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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신임 총리가 6월 5일(현지시각) 상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왼쪽은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 오른쪽은 동맹당의 마체오 살비니 대표. 사진 블룸버그

국내총생산(GDP) 2조1810억달러(세계 8위), 1인당 GDP 3만1984달러, 인구 6059만 명. 유구한 역사와 많은 문화 유산을 가진 나라.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페라리, 피아트 등 자동차 브랜드와 구찌, 아르마니, 베르사체 등 명품 패션 브랜드를 보유한 국가. G7(주요 7개국)의 일원. 바로 이탈리아다.

이탈리아가 최근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지난 3월 치러진 총선에서 포퓰리즘 성향의 오성운동(Movimento 5 stelle)이 승리했고, 최근 극우 성향의 동맹당과 연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반(反)EU(유럽연합) 성향 오성운동의 총선 승리 이후 이탈리아가 EU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이탈렉시트(Italexit)’ 공포가 세계를 강타했다. 그렇다면 유럽의 경제 강국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 정당이 집권해 EU 탈퇴 주장이 힘을 얻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경제 기적에서 저성장·고실업으로

이탈리아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 다음 가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해 1986년부터 1993년까지는 GDP가 영국을 앞질러 세계 5위가 됐다. 경제 대국이 된 원동력은 틈새 시장에 특화된 경쟁력 높은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이탈리아 경제는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공산권이 붕괴된 후 세계화가 확산되자 중국과 동유럽이 시장을 잠식했다. 섬유·의류, 신발, 가구 등 전통적으로 이탈리아의 경쟁력이 높던 주력 업종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크게 낮아졌다. 과거엔 이탈리아 통화인 리라화 가치를 주기적으로 평가 절하해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했지만 유로화 도입 이후 환율 조정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이탈리아 경제 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1% 미만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엔 -5.5%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저성장이 지속됐다. 지난해 이탈리아 실업률은 11.2%로 유럽에서 그리스, 스페인 다음으로 높았다. 청년 실업률은 40%에 육박한다.


2│나라 망친 베를루스코니

무솔리니가 처형되고 국왕이 폐위된 뒤, 이탈리아는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했다. 당시 발칸반도가 공산화되면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중산층이 기독교민주당(기민당)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1992년까지 기민당 중심 연립정부가 장기간 집권했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기민당 지지 기반이 약화됐다. 게다가 기민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구조적으로 심화됐다.

1992년 ‘마니폴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사법 당국이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전면적으로 수사했고, 기성 정치권이 완전히 붕괴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집권한 사람이 미디어 재벌 출신이자 축구팀 AC밀란 구단주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다. AC밀란을 응원하는 팬클럽과 산하 기업망을 자신이 만든 정당 ‘전진 이탈리아(포르자 이탈리아)’의 지구당 조직으로 개편했다. 자신이 소유한 기업의 간부를 정치 일선에 후보로 내세우고 자신이 운영하는 방송 채널을 통해 홍보했다. 전진 이탈리아는 거대 정당으로 성장했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 6위를 차지하고 TV에서 쇼걸로 활동한 모델 마라 카르파냐를 발탁해 정계에 데뷔시키고 기회균등부 장관으로 앉히기도 했다. 당연히 경제 성장은 부진했고, 청년 실업과 재정 적자는 개선되지 않았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 대한 기사에서 “나라 전체를 망친 사람”이라며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이탈리아보다 경제 성장률이 낮았던 나라는 짐바브웨와 아이티뿐이며, 그 기간 이탈리아의 1인당 GDP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했다.


3│정치 불안정이 경제 성장 걸림돌

2014년 2월 역사상 최연소(39세)로 총리에 취임한 마테오 렌치는 이탈리아 경제가 부진한 원인을 정치 구조에서 찾았다. 900명이 넘는 상·하원 의원들이 동등한 권한을 가져 입법이 늦어지고, 70년 동안 63번 주인이 바뀔 정도로 중앙정부가 안정돼 있지 않아 개혁과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양원제를 채택한 나라 가운데 이탈리아는 유일하게 상원과 하원이 입법 거부권과 정부 불신임권 등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있다. 양원은 정부의 입법안을 주고받으며 입법을 지연하거나 차단해왔다.

렌치 전 총리는 상원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내놓고 2016년 12월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그는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포퓰리즘과 극우 성향 야당들이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심판론을 내세우며 개헌에 반대한 것이 개헌 국민투표 부결의 주요 원인이었다.


4│유로화 사용 이후 남부 경제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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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33%의 표를 얻어 최대 정당으로 약진했다. 오성운동은 정치 풍자로 유명해진 코미디언 출신의 베페 그릴로가 2009년 창당한 정당이다. 2013년 2월 총선에서 원내 3당이 되며 돌풍을 일으켰고, 2016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오성운동 소속 후보가 로마와 토리노에서 시장으로 당선됐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EU 탈퇴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치우쳐 있다. 막판에 철회하긴 했지만 두 당의 최초 연정안에는 단계적으로 EU를 탈퇴한다는 문구가 포함됐었다. 공약을 실행에 옮기려면 EU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EU는 GDP 대비 재정 적자 상한선을 3%로 제한하고 있다. 저소득층에게 780유로(약 99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소득세를 인하하는 등의 공약을 실행할 경우 최소 5.8%의 재정 적자가 예상된다. 주세페 콘테 신임 총리도 연설에서 “통화동맹은 국민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며, 책임과 연대 원칙을 효과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며 EU 탈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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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상점가. 사진 블룸버그

포퓰리즘 정당의 주장이 먹혀든 지역은 가난한 중·남부 지역이었다. 리라화를 폐지하고 유로화를 쓰기 시작한 이후 이탈리아 중·남부에선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청년 실업률도 치솟아 지역경제가 무너졌다. 패션·자동차 등 이탈리아 주력 산업은 역시 북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1인당 GDP는 3만3155유로였지만, 중부는 2만7650유로, 남부는 1만9200유로에 그쳤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탈리아 총선 결과에 대해 “최악의 경제 상황을 방치한 주류 정치에 대한 항의”라면서 “유로존 가입이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한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유로존에 편입되면서 이탈리아 정부가 화폐를 평가 절하해 산업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금융 정책을 쓸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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