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이 8월8일 개막 팡파르를 울리고 24일까지 열전에 돌입한다.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각 종목에서 자웅을 겨루는 올림픽이지만 또 한쪽에서는 기업들의 소리 없는 각축전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올림픽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포츠인 만큼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때문에 올림픽은 총성 없는 마케팅 전쟁터로 불린다. 스포츠 마케팅은 브랜드 홍보를 선점하는 필수적인 수단이 됐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국내 대기업들 상당수가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거나 지렛대로 삼기 위해 너도나도 뛰어든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다. 자사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아 올림픽 무대를 밟는 경우도 적지 않다. 태극전사들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기 전, 각각 소속팀이 있기 마련이다. 금메달을 따는 태극전사의 소속팀은 자연스레 소개되며 광고효과가 절정에 이른다.

7월15일 현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종목 중 남자축구(18명), 남녀하키(각 16명) 등을 제외하고는 국가대표 선수명단이 확정됐다.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 대학교 등에 소속된 선수들이다. 기업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기업은 역시 삼성그룹이 제일 많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한국의 전체 출전 선수 267명 중 34명이 삼성 소속이었다. 이번에도 아테네 올림픽과 엇비슷한 수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뒤 재미난 통계로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총 9개 종목 34명의 선수를 파견한 삼성은 탁구, 배드민턴, 태권도, 레슬링 등 4개 종목에서 금4, 은3, 동1 등 총 8개의 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한국이 금9, 은12, 동9로 종합 9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삼성의 선전은 절대적이었다.

삼성이 획득한 메달을 국가별 순위에 견주면, 세계 18위인 브라질(금4 은3 동3)에 이어 종합 19위. 입단이 확정된 레슬링 정지현의 금메달까지 계산하면 금메달 5개로 16위가 된다. 특히 삼성그룹 계열사 삼성생명은 아테네 올림픽 탁구와 레슬링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따내며 우리나라가 종합 9위의 성적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삼성생명만으로도 전체 202개 국가 중 32위에 해당되는 놀라운 성적이었다.

삼성그룹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5개

삼성그룹은 올림픽이 끝난 직후 고생한 선수들의 주머니를 가득 채워줬다. 아테네 올림픽에 참가한 34명 전원에게 특별격려금을 주는 통 큰 행보를 보인 것이다. 금메달 수상자에게는 1억원, 은메달과 동메달 수상자에게는 각각 5000만원과 3000만원씩이 주어졌다. 삼성은 또 메달은 따지 못했으나 아시아 최초로 단체전 본선에 진출한 승마선수들에게 2000만원씩의 특별격려금을, 마라톤 이봉주 선수 등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1000만원씩을 지급했다.

삼성은 팬층이 두터운 축구, 야구 등 인기 종목뿐 아니라 레슬링, 육상, 탁구, 배드민턴, 승마 등 비인기 종목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개 종목, 21개 스포츠단 500명 규모의 선수를 거느리고 있다. 이는 오직 극소수 인기 종목에만 투자하는 일부 재벌그룹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삼성스포츠단 고위 관계자는 “연간 스포츠 부문 투자비만도 6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삼성은 인기 종목보다는 팬들이 없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더 많다. 삼성그룹의 베이징 올림픽 출전 선수 현황을 보면 삼성증권 이형택(테니스), 삼성전자 승마단 최준상(마장마술), 삼성전자 육상단 이봉주·이명승·이은정(이상 마라톤)·박칠성·김현섭(이상 경보), 삼성전기 정재성·이용대·이경원·이효정·한상춘(이상 배드민턴), 삼성생명 유승민·방미영(이상 탁구), 정지현·김정섭·김효섭·김종대(이상 레슬링), 이미선·박정은·이종애(이상 여자농구), 삼성에스원 손태진(태권도), 삼성야구단 진갑용·오승환·박진만·권혁(이상 야구) 등이다.

세계 랭킹 55위 이형택은 상위 56명에게 주어지는 출전권을 따내 올림픽 4회 연속 출전 선수가 됐다. 최준상은 한국 마장마술 선수로는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그는 올림픽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소속 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열린 11개 국제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 탁구·레슬링 열정 상당

지난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4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한국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내년이 불혹이다. 첫 도전인 애틀랜타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이후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봉주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마지막 도전장을 던진다.

배드민턴 남자복식 정재성·이용대(삼성전기), 혼합복식 이용대·이효정(삼성전기)이 금메달을 노린다. 삼성전기는 지난 1996년 배드민턴팀을 창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등 이 종목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남자탁구 간판 유승민과 남자레슬링의 ‘작은 거인’ 정지현은 2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그레코로만형 60㎏급 금빛 낭보를 전했던 정지현은 한때 66㎏급으로 체급을 올렸다가 큰 좌절을 겪었다. 2006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한 것. 결국 몸무게를 감량한 뒤 원래 체급으로 복귀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고교시절 레슬링과 인연을 맺어 레슬링단에 관심이 많고 애정도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회장은 레슬링뿐만 아니라 탁구에도 열정이 상당하다는 후문이다. 1978년 제일합섬과 제일모직에 남여탁구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탁구가 ‘만리장성’ 중국 탁구에 번번이 무너지자 회사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창단했다는 전언이다. 지금은 삼성생명이 탁구단의 운영 주체다. 올림픽 막판에 벌어지는 태권도 -68㎏급 손태진은 올림픽세계예선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금메달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그룹에 이어 은행권도 눈길을 끈다. 여자프로농구팀을 운영 중인 신한은행은 정선민을 비롯해 최윤아, 진미정, 하은주 등 4명이 태극마크를 달았다. 스타플레이어들을 대거 보유해 비공식 명칭 ‘레알 신한’으로 불릴 만큼 신한은행은 무적함대다. 2007 겨울리그 통합우승에 이어 단일리그가 첫 도입된 2007~2008시즌에도 정규리그와 챔피언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년 연속 완벽한 챔피언이 된 셈이다.

KB국민은행은 여자농구, 사격 등 2종목에 총 3명의 선수를 파견한다. 여자농구는 김영옥, 변연하 등 2명, 사격은 25m 권총에 안수경이 출전한다. 안수경은 당초 소속팀 없이 베이징 행을 확정지었으나 곧 입단했다. KB국민은행 사격팀은 1976년 창단됐고, 현재 소속 선수는 10명이다.

우리은행은 여자농구 김계령, 사격 이보나 등 총 2명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사격 여자 더블트랩 은메달 및 트랩 동메달을 땄던 이보나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트랩에 다시 한번 출전, 금빛 과녁을 조준한다. 우리은행 사격팀은 선수가 11명, 1978년 창단했다. 기업은행은 10m 공기소총 김찬미가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유일하다. 기업은행 사격팀은 2004년 재창단됐고, 소속 선수는 12명이다. 

하나은행은 경쟁 은행들이 여자농구팀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남자)팀을 오랫동안 지원하고 있다. 일종의 네이밍 마케팅이다. 충남체육회가 실질적인 주인이지만 1999년부터 연간 예산의 75%를 지원하는 하나은행의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빈다.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은행이 운영의 주체인 것으로 오인할 개연성이 높다. 남자대표팀 12명 중 4명이 하나은행 유니폼을 입는 선수들이다. 윤경민을 필두로 이창우, 고경수, 김태완 등이 그들이다.

핸드볼 대표팀 형은 두산, 동생은 하나은행

두산그룹 역시 남자핸드볼팀을 운영 중이다. 베이징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선수는 ‘핸드볼 황제’ 윤경신을 비롯해 박중규, 정의경 등 3명이다. 윤경신은 12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7월부터 두산 소속이 됐다. 윤경민(하나은행)과는 형제지간이다. 두산 핸드볼팀은 지난 1991년 11월 경월 소속으로 창단, 1993년 두산그룹으로 편입됐다. 두산그룹은 이외에도 야구 5명, 남자양궁 1명이 올림픽에 출전한다. 때문에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는 두산 선수는 총 9명. 야구는 임태훈, 김동주, 김현수, 고영민, 이종욱 등 5명이다. 양궁에서는 이창환이 두산중공업 유니폼을 입고 있다.

메달 효자 종목은 양궁이 대표적이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2005년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으로부터 대한양궁협회 회장직을 대물림했다. 정 회장은 1985년 양궁협회장에 취임한 뒤 양궁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다. 양궁은 정 회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을 휩쓸었다. 양궁협회는 현대차로부터 연간 상당한 금액을 지원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자양궁 대표팀 3명 중 맏언니 주현정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모비스 소속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기아자동차는 야구에서 한기주, 이용규 등 2명이 대표팀에 발탁됐다.

남자체조 양태영, 유원철 등 2명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시키는 포스코건설은 포항제철(현 포스코) 시절인 1995년부터 계속 체조를 후원해오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2004년 10월 문을 닫는 경북도청 남자체조팀을 인수해 체조단을 창단했다. 양태영은 4년 전 아테네 올림픽 개인종합에서 심판의 결정적 오심 탓에 금메달을 도둑맞고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번에 4년을 절치부심, 통쾌한 설욕에 나선다. 박득표 대한체조협회 회장은 포스코 사장과 포스코건설 회장 출신으로 지금은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배드민턴 사랑이 남다른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 덕분에 대교도 배드민턴팀을 창단했고 이번에도 태극마크를 배출했다. 전재연, 하정은, 황유미 등이 그들이다. 강 회장은 1997년 오리리화장품 해체로 갈 곳이 없던 방수현을 데려오면서 아예 팀을 창단했다. 이후 배드민턴계에서 보폭을 넓히며 왕성하게 활동해 배드민턴협회장, 아시아배드민턴연맹 회장을 거쳐 2005년에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 소속의 여자탁구 대표팀 김경아와 당예서 등 2명이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김경아는 만리장성을 넘을 여자탁구 에이스, 당예서는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다. 그레코로만형 66㎏ 김민철은 ‘천마표 시멘트’로 유명한 성신양회 소속이다. 성신양회는 1983년 레슬링팀을 창단,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하이원은 여자유도 김경옥 -52㎏, 정경미 -78㎏ 등 2명이 올림픽에 출전한다. 하이원리조트는 국내 카지노의 대명사 강원랜드의 새로운 브랜드. 하이원 유도팀은 지난해 10월 창단했다. 하이원 측은 “유도팀은 카지노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창단한 벽산건설 여자핸드볼팀은 수문장 오영란을 비롯해 김온아, 문필희, 김남선, 박정희 등 국가대표 5명(총 15명)을 배출했다. 오영란은 1996년 애틀랜타대회부터 올림픽만 벌써 4번째 출전이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대회부터 무려 7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또한 6회 연속 출전한 올림픽에서 5차례 결승에 진출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코로사는 남자핸드볼 이태영, 정수영 등 2명을 대표팀 명단에 올렸다. 코로사는 장미 육종을 수입해 화훼농가에 판매하는 중소기업으로, 영업사원 모두를 핸드볼 선수들로 선발해 운동과 업무를 병행해 세간에 화제를 모았던 팀이다. 하지만 이후 회사 업무 대신 운동만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다고 한다.

금메달이 기대되는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는 KT 소속이다. 아테네 올림픽 때 권총 50m에서 실수로 은메달에 머문 아쉬움을 이번 베이징에서 털어버린다는 각오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50m 권총, 10m 공기권총에서 금빛 총성을 노린다. 이외에도 대우자동차판매 김이용(육상), 금호생명 신정자, 신세계 김정은(이상 여자농구) 등이 태극마크 유니폼을 입는다.

LG·SK·롯데·한화 오직 야구만 베이징행

LG, SK, 롯데, 한화 등은 야구단 선수들만이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SK는 김광현 정대현 정근우 이진영 등 4명, 롯데는 송승준 이대호 강민호 등 3명, 한화는 류현진 김민재 등 2명, LG는 봉중근이 유일하다.

기업이 스포츠팀을 창단해 보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를 통해 소속팀이 좋은 성적을 올릴 경우 매출 신장은 차치하더라도 브랜드와 기업 인지도를 높이며 임직원들의 애사심과 단결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실제로 재벌그룹들은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유무형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문제는 팬들이 많은 인기 종목에 너무나 편중된다는 것이다. 비인기 종목을 후원한다고 외부에 열심히 알리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에는 외면시하는 분위기다. 물론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에게 무조건 창단을 강요할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워하는 스포츠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출전권을 획득한 펜싱, 카누, 복싱, 사이클, 근대5종, 요트, 수영, 역도, 조정 등은 기업 소속이 전무한 실정이다(공기업 제외). 대한체육회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 5000만원의 포상금을 걸었다. 개별 경기단체의 포상금은 별도다. 더욱이 ‘쩐’이 많은 소속팀의 격려금은 억대를 넘을 전망이다.

성강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