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 블룸버그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 사진 블룸버그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빅테크를 경쟁 상대로 지목하면서 디지털 인재 확보를 위해 경력직 인재의 연봉을 최대 10억엔(약 100억원)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야나이 회장 연봉의 2.5배이며, 일본 기업 경력직 채용자 평균 연봉의 22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1949년생으로 만 72세인 야나이 회장의 발언이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중간 유통 단계로 소비자가 손해를 보는 관행을 깨고 규모의 경제와 효율을 추구하는 SPA(의류 기획 디자인부터 생산 제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한 회사가 맡는 사업 방식) 모델을 완성한 신화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야나이 회장은 패스트푸드 햄버거처럼 소비자 기호에 맞는 의류를 빠르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1984년 히로시마에 유니클로 1호점을 열었다. 유니클로는 2003년 이후 16년 연속 성장했다. 패스트패션이라는 새흐름에 과감히 올라타 아버지가 하던 시골의 양복점을 세계 SPA 업계 3대 브랜드 업체로 성장시킨 것이다. 유니클로의 연매출은 20조원이 넘는다.


패스트패션 이어 디지털 전환에 승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1월 16일 보도한 야나이 회장의 이번 발언은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흐름에 적극 올라탈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야나이 회장의 지침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온라인을 통한 의류 판매가 늘었고 구글을 포함한 빅테크들이 전자상거래 분야를 강화하며 의류 산업에도 변화가 예고되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패스트리테일링이 디지털, 전자상거래, 공급망에 정통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봤다. 야나이 회장은 “컨설턴트나 대기업 출신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거나 사업을 백지에서부터 생각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며 “나보다 뛰어나고 천재적인 인재를 찾는다면 100~200명이라도 뽑겠다”고 했다.

“사양 산업은 없고, 사양 기업이 있을 뿐이다”라고 설파해온 야나이 회장의 파격적인 연봉을 통한 인재 영입 전략 공개는 유니클로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야나이 회장은 2017년 초 도쿄에 신사옥 ‘유니클로 시티 도쿄’를 공개하면서 “유니클로를 SPA에서 ‘정보제조소매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인공지능(AI)을 접목해 옷을 기획해 생산·판매까지 이르는 시간을 더 단축하기 시작했다.

야나이 회장이 디지털 인재 영입 전략을 이번에 공개하면서 “앞으로 (유니클로의) 경쟁 상대는 의류 업체 ‘자라(ZARA)’가 아니라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가 될 것”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디지털 전환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디지털 인재를 활용해 의류 사업의 수익 모델을 바꿔 빅테크와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구글과 아마존·애플 등 IT 기업을 라이벌로 내세운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야나이 회장은 자서전 ‘성공은 하루 만에 잊어라’에서 “한정된 의류 시장에서 경쟁자들과 어떻게 경쟁하느냐에 매달리며, 의류와 대적할 수 있는 상품은 의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휴대전화를 의류의 경쟁자로 본다. 휴대전화보다 더 매력적이고 사고 싶어지는 옷은 어떤 상품일지 생각한다”고 했다. 시장을 폭넓게 보기 때문에 기회를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야나이 회장은 줄곧 의류 제조업을 포함해 모든 산업이 정보 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구글과 아마존이 라이벌이 되는 이유라고 설명해왔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는 전 세계 유통 업계에 AI를 접목했을 때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가 최대 8000억달러(약 968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IT 대기업과 인재 쟁탈전 예고

닛케이는 “패스트리테일링의 경력직 연봉 상한선 인상 계획은 일본 기업의 직원 대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나이 회장이 제시한 경력직 연봉 상한 10억엔은 야나이 회장의 연봉 4억엔(약 40억원)의 2.5배 수준이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지난해 8월 말 기준 5만6000명의 직원을 뒀다. 이 중 유니클로 매장 등에 소속된 직원을 제외한 본사 사원은 약 1600명으로, 대부분이 경력직이다. 이들 경력직의 평균 연봉은 960만엔(약 9600만원)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늘면서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져 기술 인력 쟁탈전이 빅테크를 넘어 모든 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클라우드 솔루션 기업 투마일스의 윤혜식 대표는 “클라우드 서버, 빅데이터의 최고 전문가들은 이미 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에서 일하고 있고 이외에도 대기업이 대부분의 관련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유통 업계의 IT 인력 쟁탈전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lus point

‘미스터 쓴소리’ 야나이 다다시 회장
“일본 살아남지 못할 것” 코로나19 쇄국에 경고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함께 정·재계에 할 말은 하는, ‘미스터 쓴소리’ 경영인으로 통한다.

야나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말 닛케이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해외 인재의 유입을 막는 ‘코로나 쇄국’에 대해 “계속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일본 기업의 대응책과 관련해서는 “일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하고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경기 침체 상황에 대해서는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야나이 회장은 2019년 10월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도 “지난 30년간 세계는 급속히 성장했지만 일본은 세계 최첨단 국가에서 중진국이 돼가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일본은 중위권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2020년 11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하면서는 일본 정부가 소비·지출 촉진을 위해 시행 중인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정책에 대해 “나라에서 돈을 받아 레저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나랏돈은 곤란한 사람을 돕는 데 써야 하는데, 용도가 잘못됐다”고 했다.

야나이 회장은 유니클로가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탓에 지난해 일본 최고 부호 자리를 전자센서 제조 업체 키엔스(Keyence)의 창업주 다키자키 다케미쓰에게 내줬지만, 일본 부호 2위 자리는 지키고 있다. 일본 부호 3위는 손정의 회장이다.

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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