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0시 30분 서울 뚝섬 인근에 있는 쿠팡 물류창고에서 플렉서들이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이날 모인 플렉서는 15명이다. 사진 김소희 기자
12일 오전 0시 30분 서울 뚝섬 인근에 있는 쿠팡 물류창고에서 플렉서들이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이날 모인 플렉서는 15명이다. 사진 김소희 기자

“갓난아기와 5살배기 딸이 있어요. 벌이가 시원찮아 나오게 됐습니다.”

2월 12일 오전 0시, 서울 성동구 뚝섬 인근 약 1740㎡(약 520평) 규모의 한 거대한 물류 창고 앞에서 만난 김모씨는 “낮에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이들이 잠든 시간을 이용해 부업을 하러 나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김씨처럼 ‘심야 알바(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나온 30~50대 남성 14명이 줄을 서 있었다. 최저기온 영하 8도, 체감온도 영하 15도로 점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어도 오들오들 떨리는 추운 날씨였다. 이들이 추운 밤거리로 나온 것은 쿠팡의 배달 알바를 하기 위해서였다.

쿠팡은 정규 직원인 ‘쿠팡맨’의 배송 서비스 외에도 지난해 8월부터 일반인들이 자신의 차를 이용해 물건을 배송하는 ‘쿠팡 플렉스’란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김씨처럼 심야를 이용해 ‘투잡’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낮에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 놓고 집 근처 배송에 나서는 주부들도 있다. 모두 하루 단위로 고용되는 ‘쿠팡 플렉서’들이다. 아예 밤낮으로 배송을 돌며 플렉서로만 생계를 이어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코노미조선’도 김씨처럼 심야 쿠팡 플렉서를 직접 체험했다. 11일 밤에서 12일 아침으로 넘어가는 새벽, 2인 1조로 심야 배송을 시도했다. 한 명이 운전하면, 다른 한 명은 문 앞까지 택배를 옮기는 식이었다. 오후 8시 카카오톡방에 뜬 선착순 추가 모집 공고를 보고 직접 지원해 6시간 동안 용산구 일대 22가구를 다니며 배송을 진행했다.

업무는 오전 0시 30분에 시작됐다. 물류캠프에서 물건 40개(가구 중복 있음)를 배정받아 전용 앱으로 바코드를 스캔하고, K3(기아차의 준중형세단) 차량에 빼곡히 실었다. 트렁크뿐 아니라 뒷좌석까지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50분 정도. 옆에서 각자 차량에 물건을 싣던 플렉서들은 “좁은 차에 이리저리 빈틈을 맞춰 넣어야 하니 ‘테트리스 게임’ 같다”고들 했다. 겨우 실은 스티로폼 박스, 종이 박스, 비닐 등으로 포장된 물건은 크기도 모양도 무게도 다양했다. 대부분은 겉면에 ‘로켓 프레시’라는 박스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쿠팡에서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해 주는 쿠팡의 신선식품 서비스 제품이었다.

물류 창고에서 출발해 첫 배송지 용산구 이촌동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시 30분. 아파트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쿠팡 택배요!” 소리치며 경비실 문을 두드렸다. 쪽잠을 청하던 경비원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는 “새벽에는 거주민에게 직접 연락하라”며 문을 열었다. 건물로 들어가 문 앞에 택배 상자를 두고 사진을 찍어 플렉스 앱에 전송했다. 이 데이터가 본부로 전송돼 배송 현황이 보고된다. 이 때문에 플렉서 단체 카톡방(단톡방)에서는 단지별 현관 비밀번호가 공공연히 공유되고 있다. 이 덕에 인근 아파트 배송은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위기는 용산역 복합쇼핑몰 아이파크몰에서 맞닥뜨렸다. 몰 6층에 있는 CGV 본사에 배송해야 하는데 출입문이 대부분 잠겨 있었던 것이다. 겨우 찾아 들어간 CGV에서 물건을 둬야 할 곳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30분이 흘렀다. 마감인 오전 7시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열세 군데나 더 돌아야 해 초조했다. 마침 플렉서 본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남은 배송을 정해진 시간에 할 수 있겠느냐? 배송을 마친 주변 플렉서를 보낼 테니 물량을 넘겨라”라고 했다. 아이파크몰 부근에서 다른 플렉서를 만나 남은 물건 절반쯤을 넘겼다. 이 덕에 오전 6시 15분에 배송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6시간 동안 플렉서로 일한 알바비는 3만4100원. 다른 플렉서에게 넘긴 물량을 제외하고 개당 배송 단가 1100원이 적용됐다. 게다가 차로 이동하는 데 드는 기름값은 자기 부담이다. 이를 제외하고 손에 쥔 돈은 시급 기준으로 6000원이 채 안 됐다. ‘이코노미조선’은 2인 1조로 했지만, 혼자 일을 도맡는 것을 기준으로 했다. 한 사람 기준으로 해도 최저임금(8350원)에 못 미쳤다. 그래도 일이 손에 익은 베테랑 플렉서가 되면 더 짧은 시간에 많은 물건을 배송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같은 단가여도 시급이 오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실제로 한 달째 플렉서로 뛰고 있는 B씨는 시급 기준 8000원을 벌어갔다.


K3 뒷좌석과 트렁크에 40개 박스를 가득 실었다. 주변 플렉서들도 쏘렌토, 트랙스 등 자신의 SUV에 물건을 싣고 배송하러 떠났다. 사진 김소희 기자
K3 뒷좌석과 트렁크에 40개 박스를 가득 실었다. 주변 플렉서들도 쏘렌토, 트랙스 등 자신의 SUV에 물건을 싣고 배송하러 떠났다. 사진 김소희 기자

만만치 않은 ‘긱 워커’의 길

쿠팡 플렉스는 전형적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단면을 보여준다. 긱 이코노미는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가 그때그때 서비스 제공 계약 형태를 맺고 일하는 경제 활동 방식이다.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 주변에서 단기 계약으로 섭외한 연주자 ‘긱’에서 따온 말이다. 맥킨지는 2025년 세계 긱 이코노미가 2조7000억달러(약 3000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12일 체험한 ‘긱 종사자’의 현실은 세련된 용어와 달랐다. 단톡방에서 플렉서 구인·구직이 이뤄지고, 플렉스 앱으로 업무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알바 자리를 잡는 것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했다. 전국 40개 정도에 있는 물류 캠프 단톡방에 입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알바 자리를 얻으려면 ‘간택’을 기다려야 한다. 이 단톡방에서 본사 담당자가 수시로 플렉서를 모집하는데, 수요보다 신청자가 더 많다. 수백에서 1000명이 넘는 참여자들이 공지를 기다린다.

건당 배송 단가도 매 순간 바뀐다. 최근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일산에서 플렉서로 일한 A씨는 “초반 건당 3000원에 달하던 단가가 최근 800~900원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했다. 양주 1캠프에서 만난 B씨는 “설 이후 단가가 800원대로 뚝 떨어졌는데, 유류비를 빼면 무료 봉사 수준인 날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 측은 배송 물량과 신청자, 내부 사정 등에 따라 단가가 결정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플렉서 신청자가 많아질수록 단가가 싸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때문에 11~14일 단가 800원이었던 경기도 지역 카톡방에서는 ‘단가를 올려줄 때까지 지원하지 말고 기다리자’ ‘차라리 대리운전을 뛰겠다’ 등의 볼멘소리가 들끓었다.

전문가들은 긱 이코노미 활성화는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플렉서 같은 긱 워커들을 보호하는 제도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위탁 고용 계약을 하는 특수 고용 근로자로 분류되는데, 최저임금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 EU 등 선진국들은 이미 종사자들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영국은 플랫폼 업체에 긱 워커 관련 복지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미국은 4년 전 이들이 노동법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인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후발 주자 쿠팡은 ‘플렉스’로 승부수

쿠팡이 새벽배송 시장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자정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해주는 새벽배송 시장은 2015년 100억원에서 지난해 4000억원까지 성장했다. 마켓컬리를 시작으로 이마트, 현대백화점, 롯데슈퍼 등 유통 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다.

쿠팡은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쿠팡맨 3000명과 플렉서 수만 명을 투입 효과를 보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1월 중순 기준 플렉서 누적 지원자는 30만 명, 하루 평균 4000명에 달한다. 작년 11월 누적 지원자 10만 명에서 세 배 증가했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적자는 여전히 쿠팡의 위험 요인이다. 올해 매출은 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17년 순손실은 6740억원이었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증권 연구원은 “배송 업무를 진행하는 쿠팡맨과 플렉서 활용 으로 물류 효율화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송현·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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