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적절한 변화가 있어야 기업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지금 잘 나간다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간 유지는커녕 생존하기조차 어렵다. 변화는 ‘사서 하는 고생’이다. 고난의 길이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 공을 들인다면 그 만큼 성장의 기회가 열린다. 여기 그런 기업들이 있다. 푸른중공업, 댐코, 스카이007이 바로 그들이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기술력 갖춰 위기 돌파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 한때 잘나가던 수많은 기업이 쓰러졌고, 쓰러지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위기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기업도 있다. 미리 위기를 감지하고 변화를 모색한 기업들이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는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그 열쇠를 잘 찾은 기업은 위기를 극복했고, 그것을 찾지 못한 기업은 무너졌다.

‘한 우물 파기’, ‘외길 30년’ 등도 이젠 옛말이 됐다. 기존 사업에서 탈피해 업종을 완전히 바꾸거나 새로운 품목·업종을 추가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 됐다. 삼성그룹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수종사업 찾기에 혈안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삼성, LG 등 대기업이 신사업 추진을 본격화한 가운데 중소기업들도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변화에 성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사업 전환 등을 통해 성공한 기업들의 경우 공통 DNA를 가지고 있다. 그 공통점을 따라가다 보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성공 DNA 1

가장 잘 나갈 때 미래를 걱정하라

위기가 닥쳤을 때 변화를 모색해선 성공할 수 없었다. 변화에 성공한 기업들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 미래를 걱정했다.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푸른중공업의 조선소. 대형 선박 블록이 제작되고 있는 한쪽에 미끈한 모양의 요트가 제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재 5척의 요트가 건조 중이다.

1998년 설립된 푸른중공업이 요트 개발에 나선 것은 2004년부터다. 선박용 부품 아연도금과 파이프 가공, 선박용 블록을 생산하던 푸른중공업은 한국 조선 산업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김봉철(55) 사장은 때 이른 걱정이 한창이었다.

“당시 제조업 중에서 조선업만큼 호황을 누린 업종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런 성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었죠. 10년 먹고 살기 힘들다고 봤어요. 잘 나가던 그때 업황이 하락하면 뭘 먹고 살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김 사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요트였다. 그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는 요트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전 세계 요트 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고, 고급 요트는 불경기에도 전망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특히 레저용 선박은 주문 기반의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특성상 대기업의 진출이 어렵다는 점도 감안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조선업의 침체로 한때 148억원에 달했던 선박 블록 관련 매출은 2008년 40억원으로 급감했다. 미리 위기에 대처하지 못했던 국내 중소 조선사들이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김 사장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는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면 다른 중소 조선사들처럼 망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요트 시장은 2000년 이후 매년 15~30% 이상씩 꾸준히 성장해 왔다. 올 초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2/4분기부터 30m 이상의 메가급 요트 시장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요트 시장은 2012년 75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푸른중공업은 요트 사업으로 활기에 차 있었다. 현재 건조 중인 요트 한 척의 가격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억원에서 20억원 정도다. 순수익도 20% 이상으로 부가가치가 높다. 오는 2009년 말까지 요트 관련 매출은 6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2011년이면 18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통업으로 일관해오다 야외용 LCD 패널과 유무선 신용카드 단말기를 제조해 해외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댐코도 마찬가지다. 1990년 설립된 댐코는 삼성SDI 등 국내 대기업의 상업용 LCD 패널과 인쇄회로기판을 유럽 지역에 수출해 온 기업이다. 수출 규모는 2007년 131억원에 달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의 독점판권까지 확보하고 있었고, 오랜 해외 영업으로 인해 충분한 네트워크도 구축한 상태였다.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때 1000만달러 수출탑까지 수상한 댐코는 2007년부터 새로운 사업 진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윤은석(45) 사장은 “제조 기반 없이 수출만 하다 보니 갈수록 수익성이 저하됐다”며 “자체적으로 개발·제조한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해야만 장기적인 비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기존 사업의 경우 매출은 높았으나 남는 게 없는 장사였어요. 지난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40억원에 불과합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 지난해 문을 닫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직접 제조하는 데다 수출도 하기 때문에 마진율이 높습니다.”

주름개선·미백·자외선차단 등 기능성 화장품 분야 1위인 스카이007은 화장품만을 판매했던 인터넷쇼핑몰이었다. 인터넷쇼핑몰 오픈 초기에는 커피, 차 등과 소형가전제품을 팔기도 했다. 하지만 화장품이 입점한 후 판매가 급증하자 화장품 전문 인터넷쇼핑몰로 거듭났다. 유통단계를 줄이다 보니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고, 이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승승장구했다. 단골회원만 26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쇼핑몰에 화장품을 공급해주던 국내 화장품 기업이 제품 공급을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치열한 가격경쟁 때문에 이익도 점차 줄어가는 추세였다.

곽형근(40) 사장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고 있던 중 고객들이 스카이007 제품을 만들어 보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며 “판매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화장품 제조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화장품 원료는 정해져 있어요. 프랑스와 일본에서 고급원료를 수입했어요. 기술진입장벽도 거의 없는 편이어서 직접 생산도 가능했지만 인프라를 갖출 자금이 없었어요. 그래서 생산은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에 맡겼습니다.”

스카이007은 2007년 23억원, 2008년 3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매출액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아니지만 이익률은 2006년 2.3%에서 2008년 15% 이상으로 대폭 성장했다.

스카이007은 현재 춘천 지역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10년 공장이 완공되면 외주 생산을 70% 수준으로 줄일 방침이다. 그는 핵심 제품은 춘천공장에서, 보완 제품은 외주 생산할 계획이다.

성공 DNA 2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에서 틈새시장을 노려라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자신들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한 것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술력과 장비 등 인프라도 적극 활용했다. 이 때문에 신규 사업을 한결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김봉철 사장은 요트 사업을 시작하기 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여러 분야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주종목인 ‘배’로 돌아왔다. 김 사장 자신도 이미 다양한 전문가적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었다. 해양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 조선소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상선 사업에 몸담기도 했다.

푸른중공업은 그동안 대기업의 협력사로 도금과 블록 제작을 하면서 선박 제조에 필요한 관련 노하우를 하나둘씩 쌓아왔다. 상선은 바로 제작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 사장에겐 요트 시장이 더 구미가 당겼다. 그동안 선박 건조 전문업체로서 오랫동안 쌓은 노하우에 남다른 아이디어를 접목해 요트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김 사장은 “요트 산업은 21세기 레저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급성장이 예상되는 분야였다”며 “조선 산업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가 요트 산업은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였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요트를 제조하는 업체는 거의 없었다.

푸른중공업은 대다수 요트 업체가 만드는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선이 아닌 알루미늄과 스틸로 요트를 제조하고 있다. 기존 FRP 요트 제조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기존 업체와 달라야 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요트들은 FRP로 만들어졌어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해외 선진 업체도 있더군요. 똑같은 방식으로 요트를 만들었다간 시장에 진입조차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강점을 가진 스틸과 알루미늄으로 요트를 만들기로 했어요.”

스틸로 만든 메탈크루즈 요트는 FRP 요트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소요되지만 환경오염이 없고 선주 주문에 따라 디자인을 쉽게 바꿀 수 있다. 푸른중공업은 국내 처음으로 2007년 메탈크루즈 요트를, 지난 1월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요트를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요트는 선주가 디자인을 먼저 결정하면, 디자이너와 선주가 제작업체를 선정한다. 푸른중공업은 세계적인 요트 디자이너인 오버린이 자신이 디자인한 요트를 만들 수 있는 빌더로 인정했다. 푸른중공업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LCD 패널을 수출했던 댐코도 LCD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윤은석 댐코 사장은 “17년 동안 쌓은 수출 경험을 통해 마케팅은 자신 있었다. 다만 어떤 제품을 개발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댐코가 선택한 것은 유무선 신용카드 단말기와 야외용 LCD 패널이었다”고 말했다.

“LCD 패널을 수출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시장의 요구를 잘 알고 있었어요. 당시 시장에서는 야외에서도 잘 보이는 LCD 화면을 원했어요. 야외용 LCD 패널은 대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기술만 차별화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싶었죠.”

시장 흐름을 빨리 읽어내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댐코는 대기업이 생산하는 일반 LCD 화면을 후가공해 외부에서 빛이 반사돼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광학적으로 보완한 제품 개발에 나섰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수리공장을 운영하면서 관련 기술을 축적하고 있던 댐코로서는 기술 개발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댐코의 야외용 LCD 패널인 솔라뷰는 90% 이상이 유럽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솔라뷰와 함께 새로운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신용카드 단말기. 댐코가 타깃으로 삼은 제품은 흔히 사용하던 신용카드 단말기가 아니었다. 기존의 단말기는 마그네틱이 접착된 부분을 세로 또는 가로로 긋는 방식이다. 기존 단말기의 경우 마그네틱 손상뿐만 아니라 카드복제로 인해 개인정보가 누출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유럽이나 남미는 카드를 삽입시키는 인서트형이다. 인서트형은 이러한 단점을 개선시킨 것이다. 윤은석 사장은 “인서트형 단말기가 보편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국내 단말기 업체들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시장을 개척한 반면 댐코는 소품종 대량생산에 집중했다. 현재 댐코의 단말기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동일한 모델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인 스카이007의 가장 큰 경쟁력은 온라인 유통체계다. 곽형근 사장은 “최고의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가는 타사에 비해 2배 이상 비싸지만 소비자가격은 오히려 50% 저렴하다”며 “이것은 1단계에 그친 유통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형 화장품 업체는 대리점과 전문점으로 이어지는 4단계의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이런 구조가 40~50년 이상 굳어져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죠. 이런 유통구조를 혁신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봤죠.”

스카이007의 경쟁력의 원천은 온라인 유통뿐만 아니라 10개 회사와의 협업에서 비롯된다. 스카이007이 이들 10개 회사와 공동으로 생산하는 품목은 700여 가지에 달한다. 각 회사마다 품목이 겹치지 않도록 세분화돼 있다. 곽 사장은 3명의 직원과 7명의 화장품 대리점 사장들에게 유통망과 제조기술을 전수해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혼자서는 대형 화장품 업체를 이길 수 없어요. 각 회사마다 전문성을 키워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했죠. 앞으로 이런 회사를 100개 정도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면 어떤 화장품 업체와도 경쟁할 수 있을 겁니다.”

성공 DNA 3

전문 인력 확보·강한 추진력이 성공 키워드

변화에 성공한 기업의 CEO와 조직은 강했다. 변화를 위한 추진력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이 공통점이었다. CEO들은 다양한 전문가적 지식을 갖추고, 목표를 향해 정면 돌진했다. 적극적인 추진력이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김봉철 사장이 국내 기술력으로 힘들었던 신사업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추진력이 기반이 됐다. 김 사장이 스틸과 알루미늄으로 요트를 만든다고 나서자 주위의 반대는 극심했다. “돈 안 되는 사업 왜 하려느냐”, “알루미늄과 쇠로 요트를 만들다니 미친 짓이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김 사장은 오히려 더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 사업을 밀어붙였다.

기존 사업을 통해 선박 관련 기술 노하우를 다졌지만 요트 제작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어려움도 많았다. 기존 인력과 설비를 활용했지만, 요트 제조 전문 인력 확보가 가장 시급했다. 국내에는 이렇다 할 전문가도 없었다.

임시로 호주의 요트 전문가를 영입해 일단 시제품 요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키는 대로 했지만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김 사장은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요트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느꼈다며 “기존에 상선 만들 듯이 하면 요트를 만들 수 없었다. 아주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시제품 요트를 만들고 나서 바이어를 초청했다. 하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선진 업체에 비해 한참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능상 아무 문제가 없어도 인테리어에서의 약간의 결함은 반품 사유가 될 정도다. 손끝이 여물지 않고서는 단기간에 습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는 바이어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그의 열정이 먹혀들었다. 김 사장으로부터 주말에 메일을 받은 독일의 한 바이어가 “휴일 없이 일하는 그 열정이면 충분하다”며 30년 경력의 캐나다 요트 전문가인 스토얀씨를 소개해 준 것이다.

푸른중공업은 스토얀씨를 기술이사로 확보한 후에야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 사장은 그의 연봉이 사장, 부사장의 연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며 웃었다.

7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외국 업체에 연수를 보내 도색 등 핵심공정 기술도 확보했다. 가장 중요한 인테리어 부문은 40여 명으로 전담팀을 구성했다. 아웃소싱으로는 해외 바이어가 원하는 인테리어 품질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7년 요트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푸른중공업은 그해 9월 43피트급 요트 한 척을, 12월에는 62피트급 파워요트 한 척을 수주 했다. 국내 메가급 요트 시장에서는 푸른중공업이 거의 유일하다. 김 사장은 “100억원짜리 메가급 요트를 만들어 세계적인 요트 전시회에서 참가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제조에 나선 곽형근 사장은 유통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화장품 제조는 전혀 몰랐다.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파악하기 위해 제조업체와 연구소를 찾아다녔다. 이때 만난 사람이 황보영 연구실장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보자는 곽 사장의 열정에 황 실장이 동참을 결정했다.

우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기존 화장품 업체와는 달라야 했다. 단골회원도 있었고, 유통망도 확보돼 있었다. 제조업을 한다고 해서 자체적으로 완벽한 생산설비를 갖출 필요는 없다. 아웃소싱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았다. 그는 “시골 부모님의 땅을 담보로 잡혀 대출을 받기도 했고, 친인척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사채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 전환 초기를 ‘눈물의 3년’이라고 했다.

시설 투자에 대한 초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품 콘셉트와 디자인은 직접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주 가공했다. 대부분의 자금은 신제품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주름개선이나 미백 등 기능성 화장품과 남성용 화장품 개발에 주력했다. 때마침 동물성 오일이 문제로 대두되자 천연소재에 대해 고민하던 끝에 해양 소재 제품으로 콘셉트를 잡고 기능성 화장품 개발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색조전문 브랜드 ‘삐아’와 남성용 화장품 ‘레쉬트’였다.

고객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믿는 곽 대표는 판매자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항상 생각했다. “인터넷쇼핑몰은 신뢰가 중요합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온라인 매장은 화면으로 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죠. 신뢰를 잃은 한 명의 고객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모든 아이디어는 고객에게서 얻는다. 스카이007은 제품 개발 1년 전부터 사전 조사를 시작해 고객의 요구를 파악했다. 출시 전에는 1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테스트도 실시했다. 가격, 품질, 디자인 등에서 95점 이상을 받은 제품만을 시장에 내놨다. 최근에는 고객 인사이트를 통해 고기능성 한방 화장품도 출시했다.

해외 업체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을 1년6개월 만에 제조부터 수출까지 뚫은 댐코도 기술 개발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댐코는 2007년 5월 연구개발 인력 5명을 채용해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나섰다. 해외 수출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국제인증인 ‘PCI-PED’ 인증을 받아야 했다. PCI-PED는 비자카드·마스터카드 등이 정한 단말기 보안 규격으로 해킹을 방지하는 고도의 보안 체계다. ‘PCI-PED’ 인증 자체가 최고의 기술력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쉬운 길’을 찾았다. 원천기술을 확보한 포르투갈 업체와 기술제휴를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그 업체에서 제조·판매 라이선스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윤은석 사장은 이것이 오히려 약이 됐다고 말한다.

“기반 기술이 없었지만 모험을 강행하기로 했어요. 남의 기술을 쓰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라고 연구원들을 독려했어요. 속으론 떨었지만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지요. 회사 근처 모텔에서 자면서 거의 6개월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죽기 살기로 했어요.”

2008년 결국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세 번째였다. 개발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양산에 들어갔다. 기존 유럽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판매망 구축에 들어갔다.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마이애미, 중동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탄탄한 마케팅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중남미에 3년간 1200만달러, 이탈리아에 2200만달러, 이란에 660만달러 등 지속적으로 수출 계약이 이뤄졌다. 개발 착수에서 수출제품 선적에 이르기까지 1년 반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연구개발 능력과 조직력, 그리고 마케팅 등 삼박자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2007년 131억원이던 매출액은 2008년 160억원으로 증가했다.

장시형 기자 / 사진 : 이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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