회계 감독한 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만 공적 감독기구에 보고해 금융감독청이 조사에 나선다. FREP는 2001년 엔론 파산을 계기로 대대적인 회계 감독 개편 과정에서 탄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같은 이원적 회계 감독 구조 덕에 독일은 ‘기업 환경이 좋은 곳’으로 불렸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독일의 금융 당국은 회계 감독 시스템 전반을 점검할 계획이다. 우선 상장 기업 회계를 1차 감독하는 FREP에 대한 업무 위임 계약을 해지했다. FREP는 적은 예산과 15명의 직원만 있어 사실상 업무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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